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소리에 벌떡 일어나…현장의 요구 과감히 수용”

초선이 민선 7기 서울 구정 이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등록 : 2018-08-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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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뒤 성북구 20개 동 한 번씩 돌아

현장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

성북 오래된 지역이어서 주차 문제 심각

녹지지하에 공영주차장 건설이 합리적

육아와 교육하기 좋은 환경 만들고파

내부순환로 교통 정체 해소 위해

월곡하향램프 2020년 완공


시의원 시절 CCTV 적극 설치로 호평

사업가-구의원-시의원 등 다양한 경험

이승로 신임 성북구청장이 지난 1일 최근 성북구가 건설중인 북악산 청소년체험의숲 공사현장을 찾았다. 군대시절 유격장 조교였다는 이 청장은 건설중인 구름다리와 밧줄타기 공사장을 거침없이 오가며 시설들을 둘러봤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이승로(59) 성북구청장은 이번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13명의 초선 가운데 나름 굴곡진 정치 역정을 밟아온 당선자 중 한 명일 것이다. 30대 중반에 구의원이 된 뒤 20여 년을 지역과 중앙 정치를 오가며 여러 차례 낙선의 쓴맛을 본 이력을 가지고 있다. 54살의 늦은 나이에 시의원으로 지역정치에 복귀한 그는 4년 만에 처음 나선 구청장 선거에 승리했다. 문재인 바람에 실린 탓이 크지만, 64%대의 높은 지지율은 그가 성북 지역에서 쌓아온 기반이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인터뷰 장소로 정한 성북 청소년 체험의숲 조성 공사 현장에 흰 와이셔츠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나 인터뷰 내내 “현장이 나의 스승이다”며 ‘현장’을 강조했다. “정치보다는 직접 예산을 다루고 결과를 이끌어내는” 단체장 역할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자평한다. “사업 수완이 탁월하다”는 평을 들으며 30대에 이미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시의원 시절 예산통으로 활약하며 수백억대의 장위동 재생사업 예산을 따내는 수완을 발휘한 바 있다. 구청장 은퇴 후엔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로 돌아가겠다”는 그는 취임식 때 어린이, 장애인, 청소노조원, 다문화가정, 어르신 등의 대표들에게 그들의 바람을 퍼즐로 맞춘 임명장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의원을 하다 처음 구청장이 됐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시의원 때는 저녁에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고 무음으로 해놓고 잤는데, 지금은 카톡 소리만 나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국민 여러분이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준 덕분에 당선됐다는 사실이 오히려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민선 6기까지와 자신의 행정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와서 보니까 우리 전임 김영배 구청장님이 하드웨어를 잘 만드셨다. 나는 여기에 무엇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내겐 현장이 답이었다. 취임하고 성북구의 20개 동을 전부 다 한 번씩 돌았다. 4천~5천 명 정도의 주민들과 직접 대면한 것 같다. 요즘도 거의 아침마다 현장 몇 군데를 출근 전에 돌고 있다.”

주민들이 무슨 말을 주로 하던가?

“과거에 응어리졌던 행정에 대한 불만을 많이 들었고, 숙제도 많이 받았다. 조만간에 주민들에게 들은 얘기를 전체적으로 분석해보려 한다. 서류에 종종 ‘불가능’이라는 단서가 붙은 게 있는데, 실행을 주저하기보다는 현장의 요구를 과감히 수용해 성공과 실패를 공동체의 경험으로 쌓아가는 것도 지방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기고 과감하게 해보려 한다.”

이 구청장은 선거 당시 당면한 성북구정의 주요 과제를 주거 환경과 교통체계 개선, 복지·문화 공동체 조성, 경제도시 구현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눠 구체적인 개선 일정을 제시했다. 취임 후에는 여론 청취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동네 주차 문제에 집중한다고 했다.

“성북이 오래된 지역이다보니 주차 문제가 주민 갈등의 큰 원인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여러 개선 방안이 나왔지만, 주택정비사업으로 얻는 기부채납으로 공원 녹지를 확보하고 그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짓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주차 공간 하나 확보하는 데 평균 1억원이 드는데, 예산이 모자라면 서울시 특별예산을 얻어와서라도 의무화하고 싶은 게 제 욕심이다. 장위동, 삼선동, 정릉동 등 4~5곳에 시범적으로 도입하면 짧은 기간에 수백 대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초기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사업을 소개하면? 

“성북이 앞장서서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 인터뷰하는 이곳도 청소년체험학습장인데 10월 개장을 목표로 정비하고 있다. 잘 운영이 되면 월곡동에도 만들 생각이다. 정릉 쪽에도 좋은 시설이 많다. 세 군데 정도 권역별로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을 확충하려고 한다.”

교통 대책은 어떤가? 원래 교통 민원이 많은 곳 아닌가?

“성북엔 교통 사각지대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년 동안 경전철 건설을 요구해왔는데 이번에 제가 취임한 뒤 민자 유치(현대엔지니어링) 협약이 맺어졌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왕십리까지 이어지는 노선이다. 우리 구 지역에는 6개 역이 들어서는데, 경전철이 완공되면 오랫동안 숙원이던 교통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2024년 완공이 목표다.”

내부순환로 교통 적체 문제도 주민들의 골칫거리였는데.

“내부순환로와 북부간선도로 연결 체계 문제로 생긴 혼잡 때문에 애꿎은 성북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왔다. 다른 지역으로 빠지기 위해 여길 지나는 차량이 하루 2만8천 대라고 한다. 이러다보니 내부순환도로 마장동에서부터 성북구까지 약 20분에서 많게는 한 40~50분씩 정체가 일어나고, 매연과 소음도 심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도 시의원 시절 내내 열심히 ‘투쟁’했다. 오죽하면 박원순 시장이 ‘다시 안 볼 거냐’며 화를 낼 정도였는데, 결국 월곡하향램프를 설치하기로 하고 개선 용역 예산을 따냈다. 내년까지 용역설계를 마치고 2020년 완공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야, 이승로 이거 하나만은 꼭 해내라’ 그랬는데, 나름 큰 보람을 느꼈다.”

그는 시의원 시절, 치안을 불안해하던 일부 지역주민들이 요구한 감시카메라(CCTV) 설치도 신속하게 해결해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자랑했다.

“경전철처럼 큰 사업도 중요하지만, 주차장같이 실생활에 닿아 있는 문제에 주민들이 감동한다. 시시티브이 설치 같은 일은 눈에 잘 안 띄는 사업이지만 주민들이 무척 고마워한 일이었다. 시시티브이는 5억 예산만 있어도 40대를 단다. 이걸 주민들이 가장 기억해줬다.”

구청장으로서 개인적으로 이뤄보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우리 성북구는 ‘갑’ ‘을’ 두 국회의원 지역구가 있다. 갑은 도심 쪽이고 을은 외곽 쪽이다보니, 문화나 복지 면에서 ‘수준’ 차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성북에 살아온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이 격차 완화 해소에 관심이 많다. 1구 1복지관 같은 오래되고 낡은 행정 패러다임이 오히려 지역의 균형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국회의원 두 분께도 지역구 차원을 넘어 전체 성북의 발전을 위해 손을 모으자고 말하고 싶다. 박원순 시장이 지금 강북구에 와서 생활 체험하시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끝으로 4년을 함께할 구민들한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성북은 전임 청장의 노력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계획부터 예산 편성, 나중에 집행까지 많은 참여를 당부드린다. 이승로만 구청장이 아니라 주민이 모두 구청장이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사실 주민들도 몰라서 혜택을 못 보는 일이 적지 않다. 많은 주민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서 함께 도울 일은 돕고 함께 누릴 것은 누리자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이승로 구청장은?

30대 구의원 ‘공격적 이미지’ 역풍 딛고 일어서…53살 위암도 극복

△제2, 3대(1995~2002) 성북구의원(무소속) △정동영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특사(2007) △민주당 사무부총장(2013) △제9대(2014~2018) 시의원(민주당) △정읍 제일고, 고려대 정책대학원(행정학 석사) △59살. 전북 정읍 출생. 부인 임명숙(58·주부)씨와 1녀1남.

이번 민선 7기 구청장 선거에서 64.3%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된 이승로(59) 성북구청장은 몇 번의 장애물을 넘어 성취를 이뤄낸 인물이다. 9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일찍이 자수성가했다. 젊은 나이에 구의원을 하면서 쌓은 ‘공격적 이미지’가 걸림돌이 돼 계속 낙선의 쓴맛을 보았다. 그는 이 시련 속이던 53살에 위암(2기)을 얻었으나, 1년 만에 극복했다.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한 뒤 12년 만에 시의원으로 재기했다. 압축하면 30대에 이미 부자도 되고, 의원도 되는 ‘초년 출세’를 맛본 뒤 40대에 좌절을 거쳐 50대 후반에 이르러 제2의 고향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아 단체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 구청장은 1959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2남4녀 형제들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생계와 학업을 병행했다. 어려운 가정 환경이지만 늘 명랑하고 진취적이어서 초등학교부터 정읍농고(현 정읍제일고) 재학 시절까지 반장과 호국단 간부를 도맡았다. 제대 후 서울에 와 독서실에서 자며 노량진수산시장에서 고등어 배 따는 일부터 했으나, “타고난 사업 수완으로” 식품유통업과 부동산 투자 등에서 성공을 거뒀다. 성북과의 인연은 1986년 석관동에서 냉동식품 유통업을 하며부터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당시 청년회장이던 그를 주변 사람들이 놔두지 않은 것이었지만, 본인은 자신의 ‘끼’를 먼저 꼽는다. “가방끈은 짧았어도” 신문을 펼치면 정치면부터 봤다고 한다. 1995년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거뜬히 당선되자 그때부터 정치가 자신의 일이라고 여겼다. “그때 떨어졌으면 그걸로 정치는 끝이었을 거다. 지금쯤 나는 틀림없이 제법 큰 부동산 임대업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차례 구의원 당선이라는 ‘영광’ 뒤에는 낙선의 연속이었다. “젊은 놈이 너무 휘젓는다”는 이미지가 선거마다 악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후 중앙당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고 암이 찾아오는 시련도 겪었다. “평당원은 하기 힘든 중앙당 사무부총장도 해봤지만, 역시 나는 지역 일이 제일 맞았다. 30년 넘게 배운 일로 다시 복귀한 셈이다.”

그는 사업가 출신답게 예산에 밝아 시의회 시절에도 예산통으로 통했다. 요즘도 예산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도시재생 분야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정치적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 능력에 비춰보면 지금 정상에 왔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가 부끄럽지 않게 일하고 난 뒤에는 누구든 ‘어이, 이승로!’ 하고 찾아와 동네 일을 의논할 수 있는 가까운 이웃집 아저씨로 남고 싶다.”


나를 있게 한 건

91살 어머니, “엄마 불쌍해 한눈팔 새 없었다”

이승로 구청장은 취임식 행사에 91살 노모(황영길)를 모셨다. 어머니는 40살에 남편을 여의고 6남매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승로와 형제들은 어둔 방에서 홀로 바느질을 하시다가 몰래 눈물짓는 어머니를 보며 성장했다. “엄마가 불쌍해서 6남매 누구도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 어머니는 선거 때마다 아들의 스티커를 돌리는 가장 가까운 지지자이자 정신적 보루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어머니가 제 취임식에서 작으나마 성취감을 맛보셨으면 했다.”

삽화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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