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 보편 보장 첫걸음

기고ㅣ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

등록 : 2019-07-1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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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프면 쉴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소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게(유급병가) 되면 참말로 좋겠어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편안히 아플 수 있잖아요. 사실 꿰매고 다음날 나가서 설거지하는 사람, 자궁 들어내는 수술하고도 일주일 만에 나가서 다시 일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이 제도가 있으면 내가 좀 맘 편히 아플 수 있고 여유도 생기고. 근데 그게 없으니까, 오로지 내 몸뚱아리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내가 아파도 아플 수가 없잖아요.”(어느 가스검침원의 이야기)

대리운전, 퀵서비스, 건설 현장 노동자, 소규모 영세 자영업자 등 하루 수입으로 하루 생계를 잇는 노동 취약계층은 아파도 일당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 이것이 우리 노동 건강 복지 현주소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장 체계를 세웠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이 늘면서 일을 쉬어야 할 정도의 병이 생기면, 치료비는 고사하고 바로 생계에 곤란을 겪는 사람도 적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2016년 기준 유급휴가를 쓸 수 있는 비율이 약 32%로,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영세 자영업자도 비슷한 처지가 많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서 중증 질환 이후 의료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는 지난 6월1일부터 유급휴가를 보장받지 못해 아파도 치료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일용노동자, 특수 고용직 종사자, 영세 자영업자 같은 노동 취약계층에 연간 최대 11일(입원 10일, 공단 일반건강검진 1일)까지 서울시 생활임금(2019년 1일 8만1180원)을 지급해주는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을 전국 최초로 실시했다.

이런 문제를 겪는 시민이 많겠지만 일단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근로소득자 또는 사업소득자이면서 기준 중위소득 100%(1인 가구 170만7008원, 4인 가구 461만3536원. 2019년 기준) 이하의 서울 시민에게 먼저 시행한다.

서울시와 전국요양보호사중앙회 등 15개 유관 단체는 지난 6월3일 서울시청에서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 참여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서울시 제공

고용주를 특정할 수 없는 일부 건설 노동자, 봉제업 종사자 등도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라면 서울시 유급병가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단, 국민기초생활보장, 서울형 기초보장, 긴급복지(국가형·서울형), 산재보험, 실업급여, 자동차 보험 등의 수혜자는 중복 혜택이 되므로 제외한다. 해당 시민은 입원 또는 검진 후에 주소지 관할 동주민센터와 보건소에 문의하고 신청해 지원받을 수 있다.

유급병가 지원 사업을 하면서 만난 어떤 분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직장을 그만둔 남편이 작년부터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A형 간염에 걸려 10일간 입원하게 됐다. 우리 남편이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앞으로도 유급병가 지원을 몰라서 혜택받지 못하는 분이 없도록 이 글을 읽은 분들은 널리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병을 앓고 있는데 생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건강보험제도의 혜택을 누려야 하지만, 일시적인 생계 위협을 이유로 적기 질병 발견과 치료를 놓친다면, 병을 키워 나중에 건강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건강보험제도의 ‘보편적 보장’이라는 목표가 무의미해진다.

이번 서울시 유급병가 지원 사업은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누구나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데 첫걸음을 뗀 사업이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질병 조기 발견과 치료를 보편적으로 도와주는 제도라 자부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제도가 알려져 더 많은 시민이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서울시 유급병가 지원 제도가 연대와 포용, 희망의 정책이 되기를 희망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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