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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경희궁’ 빈터에서 식민의 아픔을 읽다

등록 : 2019-11-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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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안 객원기자, ‘2019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참가기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주최…임정 100주년 맞아 ‘열기’ 더해

바람 선선해 걷기 좋은 가을. 지금 서울에선 ‘2019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이 한창이다. 서울시 후원으로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가 지난해부터 첫발을 뗀 걷기 여행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추앙의 열기를 더했다. 지난 9월부터 3개월에 걸쳐 총 12개 길을 걸어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훼손된 궁궐 알기’에 무게를 뒀다.

지난 2일 오전 ‘2019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8번째 답사 ‘사라진 궁궐과 둘레길’ 편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경희궁 배치도인 ‘서궐전도’ 종이지도와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카카오톡 채널을 번갈아 살펴보고 있다. 행사를 마련한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는 이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빈터의 원형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답사 프로그램을 꾸렸다.

기억으로 복원하는 경희궁 전각과 돈화문

2일 오전 10시께 50여 명의 시민이 서대문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8번 코스인 ‘사라진 궁궐과 둘레길: 훼손된 궁궐사경희궁 일대’ 편에 참여한 이들이다. 앞으로 2시간30분가량 서울 바닥을 가로질러야 한다. “답사는 체력이죠.” 손은희 독립운동사적지 해설가가 앞장섰다.

왜 ‘궁궐’부터 바로 봐야 할까. 손 해설사가 “일제가 파괴하기 전 궁궐 원형을 정확히 아는 현대인이 드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경희궁 훼손이 가장 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궁궐은 조선 왕조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과 근현대사를 지나는 동안 숱한 파괴를 겪었잖습니까. 역사를 지우려는 일제 의도가 얼마나 치밀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오늘날 우리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처럼 자녀분들과 가볍게 걸으며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거죠.” 궁궐을 제대로 보려면 파괴의 아픔을 담은 ‘빈터’까지 꼼꼼히 봐야 한다는 말이다.


갈 길이 빠듯했다. 우선 7만여 평 규모에 한때 190여 개에 이르렀던 경희궁 주요 전각과 문 터를 훑어보면서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한양도성 서쪽 문인 ‘돈의문 터’까지 집중해 걸었다. 그다음 강북삼성병원 언덕을 지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 선생 서거 70주년을 추모하는 ‘경교장’을 거쳐 단풍이 물든 한양도성 인왕산 자락을 따라갔다. 마지막으로 도성 들머리에 있는 파란 눈의 항일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의 집터와 홍난파 가옥, 3·1운동을 전세계에 타전한 AP 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 ‘딜쿠샤’까지 이번 코스에 포함됐다.

출발은 경희궁 터다. 오늘날이야 관광지와 사진 출사 장소로 친숙한 궁궐이지만, ‘독립운동 사적지’를 주제로 경희궁을 찾았다면 경복궁 정문인 ‘흥화문’과 서울역사박물관 뒤편에 있는 ‘방공호’까지 돌아봐야 한다. 두 곳 모두 일제에 의한 궁궐 훼손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광해군 때 지어 100여 개 전각이 빼곡했던 경희궁은 ‘서궐’로 불리며 숙종부터 정조 즉위까지 최전성기를 보냈다. 경복궁 중건 때 전각의 상당수가 옮겨 갔지만 궁궐 담장과 정문, 주요 전각인 숭정전과 회상전, 융복전 등이 그대로 남아 궁궐 기능을 했다. 일제 때 궁 관리가 조선총독부로 넘어가며 본격적으로 해체됐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문이었던 흥화문과 정전이었던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정자였던 황학정까지 세 채에 불과하다.

“1910년께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경성중학교’와 전매국(담배, 소금, 인삼, 아편, 마약류의 전매 사무를 관장한 관청) 관사가 여기 경희궁 안에 들어서며 전각 대부분이 헐려 나갑니다. 남은 전각은 개인에게 매각했어요. 한 나라 궁궐의 정문인 흥화문이 일본인 학교 정문이 됐다가 1932년엔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 정문으로 전락했으니, 이 모습을 본 백성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흥화문은 광복 뒤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88올림픽을 계기로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일제가 왕과 왕비의 침전인 회상전과 융복전을 밀어내고 공사한 방공호는 1944년 미국 공습에 대비해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면적이 약 1378m²(약 416평)에 이른다. 2017년에야 시민 개방을 시작해 현재 정기적으로 문을 연다. “경희궁 복원을 위해서 제거해야 할까요, 아니면 어두운 역사를 미래에 전하기 위해 보존해야 할까요. 우리 후세대에게 던져진 질문이지요.”


“3·1운동 거점뿐 아니라 서울 전체 걸으며 독립운동 정신 이해”

9~11월 12개 길 ‘궁궐 중심 답사’ 열어

“일제 파괴 전 궁궐 원형 아는 이 드물어”

11월 ‘창경궁·백범기념관 답사’ 접수중

흥화문 터에서 새문안로로 나서 돈의문 터로 걸었다. 한양도성 8개 문 가운데 서쪽 큰문이었던 돈의문은 1396년 축성 당시 사직동 고개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 일제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 확장으로 철거돼 경매에서 매물 취급을 받았다.

당시 한 조선인이 사들였다가 되팔아 이문을 크게 남겨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일제 때 조선인 손에 의해 많은 문화재가 없어졌다는 사실도 애석하지만, 문화재도 파괴하고 조선인들끼리 갈등을 일으킨 일제의 교묘한 의도를 되새길 필요도 있지요. 우리 내부의 갈등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지 않던가요.”


“12코스 답사는 한 편의 드라마 감상과 같아”

9월7일 정동에서 ‘황제의 꿈, 대한제국의길’ 편으로 시작한 탐방 행사는 30일 ‘임시정부와 자주독립의 길’ 편에서 용산구 이봉창생가터와 백범김구기념관 일대를 걸으며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조경연 실장은 “2019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탐방은 코스 개발에만 1년을 할애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 해설사 양성에 공을 들였다”며 “3·1 만세운동 거점만 돌아보며 서울을 분절해 걷기보다 하나의 큰 맥락 안에서 독립운동 정신을 이해하자는 시도였다. 한 편의 미니시리즈를 본 듯 ‘이야기 경험’을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사저 및 집무실로 사용했던 경교장(사적 제465호)을 방문한 시민들.

친동생 가족과 인천에서 온 김대영(43)씨는 “지난해부터 관심이 있던 행사다. 자녀들이 역사적 현장을 직접 보고 듣고 적극적으로 따라다니더라”며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김채민(11)양은 “얼마 전 책에서 본 ‘딜쿠샤’를 직접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제 만행을 세계에 알려 조선 독립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앨버트 테일러 일가 이야기에 점수를 줬다.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예약은 온오프믹스 누리집(onoffmix.com)에서 회차별로 받는다. 30일까지 매주 2회(금, 토요일) 운영한다. 예약 남발과 무단 불참을 우려해 1인당 3천원 참가신청비를 받지만, 참석자 전원에게 문화상품권 3천원을 준다. 답사 지형 여건상 휠체어와 유모차 동반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 3~6학년 어린이는 ‘가족반’으로 따로 예약을 받는다.

현재 9코스 ‘일제강점기 청년 인재들의 선택: 종로구 정신여고 터, 대학로 일대’(11월8, 9일), 10코스 ‘가둘 수 없는 독립의 열정: 서대문구 독립문, 형무소 일대’(11월15, 16일), 11코스 ‘유원지가 된 궁궐: 훼손된 궁궐사 창경궁편’(11월22, 23일), 12코스 ‘임시정부와 자주독립의 길: 용산구 이봉창 생가터, 백범김구기념관 일대’(11월29, 30일) 편을 준비 중이다.

카카오톡 채널에서 ‘독립운동사적지탐방’을 검색해 추가하면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키워드 검색으로 ‘우여곡절 끝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현장’과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문의: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070-7536-4403)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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