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치매 어르신들 “반려견이 사람보다 낫네”

2천 회 돌파한 서울시 ‘동물교감 치유활동’ 현장

등록 : 2018-04-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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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2015년 전국 첫 시행

치매 어르신, ADHD 아동 등

반려견과 소통하며 정서 안정

올해 여성보호센터까지 확대

지난 12일 광진구 자양동 광진노인보호센터 2층 데이케어센터에서 8살짜리 진돗개 ‘소원’(가운데)이와 보호자 홍성현(왼쪽)씨가 어르신들과 함께 ‘동물교감 치유활동’을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12일 오후 광진구 자양동 광진노인보호센터 2층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시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어르신 6명이 위생장갑을 낀 손으로 고구마와 두부를 함께 으깨고 있었다. 10주 동안 진행되는 서울시의 ‘동물교감 치유활동’ 두 번째 시간으로, 8살짜리 진돗개 ‘소원’이에게 줄 간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소원이 보호자인 홍성현(52)씨는 어르신들이 으깬 뭉치를 손에 그대로 쥔 채 위생장갑을 뒤집어 벗게 했다. 뭉치가 담긴 위생장갑의 손가락 끝을 자르니 짤주머니처럼 조금씩 짜낼 수 있었다. 으깬 것을 경단처럼 둥글게 빚은 어르신이 홍씨의 안내를 받아 “소원아, 이리 와” 하고 부르자 소원이가 냉큼 다가왔다. “기다려!” “먹어!” 자신의 지시에 따라 먹이 앞에서 참는 소원이를 보고 어르신들은 “사람 못지않게 말을 잘 듣네.” “사람보다 낫다”며 감탄했다.

간식을 신나게 먹는 소원이를 본 어르신은 “아유, 예뻐라! 잘 먹고, 잘 커” 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홍씨는 어르신이 다른 부위의 털도 만져보라고 권했다. “거꾸로 쓰다듬어보세요. 촉감이 어떠세요?” “꺼끌꺼끌하네. 부위마다 조금씩 다르네.” 치매 어르신의 촉각과 작은 근육을 자극해 인지 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지난주에 배운 거 복습해볼게요. 5월5일은 무슨 날이죠?” 홍씨의 질문에 어르신들이 “어린이날”이라고 대답했다. “5월8일은요?” “어버이날.” “5월15일은요?” “스승의 날.” 막힘없이 대답하던 어르신들이 “5월3일은 무슨 날일까요?”라는 질문에는 주춤했다. 누군가 외쳤다. “개의 날!” “예, 맞아요. 진돗개의 날이에요. 진돗개가 천연기념물 53호라 5월3일을 진돗개의 날로 정했다고 말씀드렸죠.”

서울시가 2015년 전국 최초로 시작한 ‘동물교감 치유활동'은 반려견과 보호자가 함께 사회복지관, 양로시설, 지역아동센터 등을 방문해 어르신과 아동의 심리적 안정과 신체 발달을 촉진하는 활동이다. 아동, 어르신은 물론, 시민봉사자와 사회복지사 등에게도 좋은 반응을 받으며 최근 2천 회를 넘겼다. 서울시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취약계층 관련 시설 39곳에서 428명에게 1182차례의 활동을 했고, 올해는 1200회를 목표로 삼았다. 지난해 활동기관에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지역아동센터가 4.6점, 데이케어센터가 4.6점으로 전체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다.

2015년부터 동물교감 치유활동을 시작한 홍씨는 “소원이와 만난 어르신과 아이들의 변화가 정말 놀라웠다”고 한다. 지난해 구로구의 데이케어센터에서는 소원이가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강아지를 싫어하는 어르신이 있었다. 그러나 활동이 점차 진행되자 요양사에게 “오늘 수업 있는 날이지?”라고 물을 정도로 소원이를 기다리게 되었고, 결국 마지막 시간에는 소원이를 안고 사진까지 찍을 정도로 달라졌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아 아동기관의 선생님들과 1년 가까이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아이도 동물교감 치유활동을 시작한 뒤 선생님들과 소원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홍씨는 “처음에는 강아지가 무섭다고 울던 아이가 나중에 종이로 왕관을 만들어 와서 소원이에게 씌워주는 걸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반려견은 건강검진과 사회성·경계성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아야만 활동할 수 있다. 시민봉사자는 동물의 이해, 동물행동학, 특수 심리학, 노인학, 사회복지학 등 모두 45시간의 이론·실습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홍씨는 “첫해뿐 아니라 해마다 보수교육이 또 있다. 거기에 한 해 동안 경험한 게 더해지니 머릿속에 더 잘 들어오고 효과도 커지는 것 같다”며 “교육시간에 배운 걸 기본으로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더하고 어르신들의 반응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이 있는 어르신들은 손에 힘이 없기 때문에 간식 재료를 지퍼락에 넣어주면 만들기 쉬워진다. 짤주머니를 따로 마련하는 대신 위생장갑을 거꾸로 뒤집게 하는 것도 홍씨만의 노하우다.

사업 수행기관인 사단법인 위드햅은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반려견의 건강을 정기검진하며 꼼꼼히 챙긴다. 홍씨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인 활동견에 대한 위드햅의 배려가 참 꼼꼼하다. 활동 시간에는 정신없을 때가 많은데, 위드햅 직원들이 소원이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살펴서 도움을 준다”며 고마워했다.

서울시는 올해도 반려견 있는 시민봉사자 70명을 모집하고 어르신·아동뿐 아니라 여성보호센터의 소외된 여성까지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6월 셋째 주까지 위드햅 누리집(withhab.org)으로 신청하면 된다.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동물교감 치유사업은 서울시가 2015년 국내 최초로 추진해 대전, 순천 등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며 “취약계층이 동물과 교감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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