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동마다 '풀뿌리 복지 공화국' 세울 것”

초선이 민선 7기 서울 구정 이끈다ㅣ서양호 중구청장

등록 : 2018-11-01 15:19 수정 : 2018-11-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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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지역 출마해 자유한국당 3선 저지

당선자 시절부터 지시한 그늘막 설치

이행 않은 구 직원, 시 간부 한마디에 세워

모두 뽑아 직원 조례 “관료행정” 비판 파문

발전수당, 기초단체 노인연금 형식 지급

젊은층 도심 공동화 지역 유입 위해

영·유아 보육 서비스 확충 노력

동주민센터로 70~80가지 업무 이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서양호 중구청장은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패기 넘치는 말투와 패션 감각은 그의 정치 스타일까지 엿보게 한다. 취임하자마자 전임 청장이 추진하던 이른바 ‘박정희 공원’을 “정치적 목적의 끼워팔기 행정”이라며 취소시켰고, 구청사 리모델링도 “주민 우선 행정에 맞지 않는다”며 중단시켰다. 그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민선 7기 구정 슬로건은 ‘중구민을 위한 도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양호(51) 중구청장의 등장은 한마디로 시끌벅적했다. 무난하게 3선을 하리라 여겨지던 자유한국당 소속 현직 구청장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고, 취임하자마자 잠재적인 ‘대권 도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기 싸움을 건 듯한” 사건을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500여 명 직원을 구청 마당에 모아놓고 직원 조례를 하면서 “구청장 비위나 맞추고, 상급기관 눈치나 보며 정작 주민 행정은 뒷전인 관료행정”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 신인의 ‘이름 알리기’ 혹은 ‘군기잡기’로 깎아내리는 시각과 그 반대편에선 “유쾌, 통쾌, 상쾌”의 박수 소리가 작지 않았다. 중구를 “중구민을 위한 도시로 만들어드리겠다”는 그는 이미 재선을 향한 레이스를 시작한 모습이다. “한 번 더 선택받게 되면, 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주민생활 공공서비스가 완결되는 ‘동(洞)정부’를 세워 풀뿌리 민주주의를 완성해 보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거침없이 밝혔다. 13명의 초선 구청장에게 한 <서울&>의 구청장 인터뷰 콘셉트는 ‘초선이 민선 7기 구정을 이끈다’였다. 서 구청장이 콘셉트에 가장 잘 부응한 초선 구청장으로 기록될지 지켜보자.

첫 선출직 당선을 축하한다. 시사평론을 하다가 선거에 뛰어들었다.

“종합편성채널에서 시사평론을 하던 선배들이 선거에 출마하면서 빈자리를 때운다는 게 정치평론가란 이름표까지 달게 됐다. 시각이 진보적인 국민의 편에 있다보니 3년을 갔지만, 사실 방송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내 정치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오히려 더 하게 만들었다.”

초·중·고를 동대문구에서 다녔으니 연고가 거기인데, 어떻게 중구에서 출마하게 됐나?

“서울은 지방과 달리 인물이 괜찮으면 연고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중구는 저 스스로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다. 자유한국당은 강남 서초, 중구를 필승 지역으로 꼽았지만, 진보 대 보수, 노무현·문재인 대 이명박·박근혜 등의 대립각을 잘 드러낼 인물이 나선다면 민주당에 승산이 있다고 봤고, 저도 그 적임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 ‘문재인 정부 성공을 위해’ 이른바 ‘험지’ 출마를 자원했다. 당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저를 전략공천했다고 본다.”

중구는 주요 선거 때마다 ‘집권당’이 바뀌었다. 선거를 직접 해보니 중구의 주민 성향이랄까? 특징이랄까? 그런 것을 실감했을 것 같다.

“중구는 지역이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도층이 두껍다. 그래서 선거에서도 늘 실리적인 선택을 해온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당을 심판하고 시대의 흐름을 타는 게 ‘실리’였다.”

취임 초, 서울광장에 설치한 그늘막을 뽑아 가고, 구청 마당에 직원들을 모아놓고 긴급 직원 조례를 열어 화제가 됐다.

“당선자 때부터 지시해도 안 되고 있던 주민용 그늘막 설치가 서울시 간부 말 한마디에 시청앞 서울광장에 일사천리로 설치됐다. 이런 행태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관료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민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관료행정, 전시행정, 늑장행정, 눈치행정에 경종을 울리고, 부끄러운 구정을 깊이 반성하자는 의미에서 서울광장에 심어놓은 그늘막 4개를 뽑아와 구청 앞마당에 세워놓고 긴급 직원 조례를 했다.”

조례 때 직원들에게 무슨 말을 했나? 직원들도 무척 긴장했을 것 같다. 

“단순히 그늘막 하나만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구청장 중심의 관료주의 행정을 타파하고 구민 중심의 행정으로 구정의 우선순위를 바꾸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효율 만능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행정을 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 구청에 와서 보니 같은 청사 안에서도 비정규직과 기간제 근무자들은 차별 대상이었다. 우리끼리도 효율만 따지고 사람을 보지 않는데 하물며 일반 시민 행정은 어떻겠는가 생각해보자고 했다. 우리가 그걸 안 하면 우리도 가해자라는 말도 했다. 그늘막을 뽑아다 구청 마당에 본보기로 세운 의미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서울시 간부 징계까지 박원순 시장에게 요구했다고 하던데?

“제 메시지는 공직자 모두 관료행정에서 벗어나보자는 충정인데, 표현 방식이 다소 과격했고,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알려지는 바람에 오해가 생겼다. 그래서 시장 공관으로 찾아가 박 시장께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리고, 오해가 생긴 부분에 사과도 드렸다.” (그는 이후 중구청에 내건 펼침막을 떼고 직원 징계를 물렀으며, 뽑아온 그늘막 4개는 창고로 옮긴 뒤 내년에 쓰기로 했다.)

평소 구청의 행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뒤 구청장이 선출직이 되면서 대부분의 구청이 구청장 (인기) 중심의 전시행정 위주로 흘러갔다고 본다. 일은 말 잘 듣는 과장이 중심이 되고, 국장급은 허수아비거나 뒷짐 신세가 됐다. 구청장 관심 사업 잘하면 승진이란 당근을 주면서 이런 걸 효율적인 행정으로 포장했다.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구청장과 연고가 있거나 충성하는 젊은 과장, ‘소년 사무관’들이 득세하다보니 행정 조직은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과 ‘라인’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말이 발탁 인사지 편중 인사가 거듭된다. 결국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나머지는 손을 놓게 된다. 잘나가는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무슨 일을 하나? 인사에서 지역 차별 얘기가 자꾸 나오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직원 조례에서 저는 비분강개의 마음이었다. 초보 구청장이 구정 직원에게 드리는 일종의 호소문이었는데 국·과장, 팀장급들에겐 대단히 불편한 자리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한편으로 그날은 9급 신입 공무원들이 임명장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그들이 뽑아다놓은 그늘막 앞에서 임명장을 받으며 진정한 공직자의 의미를 생각해주길 바랐다.”

추진하고자 하는 중구의 당면 과제와 대책을 간략히 정리한다면?

“3대 핵심 과제는 노인 복지, 영·유아 보육, 그리고 실질적인 공공서비스 제공이다. 저는 이것을 ‘역사에 대한 존경과 미래에 대한 투자로 중구를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역사에 대한 존경이란, 복지가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사회발전공로수당’을 만들어 내년부터 기초단체 노인연금 형식으로 지급하는 것을 이른다. 그 방안을 수립 중이다. 지역화폐 사용과 연동시켜 중구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이게 잘되면 파급력이 클 것이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젊은 인구 유입으로 중구를 활성화하자는 전략이다. 중구는 지난 7년간 인구가 15만 명에서 12만5천 명으로 줄었다. 기존 인구는 노령화하고 젊은 인구는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인구가 들어오려면 공동화된 도심 지역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 공간을 많이 만들고,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영·유아 보육 지원체계가 잘 갖춰져야 한다. 현재 중구의 초등 돌봄 대상이 약 7500명이다. 이들의 학교밖 활동을 구 행정이 책임지는 구조를 4년 안에 만들려고 한다. 세 번째는 생활 속에서 공공서비스가 만족할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주민이 집을 나서서 10분 안 거리에 생활에 필요한 공공서비스가 있으려면 동주민센터가 주민 행정의 중심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내년부터 70~80가지 업무와 50~100명 정도의 인력을 구청에서 동 단위로 보내려 한다. 동장이 자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도 만들 계획이다. 이상 세 가지 과제를 4년간 해서 성과를 거두고, 다시 임기 4년의 기회가 주어지면 주민 생활거점인 동에서 복지·건강·문화·도서관 등 공공서비스가 제공되는 이른바 ‘동(洞)정부’를 실현해보고 싶다.

앞으로 4년간 중구를 이끌 구청장으로서 각오와 함께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취임하고 나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청장 되더니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거다. 그래도 행사 다니며 악수하고 손 흔들고 하는 일은 안 하고 싶다. 대신 일하고 싶다. 주민 여러분들도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거다. 같이 놀아주고 밥 먹어주는 베짱이 구청장이 좋은지, 밤새워 일해가며 호주머니를 불려주는 개미 구청장이 나은지 판단해달라고 하고 싶다. 저는 겉만 화려한 베짱이보다 묵묵히 일하는 개미가 되려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시사평론가 출신 저돌적 정치 신인…노무현 정부 행정관

△시사평론가,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2016)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동대문갑 후보 신청(2012)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비서실 행정관(2003~2007)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대위 청년특위 부위원장(1997) △1967년 경남 사천 출생. 서울 청량고, 숭실대 철학과

서양호(51) 중구청장은 소설 속 돈키호테를 연상시키는 저돌적인 정치 신인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무명이다시피 한 그의 이름을 정치판에 각인시킨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당초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중구청장에 당선된 ‘사건’이다. 득표율은 다른 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청와대 행정관과 시사평론가란 전력만 가지고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으로 3선에 나선 현역 구청장을 큰 차이로 꺾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두 번째는 구청장에 취임하자마자 벌인 ‘그늘막 사건’이다. 지난여름 폭염이 계속될 때, 중구청이 서울광장에 설치한 그늘막 4개를 뽑아와 중구청 앞에 ‘눈치보기 관료행정의 전형’이라며 전시해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간부들을 경악게 했다. 그는 그늘막을 뽑은 이유에 대해 “당선자 시절부터 지시한 폭염 대비 그늘막 설치가 내내 지지부진하다가, 서울시 간부가 한마디 하니까 담당 구청 직원이 제꺼덕 그늘막을 설치했다. 어떻게 화가 나지 않겠는가?” 했다. 그는 이어 직원 500여 명을 구청 광장에 모아놓고 긴급 직원 조례를 열어 자신이 생각하는 관료행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고 한다. 그는 뽑아온 그늘막을 구청 앞에 세워놓고 펼침막까지 내걸었다. ‘서울시엔 즉시행정, 중구민에겐 늑장행정, 중구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이를 본 대부분의 서울시와 구청 간부들은 몹시 불편해했다고 한다. 운동권 출신 초선 구청장의 ‘정치 쇼’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중구에서 벌어진 일 가운데 가장 통쾌했다”며 박수도 나왔다.

서양호 구청장은 전대협 출신의 586 운동권 정치인의 일원이다. 천주교도인 그는 대학 시절 가톨릭학생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학생운동권의 중심에 섰다. 아버지가 진주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를 마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상하게도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강했던 게 자연스레 학생운동의 열정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념에 의한 사회변혁”이 공허해지자, 현실 정치를 통한 사회 개혁 쪽으로 방향을 잡은 운동권 선배들의 정치 진출 활동을 도우면서 그도 자연스레 정치권에 들어왔다. ‘고향’ 동대문에서 민주당 김희선 의원 보좌관을 했고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다. 2012년 “내 정치를 하고 싶어” 서울 동대문갑에 국회의원 후보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뒤, 시사평론을 하면서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민주당 열세 지역으로 분류된 중구에서 “장렬한 전사”를 각오하고 첫 선거에 도전해 2위 후보를 16%포인트 이상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민주당 출신 24개 서울단체장의 일원이 됐다.

나를 있게 한 이것

낡은 선풍기, “나를 깨우는 소리”

세운상가 주민들이 나쁜 공기를 하소연하며 들고 온 먼지 낀 선풍기를 보관하고 있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밑바닥 서민들, 힘없는 약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고 늘 다짐했다. 여기까지 나를 오게 한 것은 저 낡은 선풍기처럼 윙윙거리며 나를 깨우는 민중의 소리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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