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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가 된 첫날, 기자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이충신 기자, 택시회사에 취업하다-①주간 택시 체험 일기 첫날부터 카드결제기 고장나 고치느라 30분 동안 땀 ‘뻘뻘’

등록 : 2019-01-03 15:53 수정 : 2019-01-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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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충신 기자가 금천구에 있는 한 택시 회사에 취업해 택시 기사로 일한 지 사흘째인 지난해 12월14일,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택시, 처음이신가보죠.”

“예.”

“인상도 좋으신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택시 기사 체험 첫날, 2018년 12월11일 새벽 5시께 금천구에 있는 ○○○○ 택시회사 배차실에 도착했다. 배차부장과 기사 넷 중 나이 지긋한 한 기사가 나에게 물었다. 예상치 않은 질문에 얼떨결에 “개인택시 하려고요”라고 짧게 답했다.

교대자인 김아무개(76) 기사와 인사를 나누고 카드결제기 사용법, 미터기 조작법, 운행기록일보 작성법을 배웠다. 미터기에는 주행거리, 영업거리, 수입 금액 등 모든 운행 기록이 저장된다. 택시 기사의 영업 실적이 고스란히 보관돼 아주 중요하다. 택시 기사는 하루 업무가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운행기록일보를 작성해 배차실에 내야 한다.

“내가 아침에 일찍 못 나오니까 원래 교대 시간은 4~6시이지만 5시30분에 교대를 합시다. 주간반은 세차를 해야 하니 교대 시간보다 더 빨리 들어와야 해요.” 김씨는 교대 시간에 늦지 않도록 신경 쓰라고 주의를 줬다.

택시 기사의 ‘운행기록일보’. 택시 기사는 이것을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 일을 시작하고 끝마친다.


#1일째

아침 6시15분께 드디어 처음으로 택시를 몰고 어둠이 걷히지 않은 도로로 달려갔다. 긴장해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흥대로를 타고 구로구 신도림 쪽으로 주행하다 영등포구 신대방 쪽으로 빠졌다(당시에는 어디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었고, 며칠 뒤 알았다).

아침 7시가 가까워질 무렵, 어디서 어떻게 승객을 태울지 고민하던 차에 어둠 속에서 어렴풋하게 사람이 보였다. 승객이 문을 열고 택시에 타자 “어서 오세요”라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퀴퀴한 담배 냄새가 먼저 났다. 승객이 “불광동”이라고 짧게 말했다. 얼핏 뒤쪽을 살펴보니 등산 가방을 메고 작은 생수통을 하나 들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려는데 첫 승객이라 당황해서인지 시간이 좀 걸렸다. 승객은 곧바로 내부순환로로 가자고 했다. 내가 “내부순환로요?”라고 되물었지만, 내부순환로를 어떻게 갈지 앞이 캄캄했다. ‘택시가 처음이라 내비 찍고 가겠다’고 했지만, 내비게이션 자판이 잘 눌러지지 않았다. 몇 초 안 되는 그 순간이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승객이 “에잇~”하고 짜증을 내면서 택시에서 내려버렸다. 생애 첫 택시 승객을 놓치고, 허탈감이 엄습했다.

10여 분 뒤 관악구 봉천역 근처에서 한 남성이 손을 들어, 택시에 태웠다.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묻자, 4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승객은 “대림동”이라고 말했다. 다시 “대림동 어디까지 가시죠?”라고 하자, “대림3동 ○○○번지 가주세요”라며 친절하게 번지까지 일러줬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으며 “일찍 출근하시네요” 하자, “늦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괜히 물었나 혼자 되뇌며 가속페달을 밟고 빠르게 달렸다. 20여 분 뒤 목적지에 도착한 승객은 골목에 주차해놓은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첫 승객은 7㎞ 거리를 달려 요금 8천원이 나왔다. 첫 손님을 태우고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해 결제를 하고나자, 머릿속에서 팝콘이 터지는 듯했다. 흐뭇한 기분으로 2~3분 동안 승객이 떠난 자리를 바라봤다.

지난해 12월14일 경의중앙선 신촌역에서 한 승객이 기자가 모는 택시에 타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오전 8시를 넘어서자 머리가 멍한 듯 아파왔다. 첫날이라서 긴장한 탓인 듯했다. 가속페달과 제동페달을 번갈아 밟느라 다리도 아팠다. 승객을 태웠을 때와 달리 빈 차로 다닐 때는 운전하랴 도로변 승객들 살피랴 두 배로 신경이 쓰였다. 횡단보도 앞에 정차했을 때는 건널목을 건너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 택시를 탈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했다.

반나절도 안 돼 엉뚱한 데서 애를 먹었다. 여의도에서 승객을 태워 영등포로터리에 도착했는데 카드결제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불 버튼을 누르고 카드를 꽂아도 ‘윙윙윙’ 소리만 날 뿐 결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하자, 사정을 직감한 승객이 현금 5천원을 내면서 거스름돈은 됐다고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 카드결제기와 ‘낑낑’대며 씨름했다. 회사로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지만 정비기사의 설명은 복잡한 암호처럼 들려 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30여 분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다시 주행과 지불 버튼을 번갈아 누르면서 카드결제기에 내 카드를 꺼내서 꽂았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결제가 이뤄졌다. 이전 승객의 카드가 제대로 꽂히지 않았던 듯싶다. 카드결제기와 씨름하느라 입을 너무 앙다물었는지 양쪽 어금니 쪽이 아팠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오후 회사에 도착하자, 야간 교대조인 김씨가 “정신없죠. 힘들지?” 하며 운행기록일보를 적으라고 알려줬다. 배차실에 들어가자 배차부장이 “많이 했냐?”고 물었다. “10만원요” 하자, “첫날인데 뭐…”라며 천천히 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반대해 10일 분신한 최아무개씨를 추모하기 위해 20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주간 5일 근무 중 사납금 채운 건,

딱 하루뿐이었다”

서대문구 북가좌동 골목 꼭대기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바라본 풍경.

#2일째

택시 운전 2일째인 12일 새벽 5시께 배차실에 들어서자, 50대 택시 기사 신아무개씨는 분신한 최씨를 “택시 업계의 전태일 열사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최씨는 홧김에 죽은 게 아니고 자기 목숨을 내던질 계획을 세웠다”며 “택시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씨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사장 앞으로 두 통의 유서를 남겼는데, 택시 기사들 처우 개선과 카카오 카풀 서비스를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국의 모든 택시 노동자들이 불같이 일어나 이번 기회에 택시 근로자들이 제대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이 한 몸을 내던진다. 카풀이 무산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 바란다.” 최씨는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나서서 택시 기사들의 열악한 문제를 해결해주길 원했다.

최씨의 분신에도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는 택시 기사들을 대하는 승객들의 시선은 온정적이지 않았다. 일본에 산 적 있다는 40대 여성 승객은 지방에 가기 위해 수서역까지 가면서 택시 기사 분신 얘기를 꺼냈다.

“일반 시민들이 택시 기사를 응원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고 있죠. 지하철이나 버스 파업에는 동정적인데, 택시는 그렇지 않은 거 알고 있나요?” 그는 이어 “분신도 했는데 여론이 택시 기사들에게 동정적이지 않은 건, 왜 그럴까요?”라고 물었다. 내가 “해법이 없을까요?”라며 되묻자, 그는 “일본과 달리 국내 택시는 너무 불친절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촌동에서 광흥창역으로 가는 30대 여성은 카카오 카풀 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택시는 급하거나 가까운 거리를 갈 때 자주 이용한다”며 “카풀은 안전 보장이 안 되고, 같은 목적지인 사람을 태우는 게 쉽지 않고, 중간에 내려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건 번거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위례 신도시에 사는 40대 승객은 한국 택시도 경쟁력을 쌓고 나서 소비자에게 요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카카오 카풀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공유경제는 시대의 흐름인데, 택시 기사들도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택시 기사용 앱 화면.

기사들 “분신 택시기사는 전태일 열사”

승객들은 분신에 비온정적 분위기

“불친절한 게 문제” “카풀, 안전 문제”

“승차거부 많이 당해” 울분 승객도

서울시, 6년 만에 택시 요금 크게 올려

“택시 기사, 생활임금 285만원 기대”

둘째 날 13만4300원 벌어

주간 사납금 12만9천원 한 번 채워

#3일째

택시 기사 3일째 되는 날에는 일진이 사나웠다. 아침부터 펑펑 내리는 눈에 갇힌 듯 낮 1시께까지 강남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후부터 두통이 심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엘피지(LPG) 가스 때문에 그럴 수 있으니 창문을 조금 열고 다녀야 한다고 알려줬다. 이날은 또 온종일 빈차-주행-지불 버튼을 누르는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승객을 태우고 주행 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승객이 내려도 빈 차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달리기도 했다. 나중에 아차 싶어 급하게 버튼을 눌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오후 2시30분께 중구 신당동 충무아트센터에서 30대 여자 승객을 태우고 강남구 신사동으로 왔지만 미터기에는 달랑 기본요금 3천원만 찍혔다.

승객이 기자의 택시에서 내리고 있다.

브레이크마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드르럭, 덜컥하며 브레이크라이닝 닿는 소리가 났다. 손님들이 깜짝 놀라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곤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스충전소가 있는 구로구 구로역으로 가는 도중 동작구 이수역 부근에서 강남구 역삼동 상록회관으로 가는 승객 두 명을 태웠다. 남부순환로로 접어들어 10여 분 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앞차 바퀴 사이로 검은 무엇이 튀어나왔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지나가는데 바퀴에서 전달되는 물컹거리는 감촉이 머리를 쭈뼛 서게 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후사경(백미러)으로 뒤쪽을 살폈더니 강아지인 듯한 작은 동물이 네 다리를 펴고 바들거리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쪽 방향의 승객을 태운 것을 후회하면서 속으로 명복을 빌었다.

공릉동 근처에서 택시를 탄 30대 남성은 승차거부를 많이 당해봤다며 말을 붙였다. 그는 “주말에는 카카오택시로도 택시 잡기가 어려워 1천원 추가 결제해야 잡히더라”며 “성신여대에서 정릉 가자면 기본요금이라서 평일에는 잘 안 가고, 주말에는 아예 안 간다”고 성토했다. 이어 “승차거부를 신고해도 녹음이 안 돼 있으면 어떻게 할 수 없고, 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래 걸린다”며 “기사들은 생업이니 기사들 편을 많이 들겠지만, 승객들은 승차거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열만 난다”며 울분을 토했다.

서울시는 새해 들어 중형택시 기본요금을 3천원에서 38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심야 할증 시간인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1천원 오른 4600원이다. 거리요금은 132m당 100원(10m 축소), 시간요금은 31초당 100원(4초 축소)으로 조정했다. 서울 택시 요금 인상은 2013년 10월 기본요금을 2400원에서 3천원으로 올린 뒤 약 6년 만이다.

지우선 서울시 도로교통본부 택시물류과장은 <서울&> 인터뷰에서 이번 기본요금 인상은 택시 기사 처우 개선에 방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지 과장은 “그동안 노동자(택시 기사) 처우가 너무 열악했다”며 “기본요금 인상으로 노동자가 서울 생활임금 수준인 285만원 정도의 평균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 과장은 앞으로 승차거부 등 민원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택시의 승차거부 현황을 보면, 2012년 1만 6741건에서 2018년 11월까지 5652건으로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다. 불친절은 2012년 5876건에서 2018년 11월까지 6706건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지 과장은 “기초지자체에 있던 처분권을 모두 가지고 왔다”며 “이번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승차거부는 확실히 없애겠다는 시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4일째

4일째 되는 날, 서대문구 경의중앙선 신촌역에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까지 가는 승객을 태워 1시간30분을 주행해 2만8500원을 받았다. 택시 영업을 하는 동안 올린 최고 수입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가스충전소가 있는 구로역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갈까 망설이다가, 3시 조금 넘은 시간이라서 곧바로 가스충전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승객을 태운 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해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해봤더니 4시15분으로 나왔다. 거기 갔다가 교대 시간인 5시30분까지 가려면 빠듯하지만, 도곡동에서 구로역까지 1시간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금요일이라 차들이 막혀 5시가 되어서야 타워팰리스에 도착했고, 다시 구로역까지 1시간30분이나 걸려 6시30분에 도착했다. 회사에 들어가니 7시에 가까워 교대 시간을 1시간30분이나 넘겨버렸다. 야간 교대조인 김씨는 잔소리에 이어 “나도 5시30분까지 못 오지”라며, 내게 “내일 좀 늦게 나와!”라고 말한 뒤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5일째

5일째인 15일에는 늦잠을 자 새벽 6시40분께 회사에 도착했다. 이날 강남에서 강북을 오가며 하루 만에 한강 다리를 일곱 번이나 건너다녔다.

내비게이션을 100% 믿으면 낭패를 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강남에서 르네상스 호텔을 찍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갔더니 역삼동이 아닌 방배동 카페 골목이 나와 어이가 없었다. 신림동에서 양재동으로 가는 승객을 태우고 남부순환로로 가자는데, 내비게이션은 자꾸 강남순환로로 길 안내를 해 애를 먹었다. 살짝 옆으로 빠졌다가 다시 남부순환로로 들어서자 “왜 왔다갔다 해요?”라는 승객의 짜증 섞인 핀잔을 들어야 했다.

2018년 6월 기준 서울 택시는 7만1845대로, 법인택시 254개 업체에 2만2603대, 개인택시 4만9242대이다. 택시회사의 사납금(납입 기준금)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금천구에 있는 이 회사의 사납금은 주간 12만9천원, 야간 14만9천원이다. 정해진 사납금을 맞추면 월급 130만원을 받는다. 이제 갓 시작한 초보 택시 기사가 사납금을 맞추기는 힘들었다. 첫날에는 10만600원을 입금해 사납금에 2만8400원이나 모자랐다. 주간 택시 운전을 하는 5일 동안 사납금을 맞춘 날은 둘째 날인 12일 딱 하루뿐이었다. 카드 9만4800원에 현금 3만9500원 합계 13만4300원으로 사납금보다 5300원 더 벌었다.

전체 8일의 택시 운전 중 낮 운전 5일은 사납금, 승차거부 등 현안들이 운전대를 타고 전달돼온 기간이었다.

택시 요금 결제 영수증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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