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장미와 막걸리의 만남, 축제를 빛내다

묵2동 도시재생 위해 장미막걸리 개발한 김기한 중랑구 도시재생팀장

등록 : 2018-05-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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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 막걸리 제조장 보고 구상

서울장수㈜ 연구소와 공동 개발

18~20일 서울장미축제 때 무료 시음

주민 협동조합이 판매·제조 계획

지난 11일 중랑구 묵2동 도시재생센터에서 열린 장미막걸리 협약식에서 김기한 중랑구 도시재생팀장이 장미막걸리를 들고 있다. 중랑구 제공

2015년부터 해마다 5월이면 중랑천에서 서울장미축제가 열린다. 수천만 송이의 장미가 피어나는 5.15㎞의 장미 터널과 수림대 장미정원 등을 보러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192만여 명이 방문한 지난해 축제의 생산유발 효과가 197억원에 이른다는 전문기관의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장미축제가 열리는 중랑구 묵2동 일대는 열악한 주거환경에다 개발을 둘러싸고 주민끼리 갈등까지 심각했다. 뉴타운 사업이 해제된 묵2동은 2016년 도시재생 준비단계인 ‘희망지’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약 6개월 동안의 주민역량 강화 사업을 거쳐 준비된 희망지만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희망지 사업을 위해 묵2동을 둘러보던 김기한(44) 중랑구 도시재생팀장의 눈에 생막걸리를 만드는 제조장이 보였다. 서울탁주 태능연합제조장이었다. “주민이 직접 공동체를 꾸리고 마을을 되살리는 도시재생사업은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거거든요. 장미축제가 열리는 마을에 막걸리 제조장이 있는 걸 봤다면, 누구라도 ‘장미와 막걸리를 섞어봐야겠네’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지난해 도시재생활성화지역에 선정되자 김 팀장은 본격적으로 장미막걸리 개발에 나섰다. 태능연합제조장의 소개를 받아 마포구에 있는 서울장수㈜ 연구소를 찾아갔다. 김 팀장의 제안에 염성관 연구소장은 “막걸리가 도시재생과 연결되면 좋죠. 좋은 뜻으로 하는 건데 한번 해봅시다”며 선뜻 승낙했다. “과연 될까”하며 긴가민가하는 젊은 연구원들과 달리 “하다보면 대박 터지는 것도 있고 쪽박 차는 것도 있다. 우리도 그런 경험 많다”며 앞장섰다.


식용 장미를 재배하는 충북 진천의 농가에서 사들인 마른 장미꽃잎을 발효 중인 막걸리에 첨가해 장미주를 만들었다. 진한 장미주와 일반 막걸리를 섞어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최적의 주질을 찾아야 했다. 김 팀장은 매달 한두 번씩 연구소를 방문하다 보니 어느덧 막걸리 마니아가 됐다. “원래 술이 약해서 그나마 약한 맥주만 마셨는데, 마시고 나면 늘 설사를 했어요. 그런데 막걸리는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듬뿍 들어가서 면역력 강화와 대장운동에 좋더군요. 그래서 집사람과 함께 마시다 지금은 날마다 한 병씩 마시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말에는 묵2동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2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품평회를 열었다. 장미주와 막걸리의 배합 비율을 1 : 1, 1 : 2, 1 : 3 등으로 달리한 막걸리와 분홍색을 비롯해 다양한 빛깔의 막걸리를 내놓고 맛과 색, 향 등의 선호도를 조사했다. “잣막걸리나 밤막걸리처럼 다른 지역의 특산 막걸리도 마셔봤는데, 잣과 밤 맛이 제법 강하더군요. 그런데 장미막걸리는 은은한 정도지 맛이 강하지 않아요. 잣과 밤은 막걸리를 이기는데, 장미는 아무리 넣어도 막걸리를 못 이겨요.”

개발에 나선 지 반년 만에 장미막걸리 5천 병이 세상에 나왔다. 지난 11일 묵2동 도시재생센터에서 중랑구와 서울장수㈜, 서울탁주 태능연합제조장은 협약식을 열고 장미막걸리 개발 등 상생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상표는 서울장미축제의 공식 캐릭터인 장미 아가씨 무늬에 바탕색은 은은한 장미 색깔을 입혔다. 장미막걸리 맛을 본 주민들은 “탁주답지 않게 맛이 깨끗하고, 장미 향이 탄산과 절묘하게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장미를 연상시키는 색깔과 향까지 더해져 여성들의 반응이 더 좋았다. 중랑구는 서울장미축제가 열리는 18일부터 3일 동안 국내외 관광객이 장미막걸리를 맛볼 수 있도록 대규모 시음행사도 열 계획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일반 막걸리의 도매가는 900원인데, 장미막걸리는 그 3배가 넘는 3200원이다. 그 가운데 장미 재룟값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그러나 김 팀장의 머릿속에는 이미 해결책이 있다. “서울장미축제가 열리는 중랑천 둑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할 만한 공간이 있습니다. 내년부터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식용 장미를 재배하면 장기적으로 원가가 낮아지고 돈이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협동조합이 주류 도매·소매 면허를 얻어 장미막걸리를 팔 수도 있겠죠.”

묵2동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에 모인 주민 120여 명이 이미 장미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장미막걸리는 물론이고 장미 커피, 장미 맥주, 장미 화관, 장미 브로치 등 ‘오만 데다’ 장미를 접목하고 있다. “최근 도시재생의 핵심 과제는 주민이 얼마나 참여하느냐, 과연 자생할 수 있고 지속가능하냐입니다. 지금까지 도시재생 사업은 공공이 떠나버리면 멈추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장미막걸리 출시에 그치지 않고 2021~2022년 협동조합이 태능연합제조장과 함께 생막걸리를 직접 만드는 것까지 장기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장미막걸리는 장미마을에서만 살 수 있는 특화 상품이 될 것입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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