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처리·주차난 등 생활 문제 근본적 해결 먼저”

초선이 민선 7기 서울 구정 이끈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등록 : 2018-10-18 15:25 수정 : 2018-10-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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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출신의 최연소 구청장

슬로건 ‘탁 트인 영등포’ 내세우며

산뜻하고 모던한 도시로 탈바꿈 의지

5대 역점 사업 중 교육 문제 최우선

고질적인 쓰레기 처리 문제

해결될 때까지 매주 현장 방문 계획

주민 1천 명 이상 동의하는 청원은

가부간 직접 답변할 생각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취임 첫날부터 백팩을 메고 출근했다. 잘생긴 젊은 구청장의 색다른 등장에 많은 구청 직원이 놀랐다고 한다. “오래된 도시 이미지의 영등포를 젊고 스마트한 도시로 탈바꿈시키고 싶다”는 그는 구청 직원들에게도 ‘워라벨’ 즉, 일과 휴식,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권한다. “직원이 책상을 붙들고 있지 않아도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채현일(48) 신임 영등포구청장의 슬로건은 ‘탁 트인 영등포’다. ‘탁 트인다’는 소통과 협치를 지향하는 뜻이라고 한다. ‘원조 강남’이었으나 지금은 변화와 발전이 정체된 느낌의 영등포를 “산뜻하고 모던한 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젊은 구청장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집권 민주당이 일찌감치 단수로 공천한데서 짐작할 수 있듯 미래의 지방분권 시대를 내다보고 발탁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숙의 민주주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고, 보좌관으로 일했던 박원순 시장에게서는 ‘협치의 기술’을 배웠다는 이 젊은 구청장이 영등포를 과연 어떻게 변화시킬지 자못 기대된다.

당선을 축하한다. 구청장 출마를 위해 청와대 근무도 8개월 만에 그만뒀다. 본래 선거에 뜻이 있었는가?

“물론이다. 국회에서 근무한 기간이 십수 년이다. 정치에 오래 몸을 담게 되면 누구나 자기 정치를 꿈꾸지 않나? 기회가 왔는데 출마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최연소에다 경력도 단출한 편이다. 출마가 이르지 않나, 라고 생각한 유권자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어쩌다 최연소가 되었지만, 출마 자체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지방분권을 주요 국정 과제로 세웠다. 최근 청와대가 자치발전비서관에 구청장 출신(민형배 전 광주 광산구청장)을 발탁하지 않았나? 그 밖에 서울의 두 전임 구청장이 청와대에 들어갔다. 저 역시 당으로부터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단수공천을 받았다고 자부한다. 문재인 정부 국정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선출직에 나서는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등포구에 출마하게 된 연유는?

“개인적으로 영등포에서 10여 년째 살고 있다. 첫 직장(여의도 국회)이 있고, 지금도 딸아이(중3)가 자라는 제2의 고향이다. 기왕에 출마한다면 영등포가 당연하다. 살면서 느껴온 교육, 도시환경, 경제 등 아쉬운 부분을 바꾸고 싶었고, 영등포 역시 변화가 절실한 시기를 맞이한 상태다. 많은 구민이 자녀 교육을 이유로 영등포를 등지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꽉 막힌 주거 환경과 답답한 교통, 낙후된 구도심, 회색빛 이미지를 바꾸고 본래의 영등포 위상을 되찾아야 할 때다.”

선거에 후보가 5명이 나왔다. 같은 당의 전임 청장은 당의 결정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나오기도 했다. 본인이 당선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지금 영등포에 변화와 도약이 필요한가’라는 저의 메시지를 구민들이 잘 받아주신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제가 신인이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일한 경험과 능력을 높이 사주셨다고 본다.”

전임 조길형 청장은 혹시 선거 끝나고 만나본 적 있나?

“물론이다. 영등포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하셨던 분 아닌가. 그분의 좋은 정책은 그대로 이어나갈 거고, 저의 새로운 비전은 또 제 손으로 만들어가면 된다. 여러 가지 격려의 말씀도 잘 들었다.”

그럼 구정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우선 슬로건이 참신해 보인다. ‘탁 트인 영등포’. 어떤 문제의식과 지향을 담았나?

“탁 트인다는 말이 선거 슬로건으로 쓰이기는 아마 처음일 거다. 두 가지 의미다. 서로 마음을 트자는 소통의 의미다. 또 하나는 각종 현안을 서로가 잘 협력해서 시원하게 해결하자는 취지다. 한마디로 안으로는 원활한 소통과 협치를 지향하고, 밖으로는 ‘새롭고 현대적인 영등포’를 향한 비전을 담고 있다.”

신임 구청장으로서 역점을 두는 사업을 꼽는다면?

“5대 역점 과제를 설정했다. 교육과 주거 환경 개선, 4차 산업 일자리 창출, 지역 문화 창달, 그리고 사회적 경제 활성화이다. 무엇보다 교육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겠다. 영등포에도 학교가 많은데 학부모들이 자녀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면 전학을 고민한다니 정말 안타깝다. 그래서 교육만큼은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교육정책 보좌관직을 신설하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보좌했던 유능한 교육장 출신을 모셔왔다.”

영등포는 오래된 주거 지역이 많아 낙후된 이미지가 있다. 

“서울이 강남을 중심으로 개발되다보니, ‘원조 강남’인 영등포는 소외당한 측면이 많다. 그러다보니 박탈감에 상응하는 기대와 열망 또한 크다. 최근의 여의도 개발 논란처럼 재개발·재건축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는 어떤 의미로 강조하는가?

“사회적 경제는 기업이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이윤도 창출해보자는 취지라고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박원순 시장도 모두 관심이 많은 분야다. 우리 지역에서 청년, 여성, 어르신 그리고 장애인, 소외계층이 공공성 있는 사업을 벌여 공동체에 기여도 하고 이익도 내겠다는데 지방정부가 도와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주민들을 취임 후 많이 만났을 텐데 주로 어떤 불편이나 민원을 호소하던가?  

“쓰레기 처리 같은 주거 환경, 주차난 등에 대한 요구가 가장 많았다. ‘탁 트인 영등포’의 기본은 ‘쾌적한 주거 환경’이다. 쓰레기 처리와 주차난 같은 생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시급하다. 박원순 시장님을 뵈었더니 도시행정의 핵심은 ‘가장 기본적인 것, 일상생활의 작은 문제부터 실천하는 것’이란 가르침을 주셨다. 가슴에 바로 와닿았다. 고질적인 쓰레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매주 현장을 돌아다닐 생각이다. 관련 부서를 모아 TF(전담 대책팀)를 꾸려 다양한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차 문제도 대책팀을 만들어 대안을 강구 중이다. 유럽처럼 일방통행로를 많이 만들어 생기는 여유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온라인으로 민원과 정책 제안을 청취하는 ‘영등포1번가’ ‘영등포신문고’ 등을 개설했다고 들었다. 취지와 성과는?

“문재인 정부의 ‘광화문 1번가’와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벤치마킹했다. 영등포1번가를 통해 7월부터 석 달 동안 3900여 건의 민원을 접수했다. 쓰레기, 청소, 주차 문제 등 생활 관련이 56%를 차지했다. 영등포 고가차도를 철거해 달라는 것도 있었다. 좋은 제안이다. 당장 가능한 것은 해당 부서가 바로 나섰고, 고가 철거나 학교 신설처럼 시간이 걸리는 일은 미래비전위원회에 넘겨서 논의한 뒤 구민에게 알릴 예정이다. 미래위원회는 영등포구의 100년 미래를 생각하고 비전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6개 분야에 걸쳐 전문가 60명으로 구성했다. ‘신문고’는 주민 1천 명 이상이 동의하는 청원은 구청장이 가부간에 직접 답변을 드리겠다는 취지인데, 지난 1일부터 시작했다. 현재 28건의 청원이 진행 중인데 이중 1천 명 이상이 찬성한 제안이 영등포역 앞의 집창촌과 노점 문제이다. 11월 중에 구민들에게 직접 대안을 말씀드릴 생각이다.”

취임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현장에서 새롭게 발견한 영등포의 잠재력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나?

“영등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으로,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지역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대림동 같은 외국인 지역도 생겨났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영등포의 잠재력이다. 대림동은 거주 외국인이 6만 명에 달한다. 이는 영등포구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림중앙시장을 문화관광 명소로 만든다면 그 주변의 지역 경제까지 활성화되지 않겠나? 최근 대림동을 주제로 한 드라마(tvN <빅 포레스트>)가 방영 중인데, 드라마 주인공을 우리 구 홍보대사로 위촉할 계획도 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정치 신인이다. 초선 구청장으로서 포부와 비전을 들려준다면?

“당이 제게 공천을 주고, 주민들도 저를 선택해준 것은, 영등포의 자긍심을 되찾아 미래의 비전을 열어달라는 소망이라고 생각한다. 구청장 한 사람 바뀌니 우리 생활이 이렇게 좋아졌구나, 하는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영등포구를 우리 아들과 손자들도 떠나지 않고 살고 싶은 그런 공동체로 만들어가겠다.”

채현일 구청장은 누구?

문재인 행정관·박원순 보좌관 출신…정치 꿈나무 ‘기대’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 △박원순 서울시장 정무보좌관 △국회의원 보좌관 △서울대 정치학과 △1970년 광주광역시생. 부인 이희경(48)씨와 1녀.

채현일(48) 신임 영등포구청장은 지난 6월 민선 7기 지방선거에서 뽑힌 서울 자치단체장 가운데 가장 젊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에다 패션모델 같은 외모, 국회와 당, 그리고 서울시와 청와대로 이어지는 정무라인 경력 등은 그가 민주당이 키우는 꿈나무 중의 하나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당으로부터 경선 없는 단수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에 나가는 이 청와대 행정관에게 ‘사람이 먼저다’라는 휘호를 써주며 격려했다. 국회와 서울시, 청와대를 거치며 익힌 정책, 행정, 국정의 다양한 경험은 구청장직을 수행하는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비서로 국회에 취직한 뒤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가 들어서자 서울시 정무보좌관으로 옮겼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갔다가 지난 2월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사직했다. 영등포구에서는 같은 당의 전임 조길형 청장이 3선을 희망하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등 모두 5명의 후보가 난립했으나, 그의 전도를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의 ‘발탁’은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지방분권의 연장선에 있는 듯 보인다. 민주당은 재집권 전략 차원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젊고 참신한 지방정치인을 다수 배출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민선 7기에 나온 민주당 후보의 면면을 잘 들여다보면 그런 ‘전략’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영등포 지역정치의 측면에서도 묵은 정체감을 일거에 해소하는 ‘새 피’의 등장인 셈이다.

채 구청장는 1970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해 초·중·고를 마쳤다. “어린 시절부터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그동안 가져왔던 꿈을 실현하고자 국회에 참모로 들어가 정치를 배우는 길을 택했다. “말 그대로 국회는 정치학습의 장이다. 비서와 보좌관으로 일하는 동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쳤고. 야당도 경험해봤다. 국회에서 배운 경험, 국회에서 만난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저의 큰 자산이다.” 그는 당선 후 3일 동안 국회를 순방(?)하며 70~80여 명의 국회의원들에게 당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들로부터 축하와 함께 “어려운 일 있을 때 연락하라”는 덕담도 건네받았다. 예산에 목을 매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입법부와 행정부 수뇌에 다 같이 ‘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여태껏 주로 참모로만 일해 최종 결재권자로서 그의 행정 수행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에게는 영등포구청장직이 행정가로서의 첫 번째 출발선이자 검증선이다. 앞으로 4년, 빈 괄호에 무엇을 채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성공이라면 정치적 비약도 가능하다.

나를 있게 한 이것

백팩, “자유롭고 평등하고 싶은 나”

청와대에서도 서울시에서도 그랬듯 구청 출근 때도 메고 다닌다. 요즘 메고 다니는 가방은 동생이 어디서 받아온 기념품인데, 가볍고 튼실하다. 백팩은 내게 두 가지 의미다. 생각할 거리와 일거리를 담는 등짐이자, 낡은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하고 싶은 나 자신의 표현이다.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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