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시민이 한남공원 지켜냈다’ 자부심 커”

‘시립 공원화’ 이끌어낸 한남공원지키기시민모임, 활동성과 공유회 열어

등록 : 2020-06-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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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주민, 시민단체 등 참여해

한남공원 터 지키기 위해 홍보 등 활동

일몰 적용 전 4월말 서울시 매입 결정

“이제 시작…지킴이 모아 지속적 활동”

한남공원지키기시민모임의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5월26일 활동 성과 공유회에 앞서 ‘시민이 참여해 운영하는’ 서울숲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너무 기뻐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서울시가 지난 4월 말 한남근린공원 터(한남동 672-1번지 외 16필지)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그 한 달 가까이 지난 5월26일 오후. 한남공원지키기시민모임(시민모임) 회원 10여 명이 서울숲 휴게공간에 둘러앉았다. 용산구 주민,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이뤄진 시민모임이 조촐하게 활동 성과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공원 터 지키기 운동의 불씨를 지폈던 설혜영 용산구의원에게는 가슴이 벅찬 순간이었다.

용산구 한남동의 주택과 상가에 둘러싸인 한남근린공원 터(아래 사진)는 2만8197㎡(약 8500평) 규모로 서울시청 광장 2배 크기다. 1940년 공원으로 지정했지만 80년이 지날 동안 한 번도 공원이 되지 못했다. 일본군에 이어 미군의 군사 시설로 이용됐다. 그사이 소유권은 민간으로 옮겨가 공원 터의 절반은 고급 주택으로 개발됐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2014년 1200억원에 부영주택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공원 터라는 걸 모르는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부지 매입비만 해도 3천억원이 넘어 7월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서울시와 용산구 모두 난감해했다. 공원 조성 여부가 불투명했다.


보다 못한 한남동 주민과 용산시민연대,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지난해 9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남공원지키기시민모임을 만들어 동네에 공원 터가 있다는 사실부터 알렸다. 거리 캠페인, 토론회, 문화제 등을 열고 공원 터 앞에 홍보 펼침막도 걸었다. 모금 운동, 후원의 밤 행사도 열었다. 류영일 한남공원지키기시민모임 대표는 “담장에 둘러쳐져서 직접 본 적도 없는 땅이다 보니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남동 토박이인 그 역시 한 번도 밟은 적 없는 땅이었다. 관심을 가지는 주민들에게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도 많은 이가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시민모임은 한번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먼저 용산구와 구의회, 서울시와 시의회를 찾아갔다. 공원 실시계획을 인가해 시간을 벌자고 주장했다. 사업의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인 실시계획 인가를 고시하면 5~7년까지 공원 실효를 유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원 마련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

한남근린공원 터는 땅값이 높은 고급 주택가 바로 앞에 있는 땅이다. ‘부자 동네에 세금 들여 그들만 더 부자로 만드는 것 아닌가’ 등 볼멘소리도 적잖았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일부 고급 주택 단지를 뺀 대부분의 한남1·2동, 북·남 한남동 지역의 1인당 생활권 공원면적(1.3㎡)은 서울시 평균(16.3㎡)의 10%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철로 간사는 “지역의 유일한 평지 공원 터를 지켜 공원으로 조성해내는 건 큰 의미가 있다”며 “코로나, 미세먼지 등 재난을 겪으며 공원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원 조성까지는 5~7년 걸릴 예정이다. 서로 기쁨을 나누며 들떴던 활동 성과 공유회 분위기가 향후 계획을 얘기하면서 이내 진지해졌다. “서울시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쪽으로 발표한 뒤 많은 주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제 시작이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데 회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최영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당장은 한남근린공원 조성에 대한 열람 공고를 2주 동안 한 뒤 서울시가 실시계획 인가 고시를 내야 한다”고 했다. 인가 고시 뒤엔 서울시의회에서 예산 확보 계획이 통과돼야 하고, 토지 매입 협상도 이뤄져야 한다.

설혜영 의원은 “공원 부지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이 많다”며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원 지킴이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민모임은 앞으로 100명의 한남공원지킴이를 모을 계획이다. 지킴이의 첫 번째 활동은 담장과 철조망을 허물고 공원 터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다. 류영일 대표는 “최근까지 미군 부대 사택의 체육시설로 쓰여 큰 보수 없이 텃밭, 운동 공간, 벤치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날 활동 성과 공유회는 설혜영 의원이 한남공원 지키기 시민운동에 큰 역할을 한 서울환경운동연합에 감사패를 전달하며 따뜻한 박수로 마무리했다. 작고 예쁜 감사패엔 주민들의 감사하는 마음이 담겼다. 최영 활동가는 “주민이 주축이 돼 끌어낸 결과다. 앞으로도 주민이 중심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게 곁에서 함께하겠다”고 했다. 설혜영 의원은 “서울숲에 와보니 너무 좋다. 시민들이 나무 심기로 참여를 시작해 이제는 공원 운영까지 맡은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규모나 처한 여건이 다르지만 한남근린공원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도 주민들이 뜻을 모아 함께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연합뉴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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