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재건축 35층 제한, 서울시와 협의 절충안 만들 것”

초선이 민선 7기 서울 구정 이끈다ㅣ 정순균 강남구청장

등록 : 2018-10-11 15:24 수정 : 2018-10-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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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최초의 민주당 출신

파리의 16구는 강남 발전 모델

30~50년 내다본 디자인 도시 지향

재건축 문제 등 앞길 난제 산적

강남아파트 대부분 30~40년 전 건축

대부분 낡아 재건축 대상만 50여 곳

조직개편안 11월 중 의회 통과 계획

조직문화 개선에 초점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의 형식적인 서면 보고를 구두 보고로 바꾸고, 간부회의도 아침 차담회(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모임)로 간소화했다.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다. 그의 집무실 한쪽 벽에 가득한 포스트잇도 그의 업무 스타일을 말해준다. 그때그때 받은 보고를 신문기사 제목처럼 한두 줄로 요약해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진행 상황을 챙긴다. 전체 포스트잇은 인터뷰일 기준으로 168장. 취임일부터 업무일 기준으로 하루 평균 2.8장꼴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정순균(67) 신임 강남구청장은 1995년 민선 구청장 선출 이후 최초로 등장한 민주당 출신 강남구청장이다. 선거 1년 전만 해도 “민주당 구청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상황에서 늦은 나이에 처음 선출직에 도전해 ‘서울 1번지 강남’의 행정 수반이 됐다. 등장은 화려하지만 지역정치와 유리된 정치인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하면 그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압구정동 한강 변 재건축과 관련한 서울시의 아파트 층고(35층) 제한 방침 등 강남 주민의 불만을 가라앉힐 타협점을 만들어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분 좋은 변화, 품격 있는 강남’을 슬로건으로 내건 ‘민주당 구청장’의 ‘품격있는 변화’를 많은 사람이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지성무식’(至誠無息)은 <중용>에 나오는 말로 ‘지극한 정성은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도올(김용옥)이 선물해 그의 집무실에 걸려 있다. 임기는 4년. 정성을 바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강남구 첫 민주당계 구청장이다. 주민들이 왜 정순균 후보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가?

“제가 강남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문재인 바람 덕분이 제일 컸지만, 민선 자치제가 실시된 23년 동안 줄곧 보수당 체제가 지속돼온 것에 대한 구민들의 변화 욕구와 전임 청장의 기대에 벗어난 행동 등이 겹쳐지면서 주민들이 새로운 변화를 갈구하게 된 것이 저의 등장과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한다.”

취임사에서 프랑스 수도 파리 16구를 강남의 모델로 제시했다. 어떤 의미인가?

“파리 16구는 파리의 강남구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파리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곳이다. 주민들도 16구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고 알고 있다. 우리도 강남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다른 구의 서울 시민이나 국민에게도 비난이나 질시가 아니라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강남에 사는 것이 긍지가 되고 자랑이 되는 도시로 강남을 변화시키고 싶다.”

임기를 시작하면서 ‘강남 뉴디자인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역시 같은 취지인가? 

“강남다운 강남을 만들고자 취임 이후, 뉴디자인위원 회를 만들었다. 도시재생, 건축, 환경, 여성, 복지, 교육 등 모든 분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새롭게 디자인하려 한다. 지금 강남은 70년대 도시구획정리사업의 유산이다. 이제는 30~50년 뒤를 내다보며 새롭게 디자인된 강남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내년 초쯤에는 위원회가 제시하는 새로운 강남의 청사진을 보게 될 것이다.”

부동산 문제 하면 늘 강남 집값이 기준이 되거나 거론된다. 최근 정부는 강력한 투기 규제에 더해 대규모 주택공급 정책도 발표했다. 강남구 역시 아파트 재건축 등 재산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강남은 1970년대에 개발이 시작되다보니 대부분의 아파트가 지은 지 30~40년이 된다. 재건축 대상만 해도 현재 50여 단지에 이른다. 거주민 입장에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강남구청장으로서 저는 강남의 재건축 문제는 집값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주거복지 차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수도꼭지에서 녹물이 나올 정도다. 노후 아파트 재건축 문제는 주거 안정 차원에서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층고 제한’인데 이 문제를 원만히 푸는 것이 구청장의 역할이라고 본다.”

현재 한강 변 아파트는 35층 이상 짓지 못하게 돼 있다. 이에 따른 재산권 문제에 대한 주민의 불만이 크다. 환경권과 재산권은 일견 모순되는데,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한강 변 아파트 층고를 35층 이하로 제한한 것은 서울시 2030플랜(2014년 서울시가 시민 의견에 기초해 수립한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에 의한 것이다. 2030플랜은 5년 단위로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다행히 내년이 그해다. 사실 층고 문제를 결정할 당시에는 강남구청과 서울시의 갈등이 심한 탓에 정작 당사자인 강남구 주민들은 의견 수렴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서울시와 잘 협의해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절충안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를 위해 전문 역량을 갖춘 간부 3명을 서울시에서 영입하기도 했다.”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나고 있다. 현장에서 본 강남의 문제점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면 강남답지 않은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 최고의 도시라지만 길거리를 다닐 때 하수구 맨홀에서 악취를 느끼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청의 조직 문화, 대민 서비스 등도 그리 강남답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강남으로 넘어오면 ‘역시 강남은 뭔가 다르다’라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런 점들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23년 만의 지역 정권교체였다. 공무원 조직 또한 장기 집권의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 개선하고 소통할 생각인가?

“현재 조직개편안을 마련 중이다. 11월에 구의회 승인을 받으려 한다. 강남다운 강남을 추구하는 데 적합한 조직과 조직 문화는 필수라고 본다. 조직 문화 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예를 들어 사소하지만 구청부터 세 가지를 없앴다. 휴가 사전보고제, 형식적인 서면 보고, 구청장에 대한 구태의연한 의전. 청원경찰도 청사 내에서는 일반 평복을 입도록 했다.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동주민센터의 지하창고, 주차장 등도 말끔히 정리하고, 자전거 보관대, 거리 화단 등 외형적인 부분도 개선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품격 있는 강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9월에는 민원 처리 기간을 줄이거나,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는 모습 등 대민 서비스 부분을 개선했다. 민원실 시설 환경도 바꾸는 중이다. 강남이라면 대민 서비스의 질도 민간 부문의 최고 서비스와 수준을 다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일은 주민 편에서 되는 방향으로 일해라, 그렇게 하다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구청장이 책임을 지겠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나보는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선거 때 취임 6개월 이후에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는데, 벌써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들 말씀해주신다. 사실 주민들의 건의 가운데 가장 큰 불만 사항이 ‘과도한 주차단속’이었다. 한 해 무려 40여 만 건이나 됐다. 이웃한 서초구 20여 만 건의 2배다. 유동인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단속 탓이 컸다. 그래서 주민 편에서 주차단속을 완화했다. 단속은 5분 정도 예고를 한 뒤 집행하고, 차를 견인할 때도 도중에 차주가 나타나면 중지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주차단속은 교통 원활이 목적이지 경쟁적으로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지난달 말부터 강남 페스티벌이 열렸다. 새 구청장이 와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

“‘강남스타일’ 덕분에 아프리카에서도 강남을 아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체 연예기획사의 45%가 자리잡은, 한류의 본거지도 강남이다. 그런데도 아직 강남다운 축제가 되지 못했다. 강남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서 강남 페스티벌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 브랜드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7월에 취임하다보니 준비할 시간이나 예산상의 어려움이 많아 올해 축제는 제가 생각한 것의 20% 정도만 반영된 것 같다. 곧 내년 축제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하겠다. 몇 년 안에 강남 페스티벌을 브라질의 리우 축제처럼 전 세계 관광객이 넘치는 축제로 만들어보고 싶다.”

민주당 구청장으로서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구청장은 정치가가 아니고 행정가다. 집안으로 보면 어머니 같은 역할이다. 어머니 마음으로 57만 구민만 바라보며 정파나 이념을 초월해 구민들의 삶의 질 향상, 주거환경 개선 등을 위해 온 힘을 쏟겠다. 구민 여러분께서도 많이 도와주셨으면 한다. ‘민주당 구청장 뽑았더니 생각보다 잘하더라’는 평가를 꼭 받겠다.”

정순균 구청장은?

67살에 첫 선출직 도전한 신문기자 출신…세곡동서 역전

△문재인 제18대 대통령 후보 언론고문(2012)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2006~2008) △국정홍보처 차장·처장(2003~2005)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2002) △새천년민주당 한화갑 대표최고위원 특보(2001) △중앙일보 기자, 부국장 △경희고, 고려대 정외과 졸 △1951년 전남 순천생 △부인 최경미씨와 1남 정순균(67) 강남구청장은 서울 단체장으로는 드물게 언론인 출신이다. 정치적으로는 일찍이 참여정부 출범에 참여해서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노무현 사람’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인 문재인 대통령과는 이때 인연을 맺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애초 고향인 전남도지사 출마를 기대했으나, ‘23년 만의 민주당 출신 강남구청장’의 절실성에 공감해 전현희 의원(강남을) 등 민주당 쪽의 출마 요청을 받아들였다. “2017년 대선 때 호남에 상주하며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서 지방정치 쇄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가까운 후배이자 지우인 이병완(64) 전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과 출마 문제를 상의했는데, 이 실장이 그 자리에서 강남 출마 아이디어를 꺼냈다.” 민주당이 전패해온 지역이라 쉽지 않은 도전이겠으나, 성공하면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모험적인 역발상이었다.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나는 3파전이라면 승산 있다고 봤다. 기본적인 민주당 지지 35%에 문재인 바람 5%, 거기에 내 노력 5%를 더해 45%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46.1%의 당선이었다.” 선거 전문가들은 보금자리주택이 있는 세곡동에서 크게 앞선 것이 대세를 가른 것으로 분석한다. 정 구청장 자신은 본질적인 요인으로 23년간 계속돼온 일당(자유한국당 계열) 체제의 정체감, 전임 신연희 구청장(구속 중)에 대한 피로감 등을 꼽으면서 “많은 구민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새 인물의 등장과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정 구청장은 195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상경했다. 대학 졸업 후 23년간 신문기자로 일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선출직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다가” 67살의 나이에 선거에 처음 도전했다. 어렸을 적 꿈은 영화배우. 영화가 너무 좋아 아동극단에 들어가 연기 공부를 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어서 중학교 입시를 재수까지 하고도 실패해 검정고시로 고교에 진학했다. 편집국장의 꿈을 접고 신문사를 나와 정치부 기자 시절 친분을 맺은 당시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에게 의지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다가, 같은 당 노무현 대선후보 진영에 언론특보 단장으로 투입되면서 정치에 본격 입문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초야에 묻혔던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낙선하자 더 깊은 실의에 빠져 “1년여 동안은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고 도올(김용옥)의 동양 고전을 읽으며 시름을 달랬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1년 전부터 호남에 상주하며 “문재인 후보의 진정성을 전파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나를 있게 한 이것

아내, “백수 시절, 좌절할 때 길목 등불”

오늘의 정순균은 아내 덕분이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끌어준 사람이다. 백수 시절에는 가계를 책임졌고, 좌절과 실의에 빠져 길을 헤맬 때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길목의 등불이었다. 출마를 고민하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것도 아내였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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