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향기보다 더한 문학 향기에 취하다

장태동의 한양도성 순성 ② 백악산(북악산) 구간

등록 : 2020-04-02 17:20 수정 : 2020-04-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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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길 가는 길 만난 수연산방·심우장

이태준·한용운 문향에 빠져들게 하고

백악곡성 정상에서 본 호탕한 풍경들은

산행 끝 ‘윤동주 언덕’에서 터놓는다

백악곡성에서 본 풍경. 백악마루(정상)와 인왕산(오른쪽), 남산(왼쪽)이 한눈에 보인다.

한양도성 순성 백악 구간을 걸었다. 원래 코스는 혜화문~경신고등학교~와룡공원~말바위 안내소~숙정문~백악곡성~백악마루(정상)~창의문 4.7㎞ 구간이다. 혜화문에서 출발하려 했으나 출발 지점을 성북동 수연산방(일제강점기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으로 바꾸었다. 수연산방에서 출발해 만해 한용운이 숨을 거둔 심우장을 보고, 꽃이 피어 더 정겨운 옛 골목이 남아 있는 북정마을을 지나면 한양도성 성곽을 만나게 된다. 성곽을 따라 걸어서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 도착 지점인 창의문(자하문)에 다다랐다. 길 건너편 시인의 향기 진하게 퍼지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 지나온 길을 되짚어본다.

문학의 향기 따라 걷는 길


한양도성 순성 백악 구간의 출발 지점을 바꾼 이유는 원래 출발 지점인 혜화문부터 약 800m 정도 되는 구간은 주택가 좁은 도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양도성 아랫마을인 성북동 북정마을의 옛 정취와 문학의 향기 짙은 성북동 골짜기를 걷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수연산방 솟을대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앞으로 걷는다. 그 길에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 집터, ‘승무’를 쓴 시인 조지훈의 집터가 있다. 그리고 출발 지점인 수연산방은 일제강점기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이다. 돌담과 솟을대문이 고풍스럽다.

월북 작가인 이태준이 일반에 알려진 때는 월북 작가의 작품이 해금되던 해인 1988년이다. 당시 한 대학 국문과 교수는 이태준의 작품을 빼놓고 우리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반쪽짜리 문학만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태준은 1925년 <오몽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올랐다. 그리고 1988년 <달밤> <장마> <복덕방> <밤길> <화관> 등 100여 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태준은 자신이 살던 집을 수연산방이라고 불렀다. 방마다 죽향루, 문향루, 상심루 등의 이름을 붙였다. 상심루는 한국전쟁 때 전소했다. 지금 그 자리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방을 만들었다. 본채 앞마당이 깊다. 돌담 아래 우물이 남아 있다. 수연산방은 한옥의 운치를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이태준은 이곳에서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면서 <달밤> <돌다리> <왕자 호동> 등 많은 작품을 썼다.

한용운이 살다가 세상을 떠난 집, 심우장.
수연산방에서 나와 마을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다보면 도로 왼쪽에 한용운 시비와 동상이 보인다. 그 위 골목길로 올라가면 한용운이 살던 집, 심우장이 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세상을 뜰 때까지 살던 곳이다. 한용운에 대한 자료와 그의 친필을 볼 수 있다. 한용운은 1944년 6월29일 심우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는 망우리공원에 있다.


꽃 피어 더 정겨운 성곽 아래 마을 옛 골목길

숙정문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쉼터이기도 하다.

심우장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옛 골목의 정취가 남아 있는 북정마을로 가는 좁은 골목길이다. 어느 집 담벼락 밖으로 꽃가지가 넘어와 골목이 화사하다. 하얀 앵두꽃이 피었다. 달콤한 꽃 향이 은은하다. 봉오리 맺은 홍매화는 아직 꽃잎을 열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잰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는 아줌마는 오늘 장을 뜬다고 했다. 된장을 뜨고 간장을 달이는 날이다. 나무 타는 냄새가 골목을 타고 마을로 번진다. 골목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북정마을이다. 마을 사람들 얘기로는 북정마을은 옛날에 메주를 만들던 동네였다.

마을을 에두르는 도로는 1980년대 초반에 생겼다. 골목 어귀에 핀 꽃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미로같이 얽힌 좁은 골목을 걷는다. 어른 한 명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곳도 있다. 수도가 없던 시절 물지게를 지고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다녀야 했다. 그때는 골목이 좁아 물지게를 지고 똑바로 걷기 힘들었다. 지금도 그런 골목이 남아 있다. 옛 굴뚝의 흔적, 녹슨 양철 문, 슬레이트 지붕, 빨랫줄에 널린 빨래, 칠 벗겨진 우편함, 골목을 걷는 발아래 지붕이 있고 집과 집 사이 작은 터에 밭을 가꾼다. 대문도 없는 집 앞에는 개나리가 문패처럼 피었다.

마을 골목을 걷는데 마음이 평온해진다. 골목에서 나와 한양도성 성곽길로 접어들었다. 성곽 밖에 난 길을 걷는 것이다. 마을 꼭대기에서 뒤돌아본 풍경에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심으로 파고드는 성곽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성곽은 낙산으로, 남산으로, 그리고 인왕산과 백악산(북악산)으로 이어져 지금 이 자리로 연결된다. 그 길이가 18.6㎞다. 600년도 넘은 옛 성곽이 장바구니 들고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향하는 아줌마의 오늘과 함께하고 있었다.

성곽 따라 걷는 길, 최고의 전망지 백악곡성을 지나 백악마루에 오르다

말바위 안내소, 숙정문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른다. 한양도성 성곽 바로 옆에 난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드는 빛줄기가 진달래꽃을 비춘다. 꽃밭 뒤로 숲 오솔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한양도성 순성길(백악산 구간) 전망대는 성곽 안과 밖을 넘나드는 데크 계단 꼭대기에 있다. 푸른 숲을 비집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과 한양도성 북대문인 숙정문이 보인다.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송파구까지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숨을 고른다.

숙정문 방향으로 가기 전에 길을 잠시 벗어나 말바위 전망대에 들른다. 눈 아래 푸른 숲이 펼쳐지고 그 끝에 서울 도심의 빌딩 숲이 이어진다. 인왕산과 남산이 도심을 감싼다. 왔던 길로 돌아가서 숙정문 방향으로 걷는다.

한양도성 성곽 바로 아래 북정마을이 있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나눠주는 통행증을 목에 걸고 숙정문으로 향한다.(백악산 한양도성 성곽길은 출입 시간이 있다. 3~4월과 9~10월은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입산은 오후 4시까지 허용된다. 5~8월은 오후 7시까지이며 오후 5시까지 입산, 11~2월은 오후 5시까지이며 오후 3시까지 입산해야 한다.) 한양도성 북대문인 숙정문은 숲에 있어서 색다른 느낌이다.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숙정문을 지나면 소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아무렇게나 자란 소나무들이 성곽과 어울린 풍경 속을 걷는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백악곡성은 이 길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백악곡성 꼭대기에 서면 360도 시야가 트인다. 백악산의 정상인 백악마루를 지나는 산줄기가 인왕산으로 이어지고, 도심에 우뚝 솟은 남산 뒤로 관악산 능선이 하늘에 금을 그었다. 북한산의 늠름한 자태까지 더하면 그 옛날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경복궁 앞으로 뻗은 세종대로에 기운이 넘친다.

청운대에 있는 작은 목련나무.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피어난 목련꽃이 고고하게 느껴진다.

백악곡성에서 내려와 청운대를 지난다. 어린 목련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다. 목련꽃의 배경이 경복궁과 광화문 광장이다. 백악마루(백악산 정상)를 지나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른다. 가파른 내리막 계단이다. 백악산의 성곽이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게 보인다. 도착 지점인 창의문(자하문)에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커다란 목련나무에 횃불같이 피어난 꽃송이들을 보며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린다. 길 건너편에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그렇게 살다 간 시인 윤동주의 공간,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다. 그곳에 올라 오늘 걸었던 길을 되짚어본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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