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42살에 공무원 임용…1년 만에 전산시스템 개발 ‘공직 안착’

영등포구청 전산운영팀 김준오 주무관

등록 : 2018-04-05 15:19

크게 작게

대학교직원·게임회사·문구점 거쳐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 끝에 ‘합격’

사용량 한눈에 파악하는 ‘윔스’ 개발

“과거에 무엇을 했다는 의식 버려야”

김준오 영등포구청 홍보전산과 전산운영팀 주무관이 지난 3월28일 구청 사무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전산장비 관리시스템(윔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된 모니터 앞에서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15년 하반기, 당시 만 40살이었던 김준오씨는 서울교육청 전산직 9급 공무원 면접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필기시험 성적은 합격선보다 높았지만, 면접에서 “굉장히 많이 준비한” 결과 면접관에게서 박수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떨어졌다. 면접에서 ‘우수’ 평점을 받으면 무조건 합격이고 ‘보통’을 받으면 필기 성적과 합산해 성적을 산정하는데, 김씨는 면접에서 보통 점수를 받았다 한다. 14명 면접 응시자 중 탈락한 2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고령자였다.

아깝게 떨어진 만큼 방황하고 좌절할 법도 하지만 김씨는 떨어진 그날부터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술·담배는 물론 친구 관계까지 다 끊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도 가지 않고 인터넷 강의만 듣고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그 결과는 이듬해 지방직(서울·경기)과 국가직 공무원 3곳 무더기 합격으로 돌아왔다. “면접에서 또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면접도 무사히 통과했어요.”

2017년 2월 영등포구청 전산운영팀에 전산직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된 김씨는 1년여 만에 자신의 업무에 뚜렷한 성과를 내어 ‘늦깎이 공무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정보시스템 통합유지보수 업무를 맡은 김 주무관은 영등포구청에서 사용하는 전산시스템의 실시간 사용량(트래픽)을 화면에 일목요연하게 표시해 장애 현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전산장비 통합관리시스템(윔스)을 2개월 만에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비용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김씨가 대학 전공 공부와 캐나다 게임회사에 다니던 시절 쌓은 전산업무 기술을 활용했다 한다. 그 결과 2017년 행정안전부 주최 제22회 지방정보통신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금천구·강서구 등 다른 구에서도 영등포구의 윔스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공무원이 되기까지 김씨는 15년간 대학교 교직원, 게임회사 직원, 문구점 사장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항공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흔히 ‘신의 직장’ 중 한 곳이라 하는 대학교 교직원 시험에 합격해 첫 직장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했다. 그러나 “5년간 일하다보니 답답해져서” 퇴직한 뒤 호주로 기술이민을 준비하던 중, 캐나다에 본사를 둔 외국계 게임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입사 제안을 받아 취업을 했다. 그러다 “외국인과 같이 일하는 어려움” 때문에 다시 퇴사한 뒤, 평소 좋아하던 문구점을 열어 자영업자가 되었다. “장사가 너무 잘돼서 오히려 힘들었어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중무휴로 근무하다보니 몇 차례 쓰러지는 등 건강이 많이 나빠졌죠.”

우여곡절 끝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공무원 세계에 도전하고 비교적 연착륙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강미정 영등포구 전산운영팀장은 “자신을 낮출 줄 안다”는 말로 김 주무관의 먼저 다가가는 겸손한 자세를 꼽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같이 일하고보니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니까 조직과 융합이 잘된 것 같아요.”

실제 나이가 많다는 점 때문에 김씨가 일지망한 구청에서는 거부되는 등 진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솔직히 다시 군대 온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웃음) 팀원들이 잘 도와주십니다.”

늦깎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부탁하자 김 주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과거에 무엇을 했다는 의식을 버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면 조직생활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주무관은 어떤 공무원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내가 사회생활에서 배운 것을 공무원 세계에 접목해서 이 조직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좋은 공무원이 되는 데 나이가 큰 관계가 없음을 김 주무관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