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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감염 우려에 ‘철렁’…주민 성원에 ‘뭉클’

등록 : 2020-04-02 14:09 수정 : 2020-04-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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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5개 구청장 긴급 설문조사…코로나, 위기의 순간과 보람의 순간

수십일 방역활동에 탈진 직전 이르러…방역 최일선 의무감으로 버텨내

코로나19 감염 사태 이후 지금까지 2개월여간은 서울 25곳 자치구청장에게는 전례 없는 악전고투의 나날이었다.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방역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서울 25곳 구청장의 방역 현장 모습을 한자리에 모았다. 사진 각 구청 제공

위기를 느낀 순간은? “집단감염 우려. 첫 확진자 때.”

지난 3월8일 오후 노원구 확진자가 구로구 코리아빌딩의 11층 콜센터 직원이라는 통보를 받은 이성 구로구청장은 “콜센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느낌이 안 좋았다”고 한다. 즉시 현장을 조사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밀집한 근무환경으로 집단감염 우려가 커 보였다. 지침대로라면 해당 층을 방역 소독하고 접촉자를 자가격리 조처하는 정도에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이 구청장은 즉각 해당 건물 11층을 폐쇄하고 이와 동시에 11층 근무자 209명 명단을 확보해 서울·경기·인천 자치단체에 알렸다. 그리고 11층 근무자 전원에 대한 검체 검사를 지시했다. 다음날 9일 하루 동안 11층 콜센터 직원 54명이 검사받아 13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몇 명이 감염자일지, 원인이 무엇일지, 2차 감염은 어느 정도일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서울&>이 서울 25곳 전체 자치구의 구청장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감염사태와 관련해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가장 위기를 느낀 순간’을 묻자 이성 구로구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구로구는 확산을 막기 위해 즉시 1층부터 12층까지 전면 폐쇄를 결정하고 건물 옆에 긴급하게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한 뒤 10일부터 3일간 검사했다. 하루 574명을 검사한 날도 있었다. 다른 자치단체에도 빌딩 근로자 명단을 확보해 보내주고 검사받게 했다. 이를 통해 해당 건물 거주자와 근로자 등 1115명 전원에 대한 검체 검사를 했다.

이 구청장은 “신속한 대응으로 최단 시간 내 확진자를 가려내 격리 이송함으로써 지역사회로 2차, 3차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 집단감염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생각한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가장 위기의 순간으로 지역사회 집단감염 우려를 느꼈을 때를 꼽은 구청장이 가장 많았다. 지난 2월 중순 대구 신천지 교회 등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한 만큼 많은 구청장이 지역사회 감염 확산에 긴장했다는 뜻이다.


“대구 신천지 다중 예배로 인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부랴부랴 관내 신천지 교회에 대한 파악에 나설 때가 가장 위기의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교회 현황 파악에 분주했고, 서울시의 교회 폐쇄 결정이 나기 전에 노원구는 발 빠르게 폐쇄했습니다.”(오승록 노원구청장)

“예상치 못한 신천지 교인들의 집단감염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지역사회로 급속히 퍼졌을 때가 구청장으로서 가장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유동근 마포구청장)

이정훈 강동구청장도 “2월25일에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사람이 관내 대형교회인 명성교회 관련 확진자로 밝혀졌을 때가 지역사회 추가 확산이 우려되는 가장 큰 위기 상황이었다”며 “이에 우리 구는 명성교회에 대한 현장대책반을 즉시 구성하고 확진 다음날인 26일부터 명성교회에 현장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하는 등 지역주민이 감염될 우려를 줄이기 위한 선제 대응 조처를 했다”고 말했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감염자가 발생해 총 254명이 현장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은 명성교회 관련 조사를,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은평성모병원과 서울재활병원 등 병원 내 감염 확산 사태를 꼽았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3월12일 관악구 한 회사에서 전체 20명 근무자 중 7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소규모 집단감염 사태를 언급하면서 “여러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머물러 감염 위험이 높은데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있어 혹여나 또 다른 집단으로 감염이 확산하지 않을까 걱정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첫 확진자 발생’을 위기의 순간으로 꼽은 구청장이 적지 않았다.

3월9일 오후 늦게 구로콜센터 확진자의 배우자인 마을버스 운수종사자(구로구 거주)가 강서구 선별진료소의 검사 결과 확진자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 운수종사자가 운행하던 금천01번 마을버스는 주민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재중동포와 중국인이 많이 사는 구이지만 그때까지 확진자가 1명밖에 발생하지 않았던 금천구는 즉각 버스 운행을 중단하고 대대적인 방역조처에 들어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도 2월19일 구내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가 가장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꼽고 주민들 불안 해소에 주안점을 두고 방역태세를 펼쳤다고 한다.


방역 최일선에서 싸울 때 전해진 감사 손편지에 ‘감동’

위기 “집단감염 우려, 첫 확진자 발생 때”

보람 “구민들 서로 위하는 마음 느낄 때”

“자치구에 더 많은 방역 권한 부여해야”

구청장이 가장 보람차고 아쉬웠던 순간은?

그렇다면 구청장이 방역 최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가장 아쉽게 느낀 순간은 언제일까. 이성 구로구청장은 “콜센터의 열악한 환경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 (이번 콜센터 집단감염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중국인 등 외국인에 대한 일부의 혐오와 차별 문제를 꼽았다. “바이러스는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새 학기를 맞아 입국하는 국외 유학생에 대한 지역사회의 염려는 유학생 입국을 막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로 지역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다”는 구청장(성동·금천구청장 등)들의 답이 많았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아예 “아쉬웠다기보다는 안타까웠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시장 상인들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근처 식당가도 그렇고…. 많이들 힘들어하셔서 보는 데 많이 안타까웠다”고 질문을 수정해서 답했다.

방역의 최전선 사령관으로 악전고투의 연속이지만 ‘가장 보람찬 순간’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모든 구청장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기초생활수급비를 한 푼 두 푼 아껴 성금 100만원을 기부한 어르신 사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코로나19 접촉자로 자가격리돼 2주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힘든 시간을 보낸뒤 3월5일, 우리 구 삼성동 주민센터를 찾았습니다. 봉투만 전하고 황급히 돌아가려는 어르신께 동 주민센터 직원이 사연을 물었더니, 생활고로 목숨을 끊으려 했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게 돼 새 희망을 찾았다’며 ‘그동안 받은 도움에 이제는 보답할 차례’라고 기부의 의미를 전했다고 합니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보람의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관내 사회적기업인 ‘더반협동조합’에서 어르신 복지관과 양천사랑복지재단에 마스크를 1만4500장 기부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업체와 긴급히 협의했습니다. 업체에서는 이미 주문량이 많아 추가 제작이 힘든 상황인데도 어르신들에게 마스크를 전달하려는 우리 구에 적극 협력해주셔서 마스크 32만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과 김미경 은평구청장,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주민이 쥐여준 감사의 손편지를 받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마스크 직접 구매가 어려운 지역 홀몸 어르신들에게 직원들이 직접 방문해 1인당 마스크 5장을 배부해드렸는데요. 마스크를 전달받은 중곡4동 주민 한 분이 저에게 감사의 손편지 한 통을 보내주셨습니다.”(김선갑 광진구청장)

“얼마 전 한 유치원의 천마스크 제작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교사분들이 제게 손편지와 건강음료를 주며 오히려 격려해줘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김미경 은평구청장)

“12살 어린이가 얼마 전 보건소 선별진료소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착한 임대료 운동도 한창 진행 중으로 216개 점포가 혜택을 입었습니다. 구민들의 성금 모금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서로서로 위하는 구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류경기 중랑구청장)

성숙한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내는 구청장도 적지 않았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구 최초 4선 구청장으로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전염병을 관리해온 경험이 유효했다. 일사불란하게 대응한 공무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무엇보다도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캠페인 문구처럼 힘든 상황일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똘똘 뭉치는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방역 매뉴얼 구축, 취약계층 지원체계 마련은 숙제

그러나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체계적인 전염병 방역 매뉴얼 구축과 취약계층 지원체계 마련 등 후속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지방정부는 오래전부터 자치분권을 통해 지방에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줄 것을 요청해온 바 있습니다.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가장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 주민과 가장 밀착해 있는 지방정부이기 때문입니다. 3월4일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이 경찰관서에 확진자 등 위치추적요청이 가능하도록 개정됐으나, 종전과 비슷한 단계를 거쳐서 보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실질적 개선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직접 통신사에 의뢰하고, 직접 회신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 개선이 필요합니다.”(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좀더 효과적인 자가격리 방안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몸이 아파도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가는 일이 없도록, 자가격리자 중 경제 취약계층을 위한 별도 지원책도 필요합니다. 현재 중구는 안정적인 자가격리를 위해 격리자의 요청을 받아 10만원 상당의 필요 생필품을 직접 배달 지원하고 있습니다.”(서양호 중구청장)

“코로나19를 거울삼아 위기대응 단계별 문제점을 검토해 매뉴얼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지금처럼 천막, 컨테이너가 아닌 별도 건물 선별진료소를 마련해 언제라도 있을 감염병에 대비해야 합니다. 마스크 수급 문제를 교훈 삼아 국가·지방정부 차원에서 감염병을 비롯한 각종 재난 대비를 위한 전략물자(단순히 재난기금 적립이 아닌)를 비축하고 사태 발생시 빠르게 배분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이승로 성북구청장)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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