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역~홍은사거리 개발, 400억원 예산으로 수천억원 효과”

다선의 힘, 구정의 완성ㅣ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등록 : 2019-01-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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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민센터를 복지의 허브로 삼는 등

앞선 복지행정으로 ‘복지구청장’ 별명

지하철 홍제역 지하를 230m 연장

홍은사거리 연결 ‘언더그라운드시티’ 개발

“지방을 바꾼 지방분권 전문가” 평

우리 사회는 중앙 통제 방식이 아니라

지방분권 토대로 발전을 추구할 시점

초심 잃지 않는 구청장 되겠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세 번째 임기 핵심 과제의 하나는 아동친화적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서대문구는 2010년부터 ‘100가정 보듬기’ 운동 등 아이 돌봄 서비스를 꾸준히 해왔다. 올해 3월에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육아종합지원센터가 가재울 지역에 들어서고, 서대문문화체육관에서는 키즈 헬스케어센터 공사를 하고 있다. 문 구청장이 지난해 12월21일 서대문구청 직장 어린이집을 방문해 크리스마스 선물 잔치에 한창인 아이들과 같이 산타클로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키가 커서 ‘서대문 키다리 아저씨’로 통하는 문석진(63) 서대문구청장은 복지행정으로 유명하다. 그의 현장 중심 복지정책인 ‘동 복지 허브화’ 사업은 이미 우리나라 복지행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가 만든 무장애 안산자락길도 서대문구 최고의 쉼터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문석진 하면, 지방이 중앙을 바꾼 구청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그는 남은 임기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하철 홍제역과 홍은사거리 일대의 복합 개발”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서울 구청장 중에서도 특히 자치분권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의 권한을 함께 확대할 수 있는 지방자치 실현”에 국민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 선거에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67.3%)로 3선에 성공했다. 세 번 연속 당선의 원동력을 자평한다면?

“그동안 해왔던 정책의 눈에 보이는 성과들, 혁신적 의제들이 실제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걸 지켜보면서 많은 신뢰를 보내주시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거기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 등 시대적인 요구가 합쳐지면서 큰 지지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지난 8년 임기 동안 한 일 중 가장 애착 가는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지난 임기 동안 제가 얻은 별명이 ‘복지구청장’이었다. 동주민센터를 복지의 허브, 즉 복지행정의 중심으로 삼은 게 우리 서대문구가 시초였다.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복지 대상자를 먼저 찾아가서 발굴하고, 행정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분들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돕도록 하는 ‘100가정 보듬기’ 같은 운동도 펼쳤다. 또 IT(정보통신 기술)와 연결해 복지정책의 스마트화를 선도했다. 지난 6년 동안 연속으로 복지행정상을 받았는데, 이는 서대문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서대문구가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복지정책을 선도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주민 실생활 면에서는 안산자락길을 만든 것, 신촌에 차 없는 거리를 만든 것 등도 정책을 통해 사회를 바꾼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보람을 느낀 사업이다.”

남은 마지막 임기 중에 잘 갈무리해서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우리 서대문구는 구도심 지역이다 보니 미래도시로서 공간 재설계가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홍제동 일대는 서대문구 주민들의 주요 생활 근거지이고 교통의 중심지임에도 상대적으로 많이 낙후돼 있다. 그래서 지하철 홍제역 지하 공간을 홍은사거리까지 연장해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시티’를 만드는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결 길이가 약 230m인데, 이 지하 공간이 연결되면 홍은동과 홍제동 일대의 3개 도시환경정비사업과 더불어 홍제역-홍은사거리 일대 역세권 개발이 가능하다. 40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몇천억원짜리 프로젝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만큼 성공적인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 어디에 있겠는가? 예산 400억원을 만들려고 부지런히 서울시와 중앙정부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좀 도와주면 좋겠다.”

사업이 확정되면 후임자가 좋아하겠다.

“후임자가 누구이든 숙제도 있다. 서대문구 장기 발전 과제로 유진상가를 철거하고 홍제천을 복원하는 일이 있다. 아주 명확한 숙제를 남기고 가게 될 것 같다. (웃음)”

최근 서울시 자치구 우수 행정 사례로 서대문구의 박스퀘어가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지난 9월 문을 연 박스퀘어는 경의중앙선 신촌역 앞의 빈터를 활용해 건립한 3층 높이의 컨테이너 복합구조물인데, 이대 앞 거리가게 상인 23명과 청년 창업자 18명이 입주해 있다. 거리가게와 청년, 도시가 상생하는 훌륭한 본보기로서, 이대 앞에서부터 신촌에 이르는 지역경제에 큰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본다.”

지역 개발은 주민의 실질적인 관심사이다. 민선7기 지역 발전 전략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이번 민선 7기 서대문구 지역 발전은 기존의 신촌, 가좌, 홍제, 북아현 지역에 북가좌와 서대문을 추가해 모두 6개 권역으로 추진된다. 새로 추가한 서대문권역은 2021년 개관하는 임시정부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묶어 역사문화벨트로 만들고, 서대문역 주변은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선정된 천연·충현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을 통해 도심 생활권을 정비하고 이와 연계한 음식 특화거리를 만들 계획이다. 북가좌권은 2020년 북가좌2동 복합청사를 건립하고 2022년에는 가재울도서관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3월 개관하는 가재울 4구역 내 종합보육시설에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육아종합지원센터도 들어서게 된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업인 ‘100가정 보듬기’ 사업이 지난해 500호를 돌파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사업을 추진해 2020년까지 700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

회계 전문가로 지방자치와 재정 분권에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한 조언도 부탁한다.

“중앙정부가 지방분권한다면서 재정·업무 이양 등 실질적인 문제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명분은 지방정부의 능력이나 도덕성을 충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인데, 1995년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4년째에 접어든다. 그사이 전국이 고루 발전한 데는 지방자치제가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지방자치 리더들은 결국 자기한테 투표하는 사람을 바라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행정 서비스가 발전한 게 아닌가. 우리 사회는 이제 중앙 통제 방식이 아니라 지방분권을 토대로 발전을 추구할 시점에 와 있다. 다음 단계 발전을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226개 지방정부를 믿어줄 때가 되었다.

지하철 홍제역 지하 공간 확장에 4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400억원을 구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서울시에 가서 사업 설명을 하고 예산을 달라고 손을 벌려야 한다. 만약 재정분권이 이뤄져서 우리에게 그 400억원이 있다면 1년이면 사업을 끝낼 수 있다. 이 시스템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공정한 과정을 통해 능력 있다고 뽑힌 사람에게 돈과 권한을 줘봐라. 실패하는 곳도 있고 부패하는 곳도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게 두려워 전체가 전진할 수 없어서는 안 되잖는가? 지방소비세 조정 등 재정 분권을 위한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절실하다. 지방을 믿어주고, 책임을 나눠 지게 하면 오히려 실패 확률도 낮출 수 있다.”

지난번 정부의 개헌 시도는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수포가 돼버렸다. 최근에는 여야가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원포인트 개헌에 합의한 듯하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솔직히 국민의 권익과는 거리가 멀다. 의원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질 있고 뜻있는 인물이 진입하기 어려운 정치 구조가 온존하는 데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선거 돕는 사람들을 공천하고, 그런 사람들이 지역정치를 채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질적인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점들이 바로잡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번 임기를 마치면 연임 제한을 받는다. 아직 임기가 3년 이상 남아 있지만, 큰 의미에서 정치적 포부나 진로도 궁금하다.

“지역정치를 시작할 때 국회의원을 목표로 권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저는 자기 힘으로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구청장 자리가 더 좋았다. 그래서 지난 8년은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 구청장 다음은 국회의원, 식의 접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구청장을 마친 뒤에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시대의 운이고 소명일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에게 바란다고 되고,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이란 없다. 시운은 시운대로 맡기고 지금은 지금 일을 충실히 하는 게 순리다.”

끝으로 서대문구 주민들께도 한 말씀 부탁드린다.

“민선 7기에도 주민 여러분과 함께하기 위한 소통의 통로를 활짝 열어둘 것이다. ‘사람’과 ‘공존’이라는 구정 철학을 바탕으로 ‘행복도시 서대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민 여러분께서 늘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은 구청장’ ‘내 문제를 항상 생각해주는 사람, 내가 힘들어하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사람,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관여해주려는 사람’으로 주민 여러분의 마음에 남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MB 청와대서 복지 강의…회계사 출신 재야 운동 경험

△민선5~6기(2010~2018) 서대문구청장 △목민관클럽 상임대표(현)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지방분권개헌 특위’ 위원장(현) △경실련 예산감시위원(2000~2002)△제4대(1995) 서울시의원 △공인회계사, 서울세무회계사무소 대표(1993~2010) △서울 대광고, 연세대 경영학과 △1955년 전남 장흥 출생, 부인 박효숙씨와 1남1녀

문석진(63) 서대문구청장은 ‘복지 구청장’으로 통한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허브 시스템’, 박원순 시장의 현장 중심 복지정책인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의 모델이 바로 문 구청장이 처음 시작한 동단위 복지정책인 ‘동 복지 허브화’ 사업이었다. 2013년 이명박 정부가 민주당 출신의 현직 구청장인 그를 청와대로 초청해 ‘문석진표’ 복지정책을 복지 관련 정부·민간 관계자들에게 경청시킨 일은 유명하다. 그는 이런 복지정책의 성공적 수행으로 지난 세 번의 구청장 선거에서 내리 당선했다. 이번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67.3%)로 주민 선택을 받았다.

문 구청장은 회계사 출신으로는 드물게 재야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활약하다가 지역정치에 입문했다. 그를 정치로 이끈 사람들도 고 김근태 같은 재야 민주화운동 지도자와 최민화, 김학민 등 연세대 출신의 학생운동(민청학련) 선배들이었다. 그는 회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선배·동료들이 민주화운동으로 감옥에 가는 동안 회계사 공부를 했다는 마음의 짐 때문에” 노동, 재야·시민단체의 회계, 감사 일을 도맡아 지원했다. 이 인연으로 정치를 시작해 2010년 민선 5기 서대문구청장에 당선됐다. 선거는 총 7번 나가 4번 붙고 3번 떨어졌다. 낙선은 회계사를 하면서 휴가를 내고 도전한 첫 시의원 선거와 2002년 새천년 민주당 시절 국회의원 출마 권유를 마다하고 서대문구청장에 도전했을 때, 그리고 2006년 열린우리당 몰락 때. 서울시 의원 때는 회계사라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연소 재무경제위원장으로 활약했으며, 구청장이 되어서는 복지 분야는 물론 지방자치 전문가로 자타가 인정한다. 희망제작소가 주관하는 지방정부 수장 모임인 목민관클럽을 주도(현 상임대표)하는 한편 지난해 8월부터는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그는 광주를 거쳐 서울로 전학해 대광고,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고 1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기 전까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시험 운은 없는 편이어서 전교 수석을 하고도 중학교 입시와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때의 낙방 콤플렉스가 오랫동안 무의식을 지배했으나 할머니의 기도,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종교적 낙관주의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은사의 요청으로 재벌 손자 동급생에게 경제학 원론을 가르쳤으나, 그걸 사적 인연으로 연결 지을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회계사무소를 운영하며 재야 노동·사회단체 회계 업무를 도울 때는 수사 관계자들의 ‘경고’를 두렵게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나를 있게 한 이것

할머니의 기도, “나를 지켜준 힘의 원천”

음모와 술수가 넘치는 지역정치판에서 끝까지 나를 지켜낸 힘이 무엇일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새벽 기도였다. 어린 시절을 지배한 실패의 경험과 콤플렉스를 이겨내게 했던 할머니의 사랑. 할머니의 기도가 있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실패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과정이라고 여기며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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