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588 재개발사업, 임기 중 해결해 뿌듯”

다선의 힘, 구정의 완성ㅣ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등록 : 2018-11-15 15:12 수정 : 2018-11-1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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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구청장직, 관록과 열정 묻어나

“서둘지 말고 멀리 봐야” 초선에 조언

예산·권한 중앙이 장악, 개헌해야

서울약령시 관광 명소화, 대표적 업적

청량리역 주변 개발 2020년 완공 목표

청량리 시장, 200억 투입 도시재생

교육·복지·문화 힘 쏟을 계획

현재 임무 충실히 하는 게 도리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지난 7일 동대문구 약령중앙로에 있는 서울한방진흥센터 앞에서 서울약령시장과 한방 의료 관광 활성화 등을 설명하고 있다. 유 구청장은 “한방 의약은 최근 한방 의료 관광, 한방차를 통한 체질 개선, 피부 미용 등 일상과 접목되는 다양한 분야로 그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동대문구 한방 산업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가 심혈을 기울여 세운 서울한방진흥센터 건물은 올해 ‘2018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유덕열(64) 동대문구청장은 학생 시절 반유신 시위로 ‘사회참여’에 나선 뒤 재야 민주화운동을 거쳐 30대 초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동대문구 지역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30년 동안 동대문구에서만 두 번의 낙선과 다섯 번의 당선을 기록했다. 아마도 당분간 유 구청장만큼 동대문구 지역에서 정치적 경력을 쌓은 지역 정치인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7월 네 번째(연속으로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구청장 임기를 시작한 그는 임기 동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임기 후’에 대해서도 이미 생각을 시작한 듯한 모습이었다. 노련하면서도 열정이 식지 않은 관록이 인상적이었다.

출마 제한 마지막인 3선에 성공했다. 이번 선거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다면?

“당내 후보 선출에서 본선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내 경선에 대한 부담으로 서울 25개 자치구청장 후보 중 가장 먼저 선거운동에 뛰어드는 등 모든 열정을 쏟았다. 그러다보니 한 달가량 더 구정에 공백기가 생겼다. 구민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한편으론 민선 7기에서 제가 할 일을 제대로 생각해보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했다. 선거를 치르면서 가장 실감한 것은 구민들의 의식 수준이 공무원과 지역 정치인의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정치는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선 2기 구청장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4선이다. 현재 서울에 3명의 4선 구청장이 있지만, 앞으로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시의원 시절을 포함하면 5선이지만, 평소 다선을 내세우지 않는다. 선수가 높으면 관록이 쌓이고 그만큼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선수가 쌓일수록 오히려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자매도시인 일본 도쿄 도시마구의 구장은 82살로 5선째다. 이분 별명이 ‘미스터 도시마’인데 도쿄도의원 3선, 구의원 재선까지 도시마에서만 10선째(일본은 출마 제한이 없다)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우리도 이런 정치 문화, 전통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저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에서 13명의 초선 구청장이 나왔다. 다선으로서 초선들에게 조언한다면?

“크게 봐서 두 가지다. 서둘지 말 것, 멀리 내다볼 것. 어느 모임에서 만난 초선 구청장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빨리 결과를 내고 성과를 얻으려 하다보면 오히려 사고를 치게 된다고. 초선 임기 4년만 보지 말고, 재선을 전제로 8년 후를 내다보며 차근차근 한 단계씩 나아가면서 정책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면 성과는 따라오게 된다. 저도 초선 시절을 돌아보면 다음 선거 위주로만 생각한 게 결국 문제를 만들었다.”

4선 구청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문제점은?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 입안자나 결정권자 가운데 특정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지역의 자치단체장이다. 그런데도 권한은 쥐꼬리만 하다. 예산도 권한도 다 중앙이 쥐고 있다. 나라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시급하다. 빨리 개헌을 해서 대통령이 쥐고 있는 권한이 아닌, 짐을 지방과 나눠 지는 게 맞다.”

지난 8년간 구청장이 수행한 사업 가운데 업적을 하나만 꼽으라면?

“오래전부터 동대문구의 서울약령시를 관광 명소화하기 위해 힘써왔다. 2006년 한의약박물관을 개관했고, 주변 경관을 정리해 깨끗한 한방 테마거리도 만들었다. 2013년에는 서울약령시가 한방특정개발진흥지구(이하 ‘한방특구’)로 지정되는 쾌거를 끌어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의약 복합문화 체험시설인 서울한방진흥센터를 개관했다. 진흥센터를 중심으로 동대문구 경제의 한 축인 서울약령시 한방 사업을 부활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싶다. 7년 차에 접어든 구의 대표적 복지사업 ‘보듬누리’도 동대문구의 자랑스러운 성과이다.”

동대문구의 현안을 소개해달라.

“여러 현안 가운데 청량리 4구역(속칭 ‘청량리 588’ 일대) 재개발사업은 20년 전부터 동대문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는데, 제 임기 중에 해결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청량리역 주변에 65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 4개 동과 호텔, 백화점, 공연장 등을 갖춘 42층짜리 랜드마크 타워가 들어서고, 인접한 동부청과시장에도 대규모 주상복합 건물 4개 동이 지어질 예정이다. 여기에 총 1089가구 규모의 미주아파트 재건축, 동북선 경전철 연결 등 다양한 철도 교통망 확충 등이 제대로 진행되면 동대문구는 교통·주거·업무·문화 등이 어우러진 서울 동북권 최고의 상업중심지, 최첨단 복합도시로서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다. 이 밖에 서울약령시, 경동시장, 청량리농산물시장 등 대형 전통시장의 발전적 재정비도 과제다.

지난해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2단계 사업지로 선정된 청량리종합시장은 지원 예산 200억원을 들여 2021년까지 노후화된 시설과 시장 환경을 개선한다. 지난 8월 말에는 제기동 감초마을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2018년 도시재생 뉴딜 사업-우리 동네 살리기형’ 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됐다. 이곳은 1970~80년대에 지은 낡은 건축물이 밀집해 있어 주거 환경이 열악한데, 이번 도시재생 사업으로 많이 개선될 수 있다. 전농7구역 학교·문화 부지 문제도 내년까지는 매듭을 짓도록 하겠다. 현재 빈터로 남아 있는 이 터에 구민들은 학교 유치와 종합문화예술회관 건립으로 인프라를 확충할 것을 요구한다. 학교 신설 대신 도심 학교 이전을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

남은 임기 동안 힘을 쏟고 싶은 분야는?

“교육·복지·문화 분야다. 지난 8년 동안에도 초·중등 학생의 인성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민선 7기에도 아이 키우기 좋고 자녀 교육하기 좋은 ‘교육특구 동대문’을 만들기 위해 계속 투자하겠다. 교육은 지역 발전의 핵심 조건이기도 하다. 현재 27.5% 수준인 공보육 분담률을 임기 내에 50%까지 끌어올리고, 교육경비 지원예산을 서울 시내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싶다.

동대문에는 6800세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4300세대의 차상위 계층 복지 대상자가 있다. 복지 사각지대인 차상위 계층의 생활 안정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다. 세 번째로 남은 임기 동안 구민들에게 문화 사업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예를 들어 동마다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1천만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상 세 가지 분야에 역점을 두고 남은 임기를 마치려 한다.”

3선을 하고 나면 더 이상 구청장 직에 출마할 수 없다. 경험의 사장이란 측면에서 보면 아까운 일이기도 하다. 정치인으로서 미래의 비전이나 포부가 있다면 듣고 싶다.

“3선이다보니 다음에 뭐 할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저라고 생각을 안 해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식 코멘트는 ‘현재의 임무를 충실히 한다’이다. 그래도 자꾸 물어보는 분들에게는 ‘서울시장에 나갈까?’라고 하면 더는 묻지 않는다. 여의도(국회의원 출마)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은 지금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게 구민에 대한 도리다. 다음 일은 그것대로 또 생각할 기회가 있지 않겠나.”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부마항쟁 참여…초년 고생 많이한 민추협 출신

△민선 2기(1998), 5~6기(2010~2018) 동대문구청장 △민주당 사무부총장(2007), 조직위원장(2005) △제4대 서울시의원 운영위원장(1997) △최훈 민주당 의원 보좌관(1988), 평화민주당 조직국장 △민추협 선전부장(1985) △서울 송곡고, 동아대 정외과, 경희대 대학원 법학과(박사 과정) △1954년 전남 나주 출생, 부인 정승교(62)씨와 2녀

유덕열(64) 동대문구청장은 3선 연임까지만 할 수 있는 지자체장을 4선째 하고 있는 3명의 서울 구청장 중 한 사람이다. 1998년 민선 2기 동대문구청장을 지낸 그는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 민주당 조직위원장, 사무부총장을 거쳐 2010년 ‘제2의 고향’ 동대문에서 다시 구청장에 당선됐고, 이번 민선 7기까지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동대문 지역에서 쌓은 그의 정치력은 1980년대 재야 민주화 운동조직인 민추협(선전부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고 단단하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유 구청장은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게 되자 서울에 사는 동네 형을 찾아 무작정 상경하면서 인생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 중구 신당동에 정착해 빵 공장 일과 신문 배달을 하면서 고학을 시작한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신문보급소에서 먹고 자며 하루에 신문을 500부까지 돌리는 힘든 생활을 감내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던 그는 부산에서 항해사를 하는 큰형님의 도움으로 부산 동아대에 진학했고, 여기서 인생의 두 번째 전기를 맞았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반유신 시위인 부마항쟁 당시 동아대 학생 시위의 첫 불씨를 댕긴 학생이 유덕열이었다. 시위 주도자로 체포된 그는 군 보안대를 거쳐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가혹한 고문과 체형을 당했고, 계엄법 위반 혐의로 4개월간 구금되기도 했다. 지금도 청년 시절 부마항쟁에 참여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는 “그때 부마항쟁이 아니었다면, 유덕열이라는 사람은 아마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31살 때인 1985년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 진영이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맞서기 위해 연대·조직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선전부장을 맡는 등 민주화운동 진영에 몸담고 있다가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했다. 평화민주당, 신민당 등을 거쳐 집권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첫 번째 동대문구청장에 당선됐다.

나를 있게 한 이것

'한겨레신문’, “제 삶의 궤적과 비슷”

창간 때부터 <한겨레>를 구독해온 평생독자로서 제 삶의 궤적이 <한겨레>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 선출직 임기를 보내면서 지난 30여 년 정치 역정과 공직 생활을 돌이켜보니 결국 <한겨레>가 지향해온 가치들과 함께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남은 3년 반의 임기도 그런 마음으로 채우려 한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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