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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옆 오래된 인쇄골목, 쇄신의 봄 맞았다

인쇄골목 2대째 김영삼 비주얼마크 대표, 3차원 인쇄기술로 수출까지

등록 : 2018-04-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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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맡고 투자·거래처 늘리며 성장

CG쪽 인재 영입…완성도 중국 압도

“다시·세운 2단계 프로젝트에 기대”

서울시, 장인+청년→인쇄골목 혁신

지난 4일 중구 인현동 인쇄골목에서 김영삼 비주얼마크 대표가 컴퓨터수치제어(CNC) 가공기로 만든 3차원 동판과 제품을 보여주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중구 을지로 인현동 일대의 인쇄골목은 겉으로는 낙후돼 보이지만 그 속의 사회경제적 공간은 삶의 치열함과 역동성을 품고 있는 특이한 장소다. 인쇄업을 중심으로 하는 소규모 공장과 영업장들이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생산 공간이다. 긴밀한 상호 협조 없이는 인쇄물을 생산할 수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도 없는 협동의 공간이기도 하다.”(서울역사박물관의 <세상을 찍어내는 인쇄골목 인현동> 가운데)

인쇄골목이 자리한 중구에는 서울 인쇄업체의 67.5%(5500여 곳)가 밀집해 있다. 이 지역 인쇄산업의 역사는 조선 초기 서적 인쇄와 활자 제조를 담당하는 주자소, 한국 최초의 현대식 인쇄소인 박문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가 깊다. 그러나 지금은 남루한 환경과 경쟁력 약화로 인쇄업체들이 근근이 유지되는 상황이다.

아버지의 회사(삼성문화사)가 있어 어릴 때부터 인쇄골목을 드나들던 김영삼(37) 비주얼마크 대표는 낡고 쇠락한 이 골목으로 자신이 돌아올 줄 몰랐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일본의 인쇄전문학교에서였다. 국내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뒤 일본어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문학교를 알아보다 낯설지 않은 인쇄를 선택했다. 2년 동안 인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일본의 인쇄가공회사들을 방문하면서 인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2009년 아버지와 함께 동판을 만들게 된 그는 1년 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회사를 맡게 됐다. 삼성문화사는 1971년부터 40년 가까이 동판 생산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직원이 3명뿐인 작은 회사였다. 김 대표는 새로운 장비에 투자하고 거래처를 부산 등 전국으로 넓히며 이른 시간에 회사를 키웠다.

2014년에는 디자인의 고급화와 차별화를 위해 전문적인 디자인센터인 비주얼마크를 설립하고, 외국에서 컴퓨터수치제어(CNC) 가공기로 동판을 제작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기존 동판으로는 불가능했던, 섬세하고 입체감 있는 3차원 형상을 디자인할 수 있는데다 금박·은박을 씌우는 공정까지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어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비주얼마크는 3년 전부터 인도네시아(담뱃갑), 베트남(삼성 스마트워치 제품 박스), 타이(왕의 초상화) 등에 공급하며 지난해 수출액 20억원을 달성했다.

비주얼마크가 동남아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이너들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었다. 중국 업체들은 단가는 싸지만 그래픽 완성도가 비주얼마크보다 떨어졌다. 김 대표는 “한국에는 컴퓨터그래픽(CG)과 애니메이션 쪽 젊은 인재가 많다. 그런 분들이 인쇄 분야에 들어오니까 그래픽 완성도가 중국을 압도했다. 그러나 디자인 부서와 달리 동판 제작 부서는 젊은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쇄골목의 다른 업체들 사정도 비슷하다. “협회나 모임에 가봐도 젊은 분들이 없다.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는 곳이 많아졌고, 2대에 걸쳐 하는 분은 못 봤다”는 그는 서울시의 다시·세운 2단계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시는 2020년까지 청년의 아이디어와 최신 기술을 끌어들여 인쇄골목이 있는 세운상가 남쪽을 창작인쇄산업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2단계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김 대표는 “인쇄골목에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는 게 가장 큰 힘이 될 것 같다. 굉장히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세운상가의 장인과 청년 창업자 등이 다시세운 광장에 모여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서울시 제공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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