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동’의 진화, 높아진 주민참여율

기고ㅣ황인식 서울시 행정국장

등록 : 2019-04-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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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아흔을 바라보는 기초생활수급자 어르신에게 이 말을 건넨 이는 공무원이 아니라, 어르신과 비슷한 처지의 기초생활수급자 아저씨였다.

무더위가 한창인 지난해 8월 한 동네를 찾아 ‘달가이버’라 하는 주민들과 활동을 함께한 적이 있다. 항상 남의 도움만 받던 50대 남성 수급자들이 같은 처지의 다른 이들을 돕는 해결사로 변신한 모습은 한여름 뙤약볕에도 활기가 넘쳤다. 집 밖에 잘 나오지도 않던 이분들이 지금은 골목골목을 누비는 해결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올해로 5년차를 맞고 있는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이 있다. 찾동은 찾아간다는 말 그대로 주민들의 여러 어려움을 공공이 찾아가서 듣고 공감하고 해결한다는 정책이다. 그런데 만 4년의 경험을 토대로 찾동 정책이 느낀 것은 주민이나 지역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공적 지원체계로 기본 조건을 갖춰주는 것 말고도 사람들끼리 체온 나누기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찾동은 서비스 전달자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주민이 지역사회 안에서 의미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행정으로 그 역할을 이동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찾동 정책은 단순히 더 많은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전달 효율 최적화 모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복지에 대한 공공의 책임은 높여가되 그 전달 방식은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키워주는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주민복지가 찾동 이후 달라진 지점이다.

공공의 행정력과 주민의 관계성을 엮어 지역 복지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찾동에 또 하나의 중요한 플랫폼 기능이 있는데, 바로 ‘마을 자치’다. 이는 1995년 지방자치제도 도입으로 동주민센터가 공공복지 전달 기관이자 주민참여 공간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얻은 것에 뿌리가 닿아 있다. 주민 행복은 공공이 책임져야 할 생존권, 또는 사회권적 기반 위에 주민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때 완성된다.

지난 9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찾동 2.0 출범식’에서 박원순 시장과 25개 자치구청장, 시민 등 500여 명이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찾동은 참여와 합의, 협치와 소통을 강조하는 공동체 모형을 실어 지역 정책의 당사자이면서도 그동안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주민을 자치의 공론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주민들은 탑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의 정책 수혜자라는 기존 역할에서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어젠다화하고 토론하며, 주민총회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책의 생산자·집행자로 역할을 전환해가고 있다

과거에 동주민센터가 주민을 행정의 대상으로 보면서 복지 신청주의를 택했다면, 찾동은 발굴주의에 입각한 현장 중심의 공공서비스센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4년간(찾동 1.0)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새로운 도약(찾동 2.0)을 선언했다. 1.0 버전이 인력을 확충해 찾아가는 서비스로 주민과 거리를 좁히고, 주민참여 촉진으로 공동체 복원에 주력해왔다면, 2.0 버전은 더 튼튼해진 공공 안전망과 더 촘촘해진 주민 관계망을 연결해 공공과 주민이 함께 지역사회의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도록 설계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첫째, 갑작스레 찾아온 위기를 넘겨줄 수 있도록 서울형 긴급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둘째, 돌봄이 필요한 주민을 72시간 안에 찾아가는 ‘돌봄SOS’ 사업으로 서비스가 분절되어 있어 이 기관 저 기관 헤매는 분이 없도록, 원스톱 책임 돌봄 서비스를 강화했으며 △셋째, 3명 이상의 주민이 제안하면 열리는 ‘골목회의’를 통해 이웃과 만나고 인사하며 지내기 위한 주민들의 골목반상회를 지원하고 △넷째, 주민참여를 제도화한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주민세 징수분의 일부를 주민에게 돌려줘 주민조직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다섯째, 주민 간 연계망을 지지해 공공이 놓치고 있는 잠재적 복지 수요자들을 주민들로부터 소개받는 ‘시민 찾동이’ 사업을 펼친다.

아프면 언제든 돌봄을 받을 수 있고, 어려울 땐 호소할 공무원과 이웃이 내 가까이에 있으며, 주민들과 호혜적인 관계망을 기반으로 지역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주민들의 권리로 제도화된 골목의 삶, 이것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2.0이 가려는 길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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