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거고의 지혜

거고취신(去故取新) 갈 거, 예 고, 취할 취, 새로울 신

등록 : 2017-12-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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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교수신문>이 2017년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파사현정은 ‘사악한 것을 깨뜨려(破邪) 올바름을 밝힌다(顯正)’는 뜻이다. 본래 불교용어이다. 파사현정이 선택된 것은 촛불시위에 이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등 일련의 정치 격변을 높이 평가한 결과일 테다. 적폐청산 작업이 더욱 근본적인 개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으리라.

재미있는 것은 18대 대선이 있던 2012년 연초에 <교수신문>이 뽑은 ‘희망의 사자성어’가 파사현정이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국민이 당시 대통령선거에 거는 기대감을 담은 것이었지만, 선거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파사현정의 ‘희망’은 박근혜 정부의 잇따른 퇴행 정치로 그렇게 빗나가는 듯했지만, 촛불과 탄핵이라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오히려 ‘예언’처럼 이뤄졌으니 묘하지 않을 수 없다.

파사현정이 2017년의 사자성어라면, 내년에 거는 기대는 ‘거고취신’(去故取新)이라는 사자성어에 담아보고 싶다.

거고취신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 잡괘전은 혁(革)괘와 정(鼎)괘를 묶어 풀이하면서 ‘혁은 옛것을 버리는 것이요(去故), 정은 새로운 것을 취함(取新)이다’라고 하였다. 혁은 본래 가죽이다. 가죽이 되려면 털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혁신의 의미는 여기서 나온다. 정은 솥이다. 곡물을 끓여 밥을 짓는 그릇이다. 솥 안의 찌꺼기를 쏟아내고 새 쌀과 물을 부어야 새 밥을 지을 수 있다. 솥을 비우고 씻는 것이 취신의 전제다. 따라서 거고와 취신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변화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각각의 창조 행위이다. 크게 보면 대자연의 순환이자 인생의 순리도 의미한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 같은 말들도 본질에서는 거고취신의 정신과 다르지 않다. 핵심은 온고(溫故)와 법고(法古)의 의미를 통해 거고(去故)의 때를 아는 지혜이다. 전통의 경험과 법제를 잘 활용하고 더는 이롭지 않을 정도로 낡으면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순환이자 정치의 순리이기도 하다.

새해는 개헌이 판가름나는 해다. 지방선거도 있다. 정치판도 이리저리 세와 명분에 따라 요동칠 것이다. 부디 ‘거고’의 지혜로 나라의 미래를 새롭게 할 헌법을 ‘거고취신’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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