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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 들여 한달 쓰는 건 낭비”…모델하우스, 커뮤니티 공간 ‘실험’

견본주택의 새 모델 제시한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양동수 대표

등록 : 2018-10-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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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형 마을공동체의 견본주택

입주자 모집 뒤 강연·공연·모임 공간

소셜 플랫폼의 앵커시설로 활용되길

지난 5일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양동수 대표가 중구 명동1가에 있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 임대주택 ‘위스테이’의 모델하우스이자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소모임을 찾았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의 한복판인 중구 명동에도 아파트 견본주택이 있다. 금싸라기 땅 명동1가 1-1번지에 있는 위스테이(WE STAY)의 모델하우스이자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이다. 위스테이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 임대주택이다. 사회혁신기업 ‘더함’이 건설과 관리를 맡고, 입주자들로 이뤄진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한다. 현재 남양주 별내, 고양시 지축 두 곳에서 사업하고 있다.

위스테이는 지난 8월 남양주 별내에 건설되는 491가구의 입주자 모집을 마쳤다. 그 뒤 견본주택은 조합원과 시민들의 강연, 공연, 취미 활동 등을 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된다. 내년 초엔 지축에 짓는 539가구의 견본주택으로 다시 쓰인다. 빌딩 숲에 자리한 아파트 주택홍보전시관(견본주택)이 복합문화교류(커뮤니티) 공간으로 변신하는 재밌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더함의 대표인 양동수(42) 변호사는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한 달 남짓 쓰고 없애는 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짓는 건 사회적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견본주택을 고민했다. 애초 그는 수요자 중심으로 생각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견본주택을 짓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라는 새로운 유형을 설명하려면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공간이 필요했다. “정부의 정책 시범사업이지만 담당 공무원들조차 사회적 경제나 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어요. 조합원들에게는 정보를 전하고 모임을 활발하게 하는 교류의 공간이 있어야 했죠.”

양 대표는 비용은 최소화하고, 협동조합형 임대주택의 취지에 맞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별내와 지축 두 사업장이 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있음으로 두 군데 모두 쓸 수 있는 견본주택인 동시에, 조합원 교육과 모임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짓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곳을 찾았다. 마침 양 대표가 사회적경제법센터를 운영하면서 협력해왔던 한국YWCA연합회의 주차장 공간이 있었다. 취지를 설명하며 제안하니 선뜻 좋은 조건으로 빌려줬다. 명동은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1960~70년대 청년문화의 성지였기에 새 실험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었다.


견본주택의 새로운 실험은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지만, 공사 승인을 받는 데는 6개월이 걸렸다. 관계 기관이 기존 시각으로 견본주택을 바라봐 협의가 쉽지 않았다. “사업지 두 곳의 모델하우스를 통합해 명동에 커뮤니티 공간으로 짓는 것,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들이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결정이 미뤄졌어요.” 사업 일정상 이번 별내 견본주택에서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포기했다.

별내 입주자 모집 뒤 견본주택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한 지 2개월 남짓, 명동 요지의 견본주택이라는 특이한 분위기의 ‘마실’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12월까지 예약이 거의 다 찰 정도다. 100~150명이 쓸 수 있는 라이브홀과 빌딩 숲속 명동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루프탑(옥상)이 가장 인기다. 아늑한 가정집 분위기의 견본주택 유닛 공간도 소모임 회원들이 자주 이용한다.

지난 5일 비 오는 금요일 저녁, 3층 라이브홀에서는 지역 기반의 소셜벤처(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벤처기업) 청년들이 지역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공유하는 ‘로컬 디자인 포럼’을 열었다. 소셜벤처 ‘어라운디’의 손민희 대표는 “마실에서 활동가들이 모여 교류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2층 84㎡(약 25평) 유닛 공간에서는 개인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낯선대학’ 소모임이 열렸다. 조휘영 대표는 “격주 금요일 저녁마다 시내에서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려웠는데, 마실이 생겨 회원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양 대표는 2009년부터 법무법인의 재단 공익변호사로 사회적 경제의 법·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을 했다. 2015년부터는 부동산과 금융에서 사회적 경제의 대안을 만들어보려 나섰다. 2016년엔 협동조합형 민간 임대사업을 설계해 정부에 제안하는 등 ‘소셜 디벨로퍼(개발자)’로 변신했다.

그는 마실이 앞으로 오랫동안 견본주택 기능과 지역의 복합문화교류 공간 기능이 있는 앵커시설로 활용되길 기대한다. “철골구조(H빔 사용)라 튼튼하고 협의만 가능하다면 부지 사용과 모델하우스 운영도 연장할 수 있어요.” 운영비는 위스테이의 다른 사업지 견본주택으로 활용해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좋은 공간을 혁신적인 플랫폼으로 만들어놓으니 여러 영역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앞으로도 주거·사무 공간 등 모든 공간이 커뮤니티 기반의 수요자 중심 ‘소셜 플랫폼’이 되도록 하는 게 더함의 꿈이에요.”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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