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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 맞아? B급 소식지 만드는 ‘발랄’ 주무관들

8년째 매주 발간…200호 맞은 서울시 푸른도시국 ‘왁자지껄’ 팀

등록 : 2018-05-03 15:10 수정 : 2018-05-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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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없이 직원 6명 자발적 참여

기획부터 원고 작성, 디자인까지

입소문에 다른 부서도 벤치마킹

박원순 시장, 자필 축하글 보내줘

지난 4월24일 중구 시청 무교별관 옥상에서 푸른도시국 소식지 <왁자지껄>팀 배시연(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구자현·손창민·서동희·나란희 주무관이 200호 발간을 자축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사무실 안에서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직원을 여러 사람이 받치고 있다. 서울광장 잔디밭에서는 직원들이 장풍에 맞아 날아가는 모양새를 연출한다. 옥상 정원에서 개그맨처럼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제각각 뛰어오르는 직원들도 있다.

4월18일 발행된 서울시 푸른도시국의 주간 소식지 <왁자지껄>(작은 사진)에는 200호 발행을 축하하는 직원들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렸다. 흔히 공무원 하면 떠올리는, 딱딱하고 경직된 자세가 아니라 익살스럽고 발랄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비(B)급 정서를 표방하는 <왁자지껄>다운 축하 사진이었다.


푸른도시국은 6개 과, 4개 사업소에 직원만 300명이 넘는 큰 조직이다. 다른 과에서 하는 업무는 물론, 같은 과라도 다른 팀 업무는 모를 때가 많다. 이런 부서 간 장벽을 넘어 활발히 소통하기 위해 2012년 만들어진 웹진 <왁자지껄>은 처음부터 ‘단순·따분하고 지루한 소식지는 가라. 유머, 화기애애, 즐거움이 있는 소식지’를 표방했다.

디자인 업체나 전산 업체에 외주를 주는 다른 소식지와 달리 각 과에서 한 명씩 참여한 6명이 기획부터 원고 작성, 디자인까지 다 해내고 있다. 김광덕 팀장을 제외하면 모두 30대라 글투부터 말랑말랑하다. 끝까지 증명사진을 고집한 직원의 소개 글에는 ‘재미있는 사진을 안 주셨어요. 똥고집'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총괄 편집을 맡은 구자현(36) 공원녹지정책과 주무관은 “아직 항의받은 적은 없다. 직원들이 비급 소식지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지난 1월10일 발행된 188호에는 새해 특집으로 ‘푸른도시국 운세’가 실렸다. 올해의 재물운으로 “곳간에 재물이 쌓여 장기 미집행 공원용지 보상 등의 해결이, 큰 수로에 물 흐르듯 막힘없이 진행될 것”이라며 푸른도시국의 현안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매주 1시간 넘게 아이디어 회의를 하며 먼저 큰 틀을 잡습니다. 새해 운세는 처음에 국장님 운세를 보려다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푸른도시국 운세로 방향을 바꿨어요.”

팀원들끼리 자발·주도·자생적으로 해나가면서 팀워크도 끈끈해졌다. 활달하고 추진력이 좋은 배시연(37) 자연생태과 주무관은 재미있는 기획을 도맡아 내놓는 아이디어 뱅크다. 편집 능력이 뛰어난 나란희(34) 조경과 주무관은 깔끔하고 똑 떨어져 더는 손댈 곳이 없다. 위트와 감각이 있는 손창민(36) 산지방재과 주무관은 팀원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준다. 서동희(33) 공원조성과 주무관은 섬세하고 꼼꼼한 장점을 활용해 <왁자지껄>의 디테일을 챙기고 있다.

소식지는 푸른도시국 직원은 물론, 다른 부서로 옮겼거나 퇴사한 직원 등 500여 명에게 전자우편으로 발송한다. 수신자가 워낙 많아 6번에 나눠 발송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이면 누구나 볼 수 있게 행정 포털에도 올린다. 요즘에는 입소문을 타고 다른 실·국에서 <왁자지껄>을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전화도 더러 온다. 구 주무관은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게 아니라 내부 직원끼리 꽁냥꽁냥 만드는 걸 좋게 보신 것 같다. 최근에는 한 부서가 <왁자지껄>을 90% 이상 참고한 소식지를 내기 시작했다”며 “다른 실·국 소식지는 아무래도 딱딱하고 행정적인 편이다. 소식지를 매주 내는 곳도 거의 없다. 대부분 월간”이라고 말했다.

<왁자지껄> 200호에는 ‘나날이 푸르게-푸른 꿈을 전하는 여러분이 서울의 희망입니다’라는 박원순 시장의 친필 축하 메시지가 실렸다. 구 주무관은 “박 시장님께 200호 축하 글을 부탁드리는 원고청탁서를 보냈더니 다음날 새벽 1시30분에 ‘기특하다. 기꺼이 써드리겠다’는 답장이 왔다”며 “피자 9판도 함께 보내주셨다”고 자랑했다.

업무 분장에 공식적으로 포함된 일이 아니라 몇 시간씩 원고를 쓰고 편집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의 쾌감과 매주 소식지가 나올 때의 뿌듯함에 또 힘을 낸다. “잘 봤다.” “재미있었다.” “이번 주도 역시 한 건 했네”라는 답장을 받을 때는 보람을 느낀다. <왁자지껄> 팀은 지난 3월부터 학습동아리 ‘팍팍(park park) 통신원’도 새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푸른도시국의 사내 소통과 공공 홍보(PR) 등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고민하는 모임이다. 구 주무관은 “직원들이 소통하며 하나 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같이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와 새 꼭지도 계속 만들고 있다”며 “외주를 주면 연간 수천만원이 들 일을 스스로 나서서 하는 팀원의 노고를 다른 분들이 헤아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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