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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서울서 무소속 구의원 당선 3명 불과…지원 서비스 ‘첼렉션’ 눈길

등록 : 2018-04-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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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소셜벤처 ‘칠리펀트’의 박신수진 대표와 ‘폴리시 브릿지’의 이현승 대표, 전문디자인회사 ‘공영그래픽스튜디오’의 김동규 대표가 지난 3월15일 노원구 서울디딤터에 모여 ‘첼렉션‘ 운영을 논의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16년 ‘촛불시위’를 보고 민주주의와 정치에 눈뜬 시민들이 내가 사는 동네도 시민의 힘으로 바꿔보자며 동네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큰마음 먹고 구의원 도전에 나서자마자 엄청난 장벽에 맞닥뜨린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서울에서 당선된 무소속 기초의원(구의원)은 단 3명이다. 서울시 전체 기초의원 수가 419명(지역구 366명 + 비례대표 53명 별도)이니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무소속으로 지방선거에 나서는 것은 ‘맨땅에 박치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다.

동네 정치에 한 발 내디디려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 있다. 무소속 출마자를 돕기 위해 지난해 청년기업 3곳이 힘을 모아 온라인 통합지원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첼렉션’이다. 첼렉션은 일반 시민이 정당 기반 없이도 지방의원이 될 수 있도록 선거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무소속 후보의 중앙 컨트롤타워 구실을 한다. 첼렉션은 ‘선거에서 도전을 선택한다’(challenge + selection + election)는 뜻이다. 정치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어가려는 스타트업(새싹기업) ‘칠리펀트’가 지난해 가을 플랫폼을 만들고, 정치 소셜벤처 ‘폴리시 브릿지’·전문디자인회사 ‘공영그래픽스튜디오’가 잇따라 참여했다.

‘칠리펀트’는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해, 연말에 법인을 만든 정치 소셜벤처다. 칠리펀트는 시민을 대상으로 정치 교육, 지원, 참여 사업도 한다. 정치 지원 사업의 하나로 ‘첼렉션’도 기획했다. 칠리펀트의 박신수진 대표는 “정당정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방정치는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시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이 동네 정치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폴리시 브릿지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회사다. 국회의원 비서관과 비서 출신 3명이 정치를 국민 곁으로 가져오기 위해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펼치는 스타트업으로, 역시 지난해 고용부 사회적기업 육성팀이다.

폴리시 브릿지 이현승 대표는 북클럽에 가입하려고 검색하다 독립서점 ‘퇴근길 책한잔’의 페이스북에서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구프)를 알게 되었다. “첼렉션이 지향하는 것과 똑같아 너무 반가웠어요. 일요모임에 참가해 첼렉션을 알렸죠. 구프와 만나게 되면서 첼렉션 활동에도 활력이 생겼어요.”

무소속 후보들에게 홍보물 디자인과 제작은 큰 부담이다. 비용 절감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전문디자인회사 공영그래픽스튜디오 김동규 대표도 동참했다. 김 대표는 “정당들은 대개 색깔로 구분하는데, 첼렉션에서는 무소속 출마자의 자율성을 살리며 패턴으로 눈에 띄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패턴을 14개 만들고 숫자와 결합해 후보자가 직접 조합해 만들 수 있게 했다. 인쇄용 출력을 쉽게 할 수 있게 홍보물 규정 사이즈에 맞춘 템플릿(견본)도 제공한다.

구프의 무소속 예비후보들은 첼렉션의 가장 유용한 서비스로 공약 컨설팅을 꼽았다. 후보자가 정책보고서 초안을 쓰고 폴리시 브릿지는 맞춤 정책보고서 형식으로 다듬어준다. 출마자들은 보고서를 쓰면서 자신이 왜 출마하는지 다시 고민하게 되고, 당선 뒤 갖추고 있어야 할 역량을 스스로 점검한다. 출마 지역 데이터를 미리 분석하게 해 지역에 필요한 게 뭔지를 알게 되고, 동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내걸고 싶은 공약이 정리된다.


이 대표는 “정당 출마자들이 공천 과정에서 자기 점검을 하듯, 무소속 출마자는 정책보고서를 만들며 스스로 지방의원으로서의 역량을 체크한다”며 “이들의 지식을 정책화할 수 있게 지원한다”고 말했다.

첼렉션의 서비스 이용료는 없다. 다만 당선되면 월급의 1%를 후원금으로 내야 한다. 박신수진 대표는 “앞으로 무소속 시민 출마자가 선거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첼렉션은 궁극적으로 ‘정치가 모두의 직업’이 되는 걸 지향한다. 청년이나 경력단절 여성, 주부, 은퇴자가 관심 가져볼 만한 직업이 되었으면 한다.

이 대표는 지방정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혐오가 많지만, 정치는 아무나 못한다는 이중 사고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지금의 정치 입문 과정은 바뀌어야 한다. 지방정치는 봉사하는 자리, 지역을 위한 자리로 주민도 할 수 있게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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