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냄새에서 BTS 향기까지…서울의 냄새는 진화한다

등록 : 2020-02-20 15:13 수정 : 2020-02-28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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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오스카상 수상으로 서울의 냄새 관심 높아져

전유안 객원기자, 서울 곳곳 찾아 냄새 지도를 그리다

“김 기사 그 양반.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 상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 속 인물은 사람 몸에 밴 냄새로 사회계급을 결정짓는다. 내 몸에서 정체 모를 냄새가 난다는 것, 냄새 때문에 일종의 ‘하류 인간’으로 판단당하는 노골적인 설정은 그러나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 냄새 만드는 사람 냄새

<악취와 향기>를 쓴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은 아예 ‘가난뱅이와 부자의 체취’란 말을 대놓고 썼다. 그는 사람 몸속에서 ‘훈증해 뿜어 나오는 냄새’가 있다는 유럽 기체병리학자들의 말을 응용한다. 도시 냄새는 사회적 발산물의 총합이며 사회적 발산물 가운데 인간 체취는 상당 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체취는 유전을 비롯해 대기질이나 풍토 등 주거환경과 섭취물에서 영향을 받는다. 도시 냄새가 나쁘다는 건 주거자들 체취가 나쁘다는 말이고, 이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 ‘서울 냄새’ 총합은?

창신동 쪽방촌의 밤. 멀리 화려한 빌딩숲과의 경계는 ‘냄새’가 넘지 못하는 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류는 공중보건상 위생 문제를 중심으로 악취를 완화하거나 제거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계속해왔다. “대도시의 위생은 결국 사적 주거 전체의 총합”이라는 전제 아래 악취 농도와 빈부 격차가 비례한다는 결과는 꽤 오랫동안 인정돼온 사실이다. 오죽하면 16세기 프랑스에선 새로 집을 짓고 나면 회반죽과 습기가 만든 냄새(유해공기)를 피하기 위해 거리 매춘부부터 입주시켰다고 했을까. 빈자는 도시의 부자를 위한 ‘필터’가 되기도 했다.

인구 1천만 명 이상이 숨 쉬는 세계 대도시는 저마다 문제적인 냄새를 지닌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은 서울의 냄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2월 둘째 주 주말 경복궁을 찾아온 남녀노소 외국인 10여 명에게 ‘서울에서 느끼는 향’을 무작위로 물어봤더니 뜻밖의 답이 튀어나왔다. “비티에스(BTS) 같은 아티스트 냄새요.(웃음)” “세련된 향기, 코리안 뷰티, 한국 여성들 파우치에서 나올 만한 냄새.” “20년 전 노량진 쪽 어학원에서 일했는데, 서울에 오면 거기서 맡았던 빵 냄새가 나요.” 여행객들은 각자 가진 머릿속 이미지와 사적인 추억을 ‘서울 냄새’라 표현했다.

후각은 이처럼 주관적이다. 여행객들의 평은 긍정적이지만, 서울 거주자들은 보다 다채로운 냄새를 맡으며 살아간다. ‘이상한 냄새’는 잦은 증언이다. “문은 잠겨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났다.” 지난해 겨울 성북구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숨진 일가족 4명을 발견한 건물 보수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2018년 여름 40도가 넘어간 기록적 폭염이 덮친 서울에서 서대문구의 한 다가구주택 거주자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이상하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더는 못살겠다”며 이웃 주민을 신고해 냄새 역시 층간소음 같은 분쟁의 여지임을 보이기도 했다.

또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알려진 서울 지하·반지하 거주자들과 5개 쪽방촌(돈의동, 창신동, 남대문, 서울역, 영등포) 주민들은 철마다 ‘냄새와의 싸움’을 펼친다. 서울 한 다가구주택 반지하에서 10년째 살아온 김선영(가명·50)씨는 지난해 여름 습기 찬 내벽을 타고 올라온 곰팡이 위로 두 번이나 도배했다며 “아마 나에게 냄새가 난다면 이 곰팡내다. 공기 속 곰팡이가 병을 만든다”며 만성 천식과 자녀들에게 옮긴 피부병을 토로했다.

냄새는 또한 동네 곳곳 부패한 것에서 온다. 서울 한 쪽방촌으로 2년 전 터전을 옮긴 서동민(가명·49)씨는 동네를 안내하며 처음 입주한 날을 명확히 기억했다. “냄새가 건물 창문으로 스며들었죠. 가난하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어요. (하수 시설이 노후해서) 냄새가 땅 밑에서 올라와요.” 매일 아침 이불 정돈과 공기 환기는 “미래가 있음을 기억하는” 의식과 같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4관왕 수상으로 서울의 반지하방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기억하는 서울의 냄새가 언제까지나 긍정적일 것이라고 자신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서울의 냄새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다면, 외국인의 인식 이전에 서울 시민들의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잃어버린 향기를 찾아서

서울에서도 서울의 냄새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다.

서울 한 쪽방촌에서 20년째 사는 박춘엽(가명·77)씨는 공기 정화와 심신 치유 목적을 겸해 집 안팎에 아이비 등 식물을 가득 들였다. 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향기비누 공방’에 다닌다며 색색의 향기비누도 내보였다. “각자 환경에서 사정에 맞춰 사는 거죠. 집이 노후해 냄새가 스며 있어요. 상담소 프로그램에 참여해 비누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눠줘요.” 박씨는 향기비누 공방 프로그램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홀로’들 향기공방 즐겨 찾고 커뮤니티매핑 활용도 늘어

외국인들은 추억 통해 서울 냄새 인식

주거환경 열악 지역 매년 냄새와 전쟁

향기공방, 몸에 맞는 냄새 찾도록 도와

도시 냄새는 사회적 발산물의 총합이다. 영화 으로 ‘냄새’에 관심이 높아진 지금, 주거환경과 몸에 맞는 냄새를 직접 만들기 위해 향기공방을 찾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23일 종로구에 위치한 한 향기공방을 방문했다. 한 잔의 비커에 20여 종의 냄새를 총합해나갔다. 점점 다른 향기로 변화했다.

좋은 냄새를 기대하는 심리는 탈취와 향균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탈취·항균·방향제 등 국내 향기 제품 시장은 2조5천억원 규모로까지 성장했다. 올해는 코로나19사태로 그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서울 곳곳에 있는 50여 개 향기 제조 공방에도 부쩍 손님이 늘었다. 향기공방에선 약 1시간에서 2시간에 걸쳐 주거환경과 몸에 맞는 냄새를 찾아 조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전문 조향사의 지도 아래 적어도 6개, 많게는 40개 가까운 자연과 인공 향기 샘플을 시향 뒤 차례로 덧입혀가는 방식이다. 조향사들은 무엇보다 후각은 ‘기억’과 관련이 높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프루스트 현상’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해나간다.

도시 냄새가 사회가 뱉어낸 발산물의 총합이라면 좋은 냄새의 기억을 만드는 도시가 행복한 도시라 말할 수 있다. 지난 1월 혜화동 향기공방 ‘프루스트’를 찾은 손님 김재민(28)씨는 “나만의 체취와 탈취에 관심을 갖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직장 문제로 지방에서 올라와 관악구에서 혼자 자취한다. 당장 넓고 쾌적한 집으로 이사 갈 순 없지만 좋은 향기로 분위기를 바꿔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웃과 함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악취를 없애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커뮤니티매핑센터(대표 임완수)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커뮤니티매핑센터는 지난해 9~11월 강서구 마곡동에서 ‘냄새 지도’를 만들었다. 비영리단체인 커뮤니티매핑센터는 그동안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지도를 만들어왔다. 센터는 악취 지도 이외에도, 지하철 2호선 역사 주변의 미세먼지 지도, 양천구 신월동의 소음 지도, 경기도 안산시 장애인 접근성 지도 등을 만들어왔다.

커뮤니티매핑센터는 마곡 지역 냄새 지도를 만들기 위해 주민과 지역의 학생들과 함께 센터에서 직접 만든 측정기를 들고 마곡 지역 일대 냄새를 측정했다. 참여 학생들이 마곡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꽃 냄새, 빵 냄새, 청국장 냄새, 달걀 썩는 냄새, 화장실 냄새, 공장 화학품 냄새 등 향기부터 악취까지 주관적·객관적인 모든 냄새를 수집한다. 이를 위치 데이터와 함께 센터 서버에 올리면, 센터에서는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마곡 지역 지도상에 각각의 냄새를 표시하는 것이다. 센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언제 어느 조건에서 악취 또는 향기가 난다는 결론을 낸다.

이와 함께 마장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도 지난해 하반기 매달 첫째 금요일에 주민들과 함께 마장동 지역 냄새 지도를 만들었고, 올해도 지속할 계획이다. 임완수 대표는 이런 시민 참여 프로그램에 대해 “객관적 측정 수치에만 근거했던 소극적인 악취 관리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참여해 시민들이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냄새를 고려하는 적극적인 냄새 관리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냄새는 지금 변신 중이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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