2021년엔 ‘서울-모스크바 교류협력센터’ 세우자

서울-모스크바 교류 30년 기획연재 ③ ‘서울-모스크바 교류협력’의 21세기형 진화 방안

등록 : 2020-09-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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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스크바

진보적 이슈 선도하는 국제도시 서울

1990년 스포츠 교류협정으로 첫 악수

이후 해마다 교류의 폭과 영역 넓혀와


모스크바 문화의 일방 수용 벗어나서

‘서울의 문화 모스크바에 공급’ 전환

이젠 단발성 행사 넘어 지속성 갖추고


‘교류센터’ 중심 장기적 교류 추진 필요

88서울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에 들어서면서 서울 시민 등에게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소련 선수단의 입장 모습. 당시 소련의 올림픽 참여로 서울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으로 세계인에게 각인됐고, 이후 1990년 시작된 서울-모스크바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됐다.

흔히 그 나라의 최고지도자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대외관계에서는 군사력과 경제력 등 ‘딱딱한 국력’을 배경으로 한 현실주의 논리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탈냉전 시기 현대의 국제관계는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와 도시들이 시민단체, 기업 등 민간 부문과 함께 국력의 격차를 넘어 횡적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이들이 중앙정부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었으나 지금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거나 거의 독립적 위상을 갖게 된 경우도 있다. 이들의 접근법에서는 자기 이익 추구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사이에 상호학습을 통한 협력적 번영의 논리가 더 잘 작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사회가 가진 좋은 제도와 사회적 가치, 매혹적인 문화예술 등 ‘부드러운 매력’을 통해 큰 거부감 없이 상대의 호감을 얻는 공공외교, 문화외교도 도시와 민간 부문이 더욱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은, 모스크바가 아직 ‘소련’의 수도일 때인 1990년 11월 스포츠 교류협정으로 처음 악수하고, 1991년 7월13일 정식으로 상호결연 관계를 맺었다. 미군이 주둔하는 분단·반공 국가에서 열린 88서울올림픽에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팀이 참가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에 획기적 전환점이 됐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서 깊은 두 도시는 거의 매년 다양한 행사를 치르며 우호·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2021년 7월에 맞게 될 결연협정 30주년은 두 도시의 상호관계를 질적으로 더욱 진전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울은 근래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외국인 거주자들로 인해 바야흐로 본격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2019년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총 250만 명에 이르고 그중 약 22%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또한 서울은 사회적경제국제포럼(GSEF) 창설(2014)을 주도하고, 세계 도시 간 감염병대응국제기구 설립을 제안(2020)하는 등 진보적 이슈를 선도하면서 수많은 교류협력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국제도시로서 완연한 면모를 보인다.

서울의 1.8배에 이르는 면적에 유럽 최대인 1200여만 명의 인구를 가진 국제도시 모스크바는 8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연방의 수도일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지역의 경제·문화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소련 해체 직후의 혼돈과 추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스크바는 최근 10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거의 매년 새로운 지하철역이 문을 열고, 세계관광기구로부터 연이어 관광 인프라 개선 최고상을 받을 정도로 도시환경이 개선됐다. 이제 모스크바는 유럽 도시 중 어디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아름답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도시로 거듭났다. 모스크바에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비즈니스에 종사해온 독일-러시아상공회의소 대표는 심지어 베를린보다 생활환경이 더 낫다고 말할 정도로 모스크바는 빠르게 ‘스마트 도시’의 특성도 갖추고 있다. 모스크바가 곧 러시아연방 그 자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스크바의 부활은 곧 러시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96년 4월 서울-모스크바 간 교류협력 프로그램 협정이 체결된 이래 사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두 도시의 협력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시정부와 시의회 고위직의 상호방문, 국제회의 참가, 각자의 행정과 정책 우수 사례 홍보·벤치마킹, 문화예술 행사 등이 대종을 이룬다. 그간 서울은 공공정책 면에서 특히 대중교통 체계와 전자정부, 데이터센터 운영의 앞선 경험을 모스크바에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모스크바는 ‘E-모스크바 구축 계획’ 선포(2004), 모스크바시 공무원들의 서울시 교육프로그램 참가(2018)로 화답하는 등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보건, 상수도 관리, 중소기업 투자, 환경 보존, 법무행정, 관광, 스포츠 등도 양측이 서로 관심을 갖고 교류협력을 모색한 분야였다.

러시아에서 한류 및 의료관광 활성화를 추진한 것(2016)은 2014년 양국의 비자면제협정 발효로 러시아인의 한국 방문이 크게 늘어난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에는 젊은층에서 큰 인기를 끄는 인플루엔서와 예술가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베를린 등 유라시아 지역 4개 도시를 방문해 ‘평화서울’ 영상을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홍보 활동을 펼쳤다. 이는 최근의 시류를 반영하면서 두 도시의 교류협력이 집중되는 수단과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주는 흥미로운 기획으로 평가될 수 있다.

모스크바가 지난 30년 동안 서울 시민에게 가장 인상적인 선물을 안겨준 분야는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일 것이다. 매년 모스크바의 여러 공연단이 서울을 찾고, 서울에 상주하면서 활동하는 러시아 음악가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에는 세계 여느 도시에서처럼 모스크바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50대 여성의 에코백에 방탄소년단(BTS) 로고가 찍혀 있으며, 한국 문화를 러시아어로 소개하는 젊은 유튜버는 러시아 전역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모스크바의 서구식 고급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서울은 이제 세계적으로 새로운 경향을 선도하는 대중문화를 모스크바에 공급해주는 위치에 서게 됐다.

서울과 모스크바 사이 교류협력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된 해는 각각 상대방 도시에서 ‘서울의 날’과 ‘모스크바의 날’이 조직된 2004년일 것이다. 특히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톨스토이 특별전시회’는 러시아의 국보급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 작가의 친필 원고와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예술을 대표하는 화가 일리야 레핀(1844~1930)의 그림 등 총 600점을 서울 시민들에게 선보임으로써 다시 한 번 ‘문화강국 러시아’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각인해준 계기였다.

하지만 그간 양자의 교류협력은, 공통 관심사를 놓고 꾸준히 진행하는 사례도 일부 있지만, 대개 단발성 행사 위주로 진행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서울-모스크바 결연 3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다시 한 번 두 도시에서 ‘서울의 날’과 ‘모스크바의 날’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게 조직될 수 있도록 서울이 이니셔티브를 행사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교류협력의 지속성과 효과를 담보하기 위해 가칭 ‘서울-모스크바 교류협력센터’를 세우고 이를 통해 양측의 문화예술인, 언론인, 학자,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교류협력포럼’을 정기적으로 조직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반도의 남쪽 밀집 도시에 갇혀 있는 서울의 청년들이 광활한 대륙으로 나아가 호연지기를 기르고 모스크바와 새로운 파트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서울문화재단과 국제교류재단, 서울시교육청 등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융합자율학부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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