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걷자 기부의 기쁨이 따라왔다

걷기 앱 ‘워크온’ 개발한 정해권 스왈라비 대표

등록 : 2016-05-12 22:16 수정 : 2016-05-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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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협업해 시민들의 걷기 활동을 북돋워 줄 앱을 개발한 정해권 스왈라비 대표가 이용자의 나이와 성별, 키와 몸무게 등을 입력하면 하루 적정 걸음수가 설정되는‘워크온’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5월4일 나와의 ‘배틀’을 시작했다.

 첫날 기록은 8783. 목표치인 하루 6000 걸음을 가뿐히 넘겼다. 이거 너무 쉬운 승부 아냐? 속으로 우쭐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다음 날 여지없이 무너졌다. 황금연휴가 시작된 5일, 집에서 빈둥대며 바깥에 오래 나가 있지 않았더니 3707 걸음에 그쳤다. 슬그머니 걱정이 들었다. 50대 초반에 하루 6000 걸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배틀은 안드로이드 체제의 휴대전화에 ‘워크온’(WALKON)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깔면서 시작됐다(아이오에스용 앱은 6월에 나올 예정이다). 워크온은 서울시가 시민들의 비만 예방과 건강 증진을 위해 5월부터 도입한 ‘걷기 마일리지’를 실행하는 도구다. 스마트폰에 설치해 놓으면 사용자의 움직임을 분석해 걸음 수와 이동 거리, 이동 경로 등을 알려 준다.

 “흔히 ‘만보계’라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구요? 사용하면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실걸요.” 워크온을 내놓은 스타트업 기업인 스왈라비(Swallaby)의 정해권(34) 대표 말에서 패기와 자신감이 묻어났다.

 우선 맞춤형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사용자가 연령과 성별, 키, 체중 같은 신체 정보를 입력하면 사용자의 처지에 맞는 1일 목표 걸음 수가 나옵니다. 일종의 하루 권장량이죠.” 예를 들어 키 175㎝, 몸무게 75㎏의 45살 남성이라면? 하루 목표치는 1만1000 걸음이다. 50대 초반인 기자는 키와 몸무게 등을 조합했더니 목표치가 6000 걸음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걷기 관련 정보를 모아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나온 평균치라고 한다.

 나 혼자만의 걷기가 아닌, 함께 걷기도 가능하다. “워크온을 깔고 있는 사람은 친구로 초청할 수 있어요. 그 친구가 얼마나 걷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문자로 열심히 걸으라는 응원 메시지도 보낼 수 있죠.”

 무엇보다 두드러진 차이점은 ‘보상’을 한다는 점이다. 워크온에는 걷기를 후원하는 여러 스폰서(파트너)들이 있는데, 사용자가 일정한 목표치를 달성하면 파트너가 제공하는 커피전문점 쿠폰, 식품 할인 쿠폰 등을 받을 수 있다. 정 대표는 “사용자는 많이 걸을수록 보상을 받고, 스폰서는 걷기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소비자에게 자신(또는 상품)을 알리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워크온은 정 대표가 지난해 9월 설립한 스왈라비의 ‘1호 제품’이다.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2010년 삼성전자에 취업한 정 대표는 지난해 독립해 헬스케어 관련 벤처기업을 세웠다. “2014년 여름 삼성전자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걷기 앱 아이디어가 당선됐어요. 그 뒤 1년 동안 연구를 해 프로토타입(시제품이 나오기 전 제품의 원형)을 만들었고, 지난해 삼성전자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차렸죠.”

 ‘스왈라비’라는, 좀 낯선 이름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왈라비는 삼성전자를 의미하는 ‘S’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캥거루인 ‘왈라비’를 더한 합성어다. 정 대표는 왈라비가 영리하고 씩씩하게 뛰는 게 특징이어서 걷기 앱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스왈라비가 서울시와 협업을 하게 된 것은 지난 1월부터다. 시민들의 걷기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고민하던 서울시 쪽에서 워크온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 왔다고 한다. 스왈라비는 앱의 완성도를 높였고, 서울시는 지난 3월 한달 동안 자치구에서 시범 운용을 해 시민 참여와 기업 후원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워크온은 ‘내가 걷는 걸음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기부의 차원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게 됐다. 시범 운용에는 1만5000여명이 참여해 8억500여만 걸음(56만3000여㎞)을 모아, 한국야쿠르트가 목표로 내걸었던 4억5000만 걸음을 훌쩍 넘겼다. 한국야쿠르트는 이에 따라 서울에 사는 노인 100분에게 100일 동안 아침 안부인사와 함께 신선한 유제품을 드릴 예정이다.

 5월 들어 서울시가 ‘걷기 마일리지’를 운용하기 시작한 뒤, 지금은 데상트스포츠재단과 함께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서울 시민이 워크온을 이용해 50억 걸음을 걸으면 재단 쪽에서 어린이 800명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다. 이 캠페인에는 5월11일 현재 2만7000여명이 참여해 20억 걸음을 모았다. 말 그대로 ‘티끌 모아 태산’이다. 물론 사용자 자신을 위한 이벤트도 있다. 30만 걸음(누적 기준)을 달성한 시민에게는 한달 1회 추첨을 해서 메트로 10일 이용권을 준다. 365만 걸음을 달성한 시민은 항공권 받을 기회도 얻는다.

 “서울시로부터 재정적 지원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민의 건강을 추구한다’는 비전을 공유하고, ‘걷기 마일리지’를 통해 워크온이 널리 알려질 수 있으니, 스왈라비도 얻는 게 많지요.”

 정 대표는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대학 등으로 파트너십을 넓혀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와 파트너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스왈라비의 토대도 자연스럽게 다져 나간다는 구상이다.

 “걷기는 단순히 살을 빼거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분을 즐겁게 하고, 창의적인 사고에 큰 도움을 주지요. 일과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워크온을 통해 걷기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외국에서도 사랑받는 플랫폼이 되도록 키워나가야죠.”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걸어라, 그리고 행복해져라. 건강해져라”며 걷기를 권했다. 이제 워크온과 함께 걸으면, 여기에 ‘나눔’이 더해질 수 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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