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독일 유학 시절 현지인 도움…갚는다는 마음”

관악구 자원봉사센터 ‘재능기부왕’ 이상은씨

등록 : 2018-06-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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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대상 자원활동·녹음 봉사 등

끝없는 봉사활동, 자격증만 10개

“선생님, 사랑해요. 아이 말 기뻐”

내가 즐거울 때 봉사활동 오래 해

관악구 ‘재능기부왕’ 이상은씨가 지난 15일 관악구청 1층에 있는 용꿈꾸는작은도서관에서 책을 펼쳐 읽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마지막 수업을 마친 뒤 5살 여자아이가 폭 안기면서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무척 기뻤어요.”

관악구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상은(46·관악구 은천동)씨는 15일 “첫 두런두런 봉사활동에서 만난 아이가 헤어지면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두런두런’은 자원활동가와 취약계층 유아(3~5세)가 매주 1회씩 20주 동안 그림책 활동을 함께하며 아이의 정서와 언어 발달을 돕는, 서울시 시교육청의 유아교육 복지 프로그램이다. 이씨는 2014년부터 ‘두두샘’(두런두런 선생님)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아이가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자랄 수 있겠다 싶어 고마웠다”며 “내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는 생각에 책임감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씨는 2015년 4월부터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참 잘했어요, 짝짝짝’ 프로그램의 책놀이 활동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북스타트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도망 다니던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책상 앞에 앉고, 첫 만남이 낯설고 어색해 눈이라도 마주치면 울며 나가던 아이가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기분 좋다.”

이씨는 2016년 3월부터는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 활동도 시작했다. 실로암복지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월간지 <좋은생각>과 <우먼센스>를 녹음하고, 2주 동안은 그 밖의 다양한 책 내용을 녹음한다. 이렇게 녹음된 책은 시각장애인들이 자동응답전화(ARS)나 모바일 앱으로 들을 수 있다. 이씨는 지금까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기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시작으로 <미식의 도시> 등 모두 6권을 녹음했다. 주로 여행과 요리, 에세이를 녹음하다가 최근에는 도진기 작가의 추리소설 <악마의 증명>을 녹음하고 있다. 그는 “내 목소리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구로 쓰인다는 게 매우 기쁘다”며 “담당자한테서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듣는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힘이 난다”며 뿌듯해했다.

이처럼 왕성한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씨는 관악구의 ‘재능기부왕’으로 통한다. 그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고 이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르쳐준다. 그가 딴 자격증만 10여 개, 이를 활용해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이어간다.

이씨는 2015년 7월 독서지도사 과정을 수료하고, 11월에는 지인의 권유로 북아트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북아트지도사는 주제에 따라 팝업북, 카드북 등 다양한 형태의 책 만들기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이외에도 자기주도학습지도사, 아동미술심리상담사, 아동미술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2016년부터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자원봉사를 잘 이해하도록 알려주는 자원봉사교육강사로도 활동하고, 지난해 12월부터는 관악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캘리그래피 교육도 받았다.

이씨가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 데는 1990년대 독일 본대학 유학 시절 현지인에게 받은 도움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자원봉사하는 집주인 아들의 도움으로 학교 숙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외부 활동을 주선받기도 하는 등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독일은 남을 도와주는 게 자연스러운 나라로 비쳤고, 한국에 돌아가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씨는 2002년부터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한국인에게는 독일어를 가르칠 수 있는 봉사단체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왕십리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이씨는 북스타트를 알고부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10년 관악구 관악문화관·도서관에서 미취학 아동에게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7살 된 아들에게 북스타트 교육을 하기 전,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려고 자신이 먼저 활동가 교육을 받았다. “처음부터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내가 교육을 받고보니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며 멋쩍게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북스타트 자원봉사를 8년째 했다.

이씨에게 책은 가장 좋아하는 취미활동 도구이자,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다. 그는 매달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서너 권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그림책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를 꼽았다. 이 책은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들려주었던 자장가를 늙은 어머니가 끝까지 부르지 못하자, 아들이 어머니를 가슴에 꼭 안고 ‘사랑해요 어머니 언제까지나~’라고 가사를 바꾸어 되불러주는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씨는 “북스타트 수업을 하다보면 감동적인 그림책이 많은데, 책을 읽어주면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봉사활동을 거르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는 “지난해까지 거의 매일 자원봉사 활동을 다니느라 무척 바빴지만,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조금 힘들어져 올해는 주 3일 정도로 줄였다”며 “독서도 더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더 배워서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한다.

이씨는 자원봉사를 오래 할 수 있는 이유로 ‘즐거움’을 들었다. “내가 배우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내가 재미없었다면 몇 달 하고 그만뒀을 텐데, 즐거움을 느끼는 게 오래 할 수 있었던 비결 같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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