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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없는 서울 구청장 4인 “집은 그냥 사는 곳”

등록 : 2020-07-23 16:11 수정 : 2021-01-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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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호·이창우·김선갑·채현일 무주택 청장 설문…이정훈 청장은 ‘부답’

“선거 출마 매각” “애초 미보유” “정부 기조 지키다 놓쳐” 등 다양한 이유

서울시 25명 구청장 중 내 집이 없는 구청장 4인. 왼쪽부터 서양호 중구청장, 이창우 동작구청장, 김선갑 광진구청장,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선거 출마로 매각” “애초 미보유” “정부 기조 지키다 기회 놓쳐” 등 이들이 집 없는 이유는 다양했다.

“두 채 이상 소유, 투기성 재산증식 방식으로 불로소득 가능성 커”

집 사고 싶지만 집값 올라 고민

박탈감 느끼지 않도록 대책 필요

“취약계층 위한 다양한 정책 따라야”

서울시 구청장 정도면 으레 집을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서울시 구청장 중에서 집 없는 구청장은 5명이나 된다. 김선갑 광진구청장, 서양호 중구청장, 이정훈 강동구청장, 이창우 동작구청장,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그들이다. ‘부동산 공화국’이란 오명처럼 다들 집값 올려 재산 불리려고 아우성인데, 이들은 왜 집이 없는지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


한겨레 <서울&>은 집 없는 구청장 5명에게 집이 없는 이유, 과거 집을 소유한 적이 있는지, 앞으로 주택 구입 계획,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견해 등을 물었다. 이 중에서 4명만 답변하고,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특별한 이유 없이 답변하지 않았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6월18일 서울시 25곳 구청장의 신고재산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경실련은 이 중에서 구청장 본인과 배우자 기준 주택 보유 실태를 살펴본 결과, 전체 72%인 18명이 1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7명이 무주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오승록 노원 구청장과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원구 관계자는 “오승록 구청장은 집이 있는데 (경실련 발표가) 잘못 나갔다”고 했고, 도봉구 관계자는 “이동진 구청장이 지난 4월 노모를 모시기 위해 집을 샀다”고 밝혔다. 윤은주 경실련 간사는 “오승록 노원구청장이 무주택 구청장으로 자료가 나간 것은, 관보에 실린 내용을 기초자료로 삼았으나 오 구청장이 관보에 아파트라든지 주택으로 등록하지 않고 ‘기타’로 등록해 누락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무주택 구청장은 왜 집이 없나

이들 네 구청장이 집이 없는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1998년에 샀던 집을 정치를 하면서 2002년에 팔았다. 집을 소유한 기간은 4년 정도 된다. 서 구청장은 “젊은 시절 저축한 덕분에 1998년 생애 최초로 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에 입문해 몇 차례 출마 준비와 선거로 인한 비용 문제로, 2002년 살던 집을 처분하고 다시 무주택자가 됐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집이 없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의 대답은 명확했다. 이 구청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2003년 집을 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펼치던 시기라서,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모시는 행정관이 집을 사면 안 될 것 같아 접었다고 했다. 이 구청장은 “그러다 우리 재산은 그대로인데 집값은 계속 올라서 내 집 마련이 점점 더 멀어져 아직 집이 없다”고 했다.

이 구청장이 집을 소유한 적은 있다. 그는 “2001년 결혼 후 분가하면서 상도동에 작은 빌라를 샀지만, 3년 뒤 건물 외벽에 불이 나는 바람에 무서운 생각이 들어 다시 팔았다”고 했다.

“청약예금통장을 32년 이상 가입해왔으나, 청약 신청을 하거나 주택을 보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집 살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김 구청장은 “30대부터 25년 동안 광진의 생활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늘 어려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이 되고자 노력해왔다”고 했다. 그는 20대 후반에 잠시 주택을 소유했던 적은 있다고 했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과거에 주택을 소유한 적도 없고 지금도 집이 없다고 밝혔다. 채 구청장은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도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주택 구입 계획, 3명은 있고 1명은 없다

집 없는 구청장 중 3명은 앞으로 집을 구입할 계획이 있고,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앞으로도 “집을 살 계획이 없다”고 했다. 집을 사고 싶은 이유로, 대부분 전월세살이라 이사를 자주 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임대보증금 인상과 세입자 의사와 무관하게 소유주의 계약 해지로 인한 잦은 이사 탓에 피로감이 쌓였다”며 “구매 의사는 있지만 구체적 계획은 미정”이라고 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이사 가야 하는 처지가 되게 옹색해서 집을 사고 싶은 생각은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주택을 사고 싶어도 지금 당장은 재정 여건상 어렵다”고 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퇴직 후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안락하고 소박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분양 공고를 통해 청약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고위 공직자의 적정 보유 주택 수는 한 채

집 없는 구청장 4인은 모두 고위 공직자의 적정 보유 주택 수에 대해, 실제 거주하는 집 한 채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고위 공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주택을 두 채 이상 보유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20일 “그린벨트를 보존해나가기로 했다”는 총리실 발표가 나오자, 그린벨트 해제 논란이 일단락됐다. 사진은 16일 오후 서초구 헌릉로 일대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 일대 그린벨트 지역.

이 구청장은 “실제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집이 한 채일 때는 부동산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이 없으나, 두 채 이상 소유할 때는 부동산을 통한 투기성 재산증식 방식으로 불로소득 가능성이 커진다”고 봤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소유와 관계없이 실제로 거주하는 집 한 채면 충분하다고 했다. 서 구청장은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자 모범의 대상이며, 그들이 갖는 파급력 또한 막강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주택이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재산증식을 위한 투기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공직자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사회 통념상 지탄받지 않는 범주에서 보유하는 것이 맞다”며 “현명한 공직자라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적극 지지…임대주택 공급 필요

집 없는 구청장들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에 공감과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부동산 규제 입법과 함께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물리적인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 구청장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6·17 부동산 대책 후속 대책’의 핵심은 주택 취득과 보유, 양도의 모든 단계에서 다주택자와 투기 세력에 세금 부담을 크게 늘린 것으로 적절한 방향”이라며 “국토부의 수도권 30만호 주택 공급 계획에도 찬성한다”고 했다. 다만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정책이 좀더 빨리 시행됐으면 좋았겠다고 했다.

서양호 구청장은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는 시각이 필요한 때”라며 “실수요자는 보호하고 투기성 수요는 규제하는 엄밀한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유동성 투자처를 발굴해 부동산으로만 몰리는 대기 자금을 분산할 수 있는 추가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국민의 주거 안정권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며 “정부 정책이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서양호, 이창우, 김선갑 구청장 등 3명은 집값 폭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없도록 알맞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서 구청장은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인, 장애인, 청년, 신혼부부 등 취약계층에 보급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김 구청장은 “청년주택, 신혼부부의 보금자리 지원 정책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마련할 기회가 확대돼 관련 정책이 적극적으로 펼쳐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 구청장은 “사회적 약자와 청년·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자치구 단위 주택 공급을 시도하고 있는데, 총 250가구를 공급했다”고 밝혔다.


집은 ‘소유’ 아닌 ‘거주’ 공간

집 없는 구청장들은 집을 소유가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인식했다. 집은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닌,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거주하는 곳’이라고 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집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했고,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주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청와대 행정관 시절부터 소득격차, 빈곤의 대물림 등 부동산으로 인한 양극화와 불평등은 해결돼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집 없는 구청장들은 하나같이 “대다수 국민에게 집이 두 채일 필요는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부동산 정책에 성공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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