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 차량기지·도봉 운전면허장 7만5천평 개발…일자리 창출 기대”

초선이 민선 7기 서울 구정 이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

등록 : 2018-09-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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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역 중심 역세권 개발 등

베드타운 벗어나게 일자리 만들고,

높은 수준 문화·복지 환경 갖출 것

수락산에 서울 첫 휴양림 조성 꿈도

64.9% 높은 득표율로 당선

시의원·청와대 경력 좋게 봐준 덕

주민들이 ‘소확행’ 누릴 수 있도록

현안이 있는 현장 매일같이 누벼


오승록 노원구청장이 지난달 29일 노원구청 청사 옥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 이전계획이 확정된 지하철 창동 차량기지와 도봉 운전면허시험장(오른쪽)이다. 노원구는 이 시설 이전으로 생기는 약 7만5천평의 땅 개발이 노원의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뒤로 보이는 수락산에는 청소년과 가족단위의 체험학습 및 시민 휴식을 위한 자연휴양림 조성도 구상중이라고 한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오승록(48) 노원구청장은 감옥살이를 경험한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의전 행정관으로 남북 정상회담에서 활약한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 몇 단계를 ‘점프’해 정치를 시작할 기회가 있을 법도 했건만, 그는 ‘한 단계씩 나아간다’는 평소 소신대로 시의원부터 시작하는 길을 선택해 8년 만에 서울시 단체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단체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주민의 높은 의식 수준에 걸맞은 문화·복지 환경을 갖추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 차량기지와 운전면허시험장 이전으로 생기게 될 넓은 땅의 활용, 광운대역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을 어떻게 주민의 욕구에 맞게 이끌 것인가도 그의 과제이다. 노원구 안의 각종 문화기관과 시설들을 연계해 문화적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문화재단을 만드는 일은 그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이다. 대학 시절 통일 운동 경험,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참여한 경험 등이 있어 북한과의 교류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111년 만의 폭염이라는 7~8월 무더위 때, 노원구가 구청 시설(대강당·경로당 9곳) 등을 활용해 야간 무더위 쉼터를 여는 아이디어는 무척 참신했다.

“힐링 도시를 모토로 하는 노원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 무더위 탓인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어르신들이 밤새 편히 쉴 수 있는 여건을 고루 갖추려면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처음엔 걱정도 많았다. 여러 분야 공무원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청장으로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다. ‘초짜’ 구청장의 소감이라면?

“한마디로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다. 현안이 있는 현장을 매일같이 누볐는데도 아직 60여 군데가 더 남았다. 현장에 가서 보니 전임 김성환 청장이 참 많은 일을 해놓았다. 그러나 저는 저대로 제 관점에서 손을 대고픈 부분도 적지 않다.”

선거에서 64.9%라는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거뒀는데, 어떻게 해석하나?

“제가 민주당이 아니라 무소속으로 나왔다면 당선됐을까? (웃음) 정치의식이 높은 노원의 경우 후보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어렵다. 그럼에도 오승록이란 후보에게 상대적인 비교우위가 있었다면 다른 후보에 비해 지나온 삶의 궤적이 조금 돋보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시의원을 재선한 것과 청와대 근무 경력 등 경쟁자들에게 없는 커리어를 좋게 평가해주신 것 같다.”

당내 경선을 두 번이나 할 만큼 경합이 치열했다고 하는데,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꼽는다면?

“많은 분이 저의 장래성을 봐준 측면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우원식 의원과 함께 쌓아온 조직 기반이 주효한 측면이 있다. 제가 노원 지역구(노원을)에서 산악회 버스를 5대나 운영했다. 각종 생활체육 조직도 많이 했다. 조직이 있어야 활동도 할 수 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린 것이 결국 힘이 됐다.”

노원구민들은 새 구청장에게 무엇을 바란다고 생각하나?

“우리 노원구민 대다수는 노원구가 서울 변두리의 베드타운 정도로만 기능하고 있는 점을 매우 안타까워한다. 단순히 잠만 자는 도시가 아니라 이 지역 안에서 일하고 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선거에서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주요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거다. 인구 55만 명의 노원이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족 도시가 되려면 무엇보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마침 도심 안에 넓은 땅이 생겼다. 이전이 확정된 지하철 차량기지와 도봉운전면허시험장 터가 무려 7만5천 평이나 된다. 서울시가 이 땅을 ‘창동·상계 신경제 중심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노원구로서는 최대한 양질의 일자리가 다수 창출되는 방안으로 개발이 이뤄지길 바란다.”

준비는 잘하고 있나?

“앞으로 사업 진행에 대비해 조직 개편도 했고, 인사도 끝마쳤다. 서울시가 주도하는 사업이라 해도 지역은 우리 노원구다. 개발에 대한 기대와 열정은 당사자인 우리가 훨씬 더 크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우린 우리대로 좋은 아이디어를 서울시에 계속 제안할 것이다.”

바라는 대로 일자리가 많이 생기려면 기업들이 와줘야 할 텐데.

“그렇다. 대부분 주민의 요구도 대기업 유치로 모인다.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도 이 문제를 저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광운대역 역세권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나?

“부근의 시멘트 공장이 이전하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기부채납 형식으로 2500여 평의 공공부지가 생겼다. 광운대역 역세권은 대학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과도 연관돼 있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말씀대로 노원구에는 대학이 많다. 서울시가 공모한 대학 캠퍼스타운 조성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광운대가 이미 선정됐다. 광운대 외에도 4개 대학이 공릉동과 월계동에 모여 있어 서울시 예산이 130억원이나 들어가는 큰 규모의 캠퍼스타운이 될 것이다. 우리 구에서도 이를 준비할 전담팀을 꾸렸다.”

주민들의 문화 향유 욕구도 높다고 들었다.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주민들이 ‘소확행’(소소하되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구청장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주민이 자녀 교육 때문에 노원에 온 탓인지, 부족한 여건이지만 불만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노원에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같은 좋은 문화시설이 적지 않지만, 전시나 공연 등 소프트웨어는 주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주민 눈높이에 걸맞은 양질의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노원은 수락산·불암산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어르신과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더 갖추고, 수락산에는 청소년과 가족 단위 휴식을 위한 휴양림 조성도 구상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기관의 강북 지역 이전을 약속했는데, 노원구는 어떤 기관이 왔으면 좋겠는가?

“시장께서 말씀하신 이전 대상 공공기관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서울연구원·인재개발원 등인데, 바람으로는 SH공사같이 직원 가족이 많이 상주할 수 있는 기관이면 낫지 않겠는가. 우리 구는 다른 구보다 이전해올 만한 터가 아주 넉넉하다. 나주로 이전한 한전의 연수원(한전 인재개발원) 땅도 7만5천 평이나 된다.”

박 시장과는 가까운 편인가? 

“박 시장과의 인연은 무상급식 투쟁에서 시작됐다. 무상급식 문제로 당시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면서 박 시장이 정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는데, 그때 서울시의회에서 무상급식 투쟁을 이끈 민주당 소속 의원 6명 중의 한 명이 저였다. (박 시장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다.” (웃음)

끝으로 젊은 나이에 55만 구정을 이끄는 단체장이 됐다. 섣부른 질문이지만 큰 틀에서의 정치적 포부가 있다면?

“아직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시의원 8년 하고 청와대에서도 일한 게 전부라, 큰 단위의 행정 경험이 부족하다. 깜냥이 부족한 만큼 지금은 차근차근 배워서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게 급선무다. 나중에 일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그때 가서 또 한 단계 올라가는 목표를 추구하면 되지 않겠나 싶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섬 소년, 어려운 환경 딛고 대학 진학…대북교류에 높은 관심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 의전행정관(2003~2008) △근정포장 수상(2008) △제8~9대(2010~2018) 서울시의원 △우원식 의원(민주당) 지역구 사무국장(2008) △금산종합고,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고려대 정책대학원 졸업 △연세대 부총학생회장(1993), 집시법 위반 실형 △1969년 전남 고흥 거금도 출생, 부인 이진숙씨와 2남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2003년 참여정부 출범부터 줄곧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서 일했다. 그는 이 시기를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중 최고의 황금기로 여긴다. 별정직으로는 최초로 외교부 공무원이 담당해왔던 대통령 해외 순방 행사 기획 업무를 맡아 5년 동안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러 평양에 갈 때 걸어서 노란색의 군사분계선을 넘는 이벤트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을 주도한 사람이 그다. 그는 이 공로로 근정포장을 받았다. 대중들이 보기에 화려한 청와대 경력은 아직 젊고 지방정치 경력이 짧은 오승록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

노원구에 ‘정착’하게 된 것은 1995년 지방선거 때 연세대 운동권 선배 부탁으로 당시 노원구청장 후보 수행비서를 맡으면서부터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당시 노원 지역의 민주당 고영하 위원장을 비롯해 우원식, 고용진, 김성환, 유송화 등 노원구 지역을 기반으로 나중에 국회의원, 구청장, 대통령비서관 등이 된 정치적 후원자이자 동지들을 만났다. 부인도 이때 같은 운동권으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고 한다. 1996년 국회의원실 인턴 직원으로 ‘취직’한 뒤 줄곧 국회의원 비서관을 하다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진영의 서갑원 전 의원 의전팀에 배속돼 노무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었다. 노원에서 지방정치를 시작한 것은 2008년 지역구를 정비하던 우원식 의원(전 민주당 원내 대표)의 사무국장이 되면서부터이다. 2010년 제8대 시의원 선거에 출마를 권유하고 선거를 지원한 것도 우 의원이다. 그에게 우 의원은 “정치적 멘토이자 스승”이다. 서울시의원 민주당 대변인으로 무상급식 실시 조례 통과를 주도하고 오세훈 당시 시장의 주민투표 거부운동을 펼쳐 결국 오 시장이 사퇴하고 박원순 시장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오 구청장은 전남 고흥에서도 배로 30여 분 더 들어가는 거금도라는 섬이 고향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이 생활보호대상자로 사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고3 담임교사가 “제자 하나 키워 연대 보냈으니 원이 없다”고 했다던 오승록은 대학 입학 뒤 곧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의 대열에 합류했다. 3학년 때는 시위 주동 혐의로 구속돼 반성문을 쓰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으나 “반성할 것이 없다”고 버텨 10달간의 실형을 받았다. 1993년 연세대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돼 등록금 인하 투쟁 등을 주도했다.


나를 있게 한 이것

노무현 전 대통령

“지금도 매년 두 번씩 봉하행”

노무현 대통령은 인간 오승록에게 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지금도 매년 두 번 봉하에 간다. 추모관에 들러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무엇을 더 채워넣어야 할지 점검해본다. 그분에게서 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리운 대통령님, 잘 계시는가요?”

-<섬소년의 노원 연가> 중에서.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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