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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보다 책을 찾는 취학 전 어린이들

등록 : 2020-07-09 15:58 수정 : 2021-01-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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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 5~7살 대상 천권읽기 사업 2년 1200명 참여중

1년여 만에 천권 읽은 아이 33명…언어표현력 높아져


중랑구의 ‘취학전 천권읽기’에 도전해 1년여 만에 목표를 달성한 차윤건(맨 오른쪽)·강준(맨 왼쪽) 형제와 어머니 임지애(왼쪽 둘째)씨가 1천 권 읽기에 근접한 배은빈군과 어머니 이은미씨와 함께 6월30일 중랑숲어린이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폐쇄된 도서관은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문을 열었다.

독서광 류경기 구청장 취임 뒤 핵심 사업으로 추진

“인간 뇌, 취학 전 80% 성장”에 착안

구립도서관·어린이집 등 260곳 연계

“부모가 아이에 주는 큰 선물” 평가


만 8살, 6살짜리 두 아들의 엄마인 임지애(38)씨는 서울 중랑숲어린이도서관에서 얼마 전 책 20권을 대출받아 일주일 만에 모두 읽고 반납했다. 최대 3주까지 빌릴 수 있는 대출 기간을 크게 앞당겨 완독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지난 3월부터 평소 자주 다니던 중랑숲어린이도서관이 폐쇄된 채 비대면 대출 업무만 하자 4인 가족이 대출받을 수 있는 책의 한도까지 최대한 빌려 ‘독서 갈증’을 해소한 것이다.

임씨는 “대여한 책 20권은 모두 어린이 책이라 사실 남편은 읽지 않고 자기 전에 취학 전인 둘째 강준이에게는 책을 읽어주고 첫째 아이는 같이 읽거나 혼자 읽었다”고 말했다. 임씨의 큰아들 차윤건(8)군과 둘째 아들 차강준(6)군은, 2018년 7월 중랑구의 ‘취학전 천권읽기’에 참여해 각각 지난해 9월과 11월 모두 1천 권 읽기를 달성했다. 그러니까 차군 형제는 1년 남짓한 기간에 평균 하루 2권 이상 책을 읽은 셈이다. 비록 그림이 많이 섞인 그림책 위주의 책이라 해도 놀라운 독서력이다. 형제의 독서력은 1천 권 읽기를 달성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큰애는 이제 시키지 않아도 아침저녁 혼자 독서할 수 있을 정도로 책 읽는 것이 습관화됐어요. 학교에서도 독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동생도 형을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됐어요.”

어머니 임씨는 두 아들의 1천 권 읽기에 도전하면서 자신도 <1천권 독서법> <기적을 만드는 엄마의 책공부>(이상 전안나 지음) 등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고 독서에 재미를 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녁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 책 안에 나온 내용 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어요. 그런 다음 독서록을 쓰게 한 것도 책읽기를 계속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임씨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집 안에 독서 환경을 조성하고 밥 먹을 때만이라도 아이들과 대화하자는 취지에서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를 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차윤건군은 “책 읽는 것이 재미있다”며 “이제 유튜브는 거의 안 하고 게임 생각도 많이 안 난다”고 말했다. 임씨는 “1천 권 달성 이후 책읽기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입학 전인 둘째는 천 권 읽기에 다시 한 번 도전 중이고, 첫째는 독후 활동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천 권 읽기에 도전 중인 배은빈(6)군은 현재 750권 정도 읽고 있다고 어머니 이은미(42)씨가 말했다. 이씨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도서관에서 천 권 읽기 사업을 알게 돼 참여하게 됐다”며 “아이가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고, 다 읽고 나서 뿌듯함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5살 때 한글을 뗀 배군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을 읽을 정도로 습관화되면서 언어구사력에서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천 권 읽기 달성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에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텔레비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엄마 이씨는 이에 대해 “(아이가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없앴다”며 “아이의 언어력이 조금 빠른 편이긴 하다. 독서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지유 중랑숲어린이도서관 관장은 “책을 많이 읽은 아이일수록 자기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정리하는 능력이 생긴다”며 “배군도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사서들에게 “자동차가 이렇게 저렇게 변해가는 책이 있어요”라며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아이들은 바로 책을 많이 읽은 아이라고 이 관장은 설명한다.

중랑구는 언어·청각 기능을 담당하는 뇌(측두엽)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인 만 5~7살 어린이들은 조금만 자극을 줘도 독서 교육이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취학전 천권읽기’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서울시 부시장 출신으로 시 공무원 시절 독서모임에 열심히 참여한 소문난 독서광인 류경기 구청장의 관심이 반영된 사업이다. 2018년 4월 시작했으나 그해 7월 류경기 구청장의 민선 7기 체제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류 구청장은 지난 6월 <서울&>과의 취임 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지난 2년 성과 중 하나로 ‘취학전 천권읽기’ 사업을 꼽을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류 구청장은 “인간의 뇌는 취학 전에 80%가 성장한다고 한다. 취학 전에 뭘 보고 배우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사업 취지와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원활하지는 않았다. 첫해인 2018년에는 참여자가 287명에 그쳤다. 아이들을 정작 도서관에 데려와놓고도 유튜브를 틀어주는 부모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젖먹이에게 휴대전화를 쥐여주고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능숙하게 화면을 넘기는 장면을 식당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영상매체의 파급력은 강력하다. 아이들이 떼를 쓰니 부모들로서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 동영상을 틀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동영상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경우 인지능력 형성 등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취학 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중랑구의 독서 프로그램은 시대의 흐름을 꿰뚫은 사업인 셈이다.

2019년 천 권 읽기 사업이 6개 구립도서관은 물론 18개 공립 작은도서관으로 확대되고 30개 유치원과 230개 어린이집 등 260개 기관까지 연계되면서 현재는 참여자가 1200여 명으로 많이 늘어났다. 천 권 완독 어린이가 33명으로 증가했다. 구는 또 동기부여를 위해 씨앗(100권), 떡잎(300권), 새싹(500권), 꽃(700권), 열매(1천 권) 등 5단계로 달성 목표를 분화하고 달성시 다음 단계로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 참여자에게는 달성 단계별로 독서여권과 배지 등 키트를 제공해 목표 달성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단순히 책을 많이 읽고 스탬프를 찍는 것이 아닌, 책을 읽고 기록하는 습관을 동시에 기를 수 있도록 독서기록장을 함께 제공했다.

구는 천 권 읽기를 촉진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천 권 읽기 사업의 중추 구실을 하는 중랑숲어린이도서관 쪽은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3월부터 매달 한 차례 강연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8월 중에는 추진할 생각이다. 또한 천 권 읽기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지난해부터 실시해 인기를 모은 ‘초등독서토론단’도 8월 이후 재개할 방침이다. 이지유 관장은 “독서 토론을 지켜본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이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장면을 보고 너무 놀라더라구요. 학원 두 개 끊고 오겠다는 부모님도 있을 정도로 호응이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이 관장은 취학 전 어린이의 독서 습관 형성에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독서가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강요적으로 읽게 하면 거부감이 생겨서 책읽기를 멀리하게 된다. 그러니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독서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랑구는 8월께 천 권 읽기를 달성한 어린이에 대한 시상식을 열 계획이다.

아이들이 천 권 읽기에 도전 중인 김선영씨는 구소식지 <중랑소식>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천 권 읽기의 성과를 이렇게 말했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책 읽어주기였다. 유치원을 택할 때도 도서관이 가장 가까운 곳을 택하고 유치원에서 하원하면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었다. … 유아용 도서는 거의 대부분 그림책이라서 부모와 아이 모두 부담 없이 독서를 즐길 수가 있다. 때론 스토리만 읽어주는 엄마와 달리 아이 스스로 그림을 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 말해주기도 하고, 엄마와는 다른 해석을 보여줘 깜짝 놀라게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릎에 아이를 앉혀 놓고 같은 방향으로 책을 읽어주는 것은 부모가 해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추억인 것 같다.”

중랑구의 천 권 읽기 목표를 달성한 차윤건(왼쪽)·강준(가운데) 형제, 천 권 읽기에 도전 중인 배은빈군이 ‘독서여권’과 ‘독서기록장’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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