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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상인 함께 식사하며 마장도시재생 협의

마장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마장키친’의 정기원 주방 코디네이터

등록 : 2018-03-0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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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성동구, 센터에 부엌 마련

시장 재료 + 인프라로 창업 확산

“한식조리학교부터 건설사까지

독특한 제 경력 도움되었으면”

지난 2월20일 오전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에 있는 마장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의 ‘마장키친’에서 정기원 주방 코디네이터가 주민기자단 회의를 앞두고 샌드위치와 카나페를 만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2월20일 오전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 안에 있는 마장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에 들어서자 대형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셰프(요리사)복을 입은 정기원(28) ‘주방 코디네이터’가 주민기자단 회의를 앞두고 햄과 토마토, 크림치즈 등으로 샌드위치와 카나페(얇게 썬 빵이나 크래커 위에 채소, 고기, 생선, 달걀 따위를 얹은 음식)를 만들고 있었다. “주민 모임을 할 때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합니다. 마장동 도시재생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식문화로 주민이 화합하게 하자는 것이거든요.”

마장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는 서울시와 성동구가 마장축산물시장 일대 도시재생을 위해 지난 1월31일 문을 열었다. 다른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볼 수 없는 ‘마장키친’이 있다는 게 특징이다. “마장동은 음식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다는 게 장점 같아요.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음식이 있으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잖아요. 마장키친을 잘 활용하면 도시재생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정 코디네이터가 갓 만든 샌드위치와 카나페를 회의 탁자에 올리자, 이날 처음 만난 주민기자들도 어색한 표정이 조금 풀렸다. 마장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며 45년째 사는 김건백씨는 “차를 수리하니까 여러 사람을 알고, 듣는 정보도 많아서 주민기자에 지원했습니다. 마장동이 앞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도시재생사업이 마장동의 과거 역사를 조명하는 거, 주민들은 싫어해요. 오죽하면 마장동 이름을 바꾸자고 하겠습니까” 한다.


마장축산물시장 일대는 위생과 경관이 낙후되고, 축산물 유통사업 지역과 노후 주거지역이 섞여 있어 지난해 2월 서울형 도시재생 2단계 지역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정 코디네이터는 “악취 등 지역 문제 때문에 주민과 상인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동마장과 서마장 주민은 또 다릅니다”고 했다. 동마장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이고, 서마장은 원룸과 빌라 등으로 이뤄진 저층 주거지다. “최근 시장 안 축산물 유통 도소매업체들이 시장 바로 옆 서마장의 빌라 1층을 임대해 냉동창고로 이용하는 일이 늘어났는데, 그러면 그 위층에는 사람이 살기 어려워져요.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다보니 주민과 상인이 갈등을 빚게 되죠. 상인은 여기 살지 않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지역 환경 개선 등 현안에는 공감하지만, 적극적이긴 어려워요. 대신 시장 활성화 등 경제적 관점의 요구가 강합니다.”

지역 활성화에 집중하는 다른 지역의 도시재생과 달리 마장도시재생은 산업도 활성화해야 해서 마장키친을 만들었다. 마장축산물시장의 신선한 식재료와 인프라를 활용해 특화 교실(발골, 정형, 숙성(에이징) 등 고기 특화 전문교육), 창업 지원(창업·취업을 위한 전문교육과 컨설팅 연계), 창업 공간 대여(사회적 기업 등에 조리 작업 공간 대여) 등으로 다양한 창업 모델을 배출하고 확산할 거점 공간이다. “발골, 정형, 숙성 등 전문교육은 현직 셰프들도 관심이 많고, 다른 곳에선 수백만원짜리 전문강의도 있어요. 우리는 마장동에서 25~30년 동안 일하신 발골·정형의 대가인 기능공들을 초빙해 특화 교실을 열 계획입니다. 시장에 인적 자원이 충분해 멀리 전문교육까지 내다보고 있어요.”

3월부터는 주민과 상인을 위해 요리 강습을 시작한다. 현재 베트남 등 아시아 음식, 한식, 이탈리아 음식 등 주제마다 3개월씩 수업한다는 계획으로, 셰프 3명을 섭외해놓았다. 마장동의 식재료를 활용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배우며 주민과 상인의 벽을 허물려고 한다.

대학에서 컨벤션경영학을 전공한 정 코디네이터는 한때 전주에 있는 국제한식조리학교에 다녔을 정도로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식품회사 등에서 인턴을 했다. 2~3년 전부터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게 돼,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도시재생 코디네이터에 계속 응시하다 지난해 말 마장도시재생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도시재생 분야는 건축·도시 쪽 전공자가 많은데, 마장동에는 독특한 제 경력이 맞았던 것 같아요. 인생은 정말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2개월 남짓 일해보니 주민과 소통하고 그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이 쉽지 않네요. 게다가 마장동은 지역 활성화와 산업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데, 그 사이에서 중심 잡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주민과 상인 모두의 의견을 잘 담았을 때 마장도시재생도 성공할 수 있어, 즐기고 있습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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