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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개폐되는 ‘도심 속 오아시스’, 그늘막도 이젠 스마트 시대

등록 : 2020-06-25 14:52 수정 : 2021-01-2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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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동작구 ‘스마트 그늘막’ 설치…태양광으로 전력 공급

온도·바람·일조량 따라 스스로 열고 닫아, 밤엔 보안등 구실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사거리를 통행하던 시민들이 17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새로 설치된 스마트 그늘막 아래 모여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자동개폐 스마트 그늘막 본 시민들 “정말 신기하네요”

태풍 등 위기 상황 올 때 빠르게 대처

인력 부족 해결하고 수월하게 관리도

상인들의 반발도 줄일 것으로 기대돼

건널목을 건너려는 시민들이 더위를 피할 겸 그늘막 밑에 잠시 머물면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한 중년 남성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손에 쥔 부채로 연거푸 부채질해댔다. 초록불이 켜지자 어린 딸을 데리고 건널목을 건너는 아주머니는 햇볕이 내리쬐는 거리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17일 오후 2시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며칠 동안 30도를 웃돌던 기온이 이날 조금 수그러들었으나 그래도 한낮 도심 기온은 30도 가까이 올라갔다. 게다가 바람이 불지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 된 요즘,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이전보다 더욱 높아진 듯했다. 이 때문인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시민들은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건널목에 설치된 그늘막 아래에서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여름철 무더위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도심 속 오아시스’인 그늘막이 진화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태양광 기술을 더해 한층 똑똑해졌다.

관악구는 지난 5월 서울대입구역(4개), 관악구청 앞(3개), 신림역(2개), 사당역(1개) 등에 스마트 그늘막 10개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구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수동식 그늘막 35개를 주민 통행량이 많은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교통섬 등에 설치해 운영해오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시에 신청해 받은 특별교부금 1억원으로 스마트 그늘막을 설치했다. 기존 수동식 그늘막 설치비가 250만원인 데 견줘 스마트 그늘막은 3배가량 비싼 850만원이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다.

스마트 그늘막은 사물인터넷 기술이 적용돼 주변 온도, 바람의 세기, 일조량을 감지하는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그늘막이 펴지고 접힌다.

스마트 그늘막은 스스로 주변 온도를 감지해 일정한 온도가 되면 펼쳐지고 접히는데, 기온이 15도 이상 올라가면 자동으로 펼쳐진다. 보통 때는 해가 뜨는 아침 7시에 펼쳐지고 해가 지는 저녁 8시에 접히도록 설정돼 있다. 이영득 관악구 안전관리과 재난안전팀장은 “스마트 그늘막이 온도 변화에 따라서 개폐되지만, 여름철에는 일괄적으로 아침과 저녁 일정한 시간에 개폐되도록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스마트 그늘막은 온도뿐만 아니라 바람에도 반응한다. 태풍 등으로 강한 바람이 불면, 풍속 센서가 바람의 세기를 감지한다. 풍속이 초당 7m 이상 2초간 지속하면 자동으로 접히도록 설정돼 있다. 풍속이 그 이하로 떨어지면 15분 뒤 다시 펼쳐진다.

또한 스마트 그늘막 위쪽에 설치된 태양광 전원 공급 장치는 친환경 청정에너지 시설로, 그늘막을 펴고 접을 때와 발광다이오드(LED) 빛을 발할 때 전력을 공급해준다.

일반 시민은 수동식 그늘막이 스마트 그늘막으로 바뀐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겉모습에서는 스마트 그늘막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건널목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이게 스마트 그늘막’이라고 알려주면 그때야 매우 신기한 듯 바라봤다.

대학생인 이현종(20)씨와 김연근(23)는 “날씨가 더워진 요즘 그늘막을 자주 이용하지만 스마트 그늘막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래도 외관상 수동식 그늘막과 스마트 그늘막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기존 수동식 그늘막은 원형으로 생겼고, 새로 설치한 스마트 그늘막은 직사각형으로 좀더 깔끔해졌다. 기존 색상과 달리 파란색을 사용해 한결 시원하고 밝아진 느낌을 준다.


동작구 노량진동 노량진역 앞 횡단보도를 지나던 시민들이 18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스마트 그늘막 아래 모여있다. 정용일 기자

게다가 스마트 그늘막은 기존 수동식 원형그늘막(지름 4m)에 견줘 그늘을 만드는 면적이 커졌다. 스마트 그늘막은 대형(5.4×3m)과 소형(4.5×2.5m)으로 이뤄져 있다. 수동식에 비해 커진 스마트 그늘막은 좀더 많은 시민이 한꺼번에 더위를 피할 수 있다.

“가끔 관악산 등산도 하고 친구도 만나러 오는데, 지나다니면 참 잘해놨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기도 안양 만안구 석수동에 산다는 이성재(80)씨는 “이게 자동으로 되는 거예요? 그거 몰랐네”라며 스마트 그늘막을 신기한듯 쳐다봤다.

스마트 그늘막은 밤이 되면 ‘보안등’으로 변신해 보행자 안전도 챙긴다. 스마트 그늘막은 해가 진 뒤에는 그늘막이 접히고, 발광다이오드 등이 켜진다. 이 불빛으로 횡단보도를 다니는 보행자를 운전자가 쉽게 식별해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구청 입장에서는 관리하기 편리해졌다. 수동식 그늘막은 태풍이나 돌풍 등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마트 그늘막은 원격 제어도 가능해 긴급재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이영득 팀장은 “태풍이 불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늘막을 접고 펴다보니 번거로웠다. 하지만 스마트 그늘막을 설치한 뒤로는 관리 업무가 한결 편해졌다”며 “앞으로 기존 수동식 그늘막을 스마트 그늘막으로 교체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스마트 그늘막은 그동안 그늘막 설치에 반대했던 주변 상인들의 반발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수동식 그늘막은 한 번 설치하면 여름 더위가 물러갈 때까지 계속 펼쳐져 있어, 그늘막이 설치된 주변 상가에서 “그늘막이 간판을 가려 영업에 방해된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이 팀장은 “스마트 그늘막은 수동식 그늘막처럼 24시간 펼쳐져 있는 게 아니고, 밤에는 그늘막을 접을 수 있어 상인들 불만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013년 전국 최초로 그늘막을 설치했던 동작구도 6월 스마트 그늘막을 설치했다. 구는 1억7천여만원을 들여 노량진역과 장승배기역 등 통행량이 많은 곳에 스마트 그늘막 20개를 설치했다. 동작구에는 기존 수동식 그늘막 70개를 합쳐 모두 90개가 설치돼 있다.

스마트 그늘막이 설치된 동작구 노량진동 노량진역 앞 횡단보도에서 18일 만난 정휘경(27)씨는 “자동으로 접히고 펼쳐지는 그늘막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며 “더울 때는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인데, 이처럼 똑똑한 스마트 그늘막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했다.

노량진본동에 사는 이서영(24)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는 길인데, 평소이 길로 자주 다닌다”며 “스마트 그늘막으로 많은 사람이 무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은 것같다”고 했다.

동작구의 스마트 그늘막도 일출 시각에 펼쳐져 일몰 시각에 접힌다. 역시 바람에도 반응해 강풍이 불거나 하면 자동으로 접힌다. 행정안전부의 그늘막 설치·관리 지침에는 풍속 초속 14m 이상이거나 순간 풍속 초속 20m 이상이면 접히게 돼 있으나 동작구는 초속 10m 이상이면 접히도록 설정돼 있다. 허석재 안전재난담당관 안전기획팀 주무관은 “강풍 등 갑작스러운 기상 이변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고 노동력 절감 효과도 있다”고 했다.

동작구의 스마트 그늘막은 회색 계통 색상으로 만들어졌다. 허 주무관은 “회색은 다른 색상에 비해 미세먼지, 비, 바람에 의한 변색 내구성이 가장 강한 색이라서 선택했다”며 “앞으로 수동식 그늘막을 스마트 그늘막으로 전면 교체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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