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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자 전원 민간기업 취업” 마포구, 뉴딜 일자리 모범 만들어

등록 : 2019-12-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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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공약사업, 청년 일자리로 연계

디자인 관심 9명, 11개월간 전일 근무

교육·코칭 받아 서체 한 벌씩 만들어

전시회 열고 공모전 참여해 상 받아

지난 10월9일 한글날을 즈음해 마포구 서교동 윤디자인 갤러리에서 마포구 서체 디자이너 9명이 개발한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이들은 마포구의 서울형 뉴딜 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청년들로 직무교육과 일 경험을 거쳐 민간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었다. 마포구 제공

사회 새내기인 손재선(25)씨는 지난해 대학 졸업 뒤 진로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 취업해 3개월을 다녔지만, 월세 감당도 힘들 만큼 급여가 적었다. 더 힘든 점은 비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학원에 다니며 타이포그래피(문자 디자인)로 방향을 잡기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마포구청의 ‘마포서체 개발’ 일자리사업이 그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서체 개발은 디자인 전공자들에게도 특수한 분야다. 서체를 만든 경험이 없는 그에겐 전혀 새로운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마포서체 개발 프로젝트를 그와 함께 한 8명 동료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지난 11개월의 경험을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으로 마포구청 소속 서체 디자이너로 일하며 매달 220만원(세전)의 급여를 받아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었다. 전문가 코칭과 내실 있는 교육 등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혼자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서체를 한 벌씩 만들어냈다. 평균 1년 정도인 서체 개발 기간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결과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한글 글꼴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취업을 희망하는 6명은 서체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고 3명은 창업, 연수·공부를 할 계획이다.


10월28일 마포구청에서 열린 마포서체 개발 사업 최종 결과 보고회에서 손재선씨가 발표하고 있다. 마포구 제공

마포서체 개발은 유동균 마포구청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때 내건 공약사업이다. 유 구청장은 지역 특색을 살린 서체를 소상공인·중소기업인들과 주민들이 널리 사용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길 기대했다. 외부용역이 아닌 청년 일자리사업으로 서체 개발을 추진하도록 담당 부서에 주문했다. 구는 지난해 11월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으로 공고를 내고 디자인에 관심 있는 청년 10명(1명은 중도퇴직)을 뽑았다. 마포창업복지관에 일터를 마련하고 청년들을 도울 일자리 디렉터와 매니저도 한 명씩 선정했다.

서체 개발에 경험 있는 디렉터가 교육프로그램을 짜고, 매니저는 전문가들을 강사로 섭외했다. 마포창업복지관의 담당자는 취·창업,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곁들였다. 참여자들은 혼자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업계 전문가들을 만나 강의를 듣고 코칭을 받았다. 참여 청년들은 “뼈와 살이 되는 교육프로그램이었다”고 평가했다.

서체디자인 전문가들이 개발 과정과 결과물에 대해 조언하고 검수했다. 마포구 제공

마포구는 맥 컴퓨터 임대 등 사무관리비와 디렉터 인건비 등을 지원했다. 참여자들이 전문가의 강의와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을 추가로 마련했다. 추연호 마포구 일자리지원과장은 “한 달에 서너 번 강의와 코칭을 했는데, 참여자들이 그때마다 스스로 성장하는 걸 느낀다고 할 정도로 교육 효과가 컸다”고 했다.

마포서체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에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서체 디자인 업계 전문가들은 경험 없는 청년들이 몇 개월 안에 새로운 서체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했다. 게다가 디렉터, 매니저와의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마음을 모아 서로 도와가며 5개월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각자 약 3천 자의 원그림을 그려냈다. 손씨는 “팀원들끼리 배려하고 도와가며 버텼고, 다행히 구청 담당자가 우리의 어려움을 잘 들어줘 풀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10월 한글날을 즈음해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개발한 마포서체 전시회가 열렸다. 일자리지원과의 조문석 주무관은 “전시회를 찾는 서체 디자인 업계 사람이 기대 이상으로 많았다”며 “빡빡한 일정과 부족한 경험 속에서 만든 기적의 성과라는 평가도 했다”고 전했다.

참여 청년들은 “서체 디자이너로 커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은 “이번 프로젝트처럼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이 진행되면 많은 청년이 크게 환영할 것”이라 덧붙였다. 급여와 일 경험, 역량 강화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워했다. 특히 민간기업이 선호하는 ‘경험 있는 신입’이 될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 교류를 이어가며 여건이 되는 대로 활동도 함께 해나갈 계획이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또래들이 생긴 것도 이들에겐 소중한 자산이다.

마포구는 이번 프로젝트 경험을 살려 비슷한 방식의 청년 일자리사업을 내년에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 특화산업인 방송기획, 디자인·미술, 4차 산업 등의 분야에서 직무교육, 구정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별 프로젝트 개발과 수행, 취·창업 연계를 진행한다. 구는 관련 기업협의체들과 업무협약을 맺어 직무교육 설계 때부터 협업할 예정이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경제 성장 둔화로 청년들의 취업이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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