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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비만 1600억 가까이…업무공간 50% 미만 호화 청사

용산구청사 상

등록 : 2017-12-28 14:07 수정 : 2018-01-1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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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가능한 인근 문화시설

따져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바구니에 담으니

호화 청사가 되는 것

용산구청사 전경

한강에서 반포대교를 지나 남산을 향해 녹사평대로를 오르다보면 못 보고 지나치기는 불가능한 건물이 하나 떡하니 나타난다. 파란빛 영롱한 커다란 유리 상자, 용산구청사다. 워낙에 잘 알려진 건물이기도 하지만 그 크기나 생김이 주는 포스가 어마어마해서 지나는 내내 입이 벌어지고 눈을 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이 동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랜드마크’다.

용산구청사는 완공 전부터 매스컴을 통해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용산구청사를 얘기하려면 청사의 건축적 가치나 도시적 어울림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이 건물이 얻은 명성의 원인부터 말해야만 한다. 아무리 모든 건축물의 시작이 무언가에 대한 욕망이라고는 하지만, ‘호화 청사’로 대표되는 공공건축의 방만한 행정 문제는 우리가 여전히 안고 있는 사회현상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인구 23만, 서울시 2% 인구의 구청사

인구 1천만명에 재정자립도 80%에 이르는 수도 서울이 시청사 건설에 3000억원 넘는 돈을 쓰고 호화 청사 비난을 받았고, 서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인구의 성남이 서울시청사보다도 많은 예산을 들여 청사를 짓는 바람에 모라토리엄 선언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지방자치단체의 호화 청사 논란에 서울의 구청사들까지 한몫 거들고 나섰고, 그중 용산구는 단연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용산구의 현재 구민 수는 23만명을 못 채우고, 재정자립도는 2010년 이후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 40%대에 머무른다. 23만명은 서울시 인구의 겨우 2%를 차지하는 숫자로, 서울시에 속한 25개 구들 중에서도 작은 편이다. 성남시 인구와 비교해도 4분의 1이 안 된다. 그런데도 건설비로만 16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청사 건립에 털어넣었다. 이 금액이 금싸라기 땅값은 빠진 순 건설비라니 입이 떡 벌어진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 모든 구청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쓴 청사로 성남, 용인,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등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의 지자체 청사들이 이름을 올린 호화 청사 순위에서 늠름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용산구청사 전시실

용산종합행정타운이란 이름에 담긴 속뜻

하지만 말 많은 용산구청을 ‘용산종합행정타운’이라 하고 싶어 하는 관계자들은 ‘호화 청사라니, 천부당만부당하다’며 입이 댓 발은 나왔다. 이름은 구청사지만 사실은 꼭 필요한 다양한 기능들을 확보하느라 애쓴 결과라는 것이다. 의회 시설이나 보건소 등 시민 복지에 없어서는 안 될 기능들은 당연히 포함해야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회의실과 다양한 관련 단체와의 교류도 필요하지, 시민들의 문화적·예술적 경험의 기회를 늘리고 문호를 넓힐 장도 빼놓으면 섭섭하지, 휴식과 사회적 만남을 위한 기회의 장도 없으면 이상하지, 수십년 뒤 우리 지역 엄청 발전할 테니 그때 맞춰 부끄럽지 않으려면 건물도 본때 나고 시설도 거창해야지…. 응당히 쓸 곳에 쓴 예산이지 결코 호화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듣고 보면 또 ‘그럴 수도 있을 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순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기 전에, 다시 한번 요모조모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공간 많으면 그게 호화 청사

서울시청사가 실제 시정에 필요한 업무공간은 전체 면적의 반도 안 되는 깡통이듯, 모든 호화 청사 소리를 듣는 공공건물의 공통된 특징은 필요하지도 않은 기능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근거리에 전시시설과 공연장이 즐비한데도 청사 내에 엄청난 규모의 다용도 공연시설이나 전시시설을 포함하는 것은 기본이다. 유사한 기능들을 한곳에 몰아 다목적 공간을 구성할 수도 있는데, 각각의 실을 아낌없이 시원하게 배정한다. 수십년 뒤의 미래를 내다본다는 헛소리엔 작은 평수에서 시작해 늘려가라 혼찌검을 내야 한다.

더구나 시민을 위한 공공청사를 선출직 단체장이나 의회가 자신의 빈약한 업적을 채울 빛나는 방패로 내세우거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일도 종종 있으니 속 터질 일이다. 그들 주머니를 털어 공사비를 냈으면 모르되 내가 낸 피 같은 세금으로 지었다면 정말 화난다. 공공청사의 설계 공모를 통한 과한 디자인도 늘 도마 위에 오른다. 요즘은 어느 정도 사정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지만 공모전 당선을 위한 어이없는 오버 디자인은 여전하다. 아무리 복층유리에 태양광에너지를 쓴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유리의 낮은 단열 성능이지만, 건축주도 건축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려 친환경 디자인이라 떼를 쓰고, 에너지 효율 높은 건물이라며 상도 받아낸다.

용산구청사 옥상정원

흔히 요즘의 관 주도 건설 사업들은 가치공학적인 과정을 거쳐 낭비를 줄이고자 노력한다. 가치공학이라는 것은 미국의 제너럴모터스가 2차 세계대전에서 군수산업을 담당하면서, 동일한 가치면 가격을 낮게, 동일한 가격이면 가치를 높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탄생한 이론이자 실천적 시스템이다. 그럼 호화 청사라 손가락질받는 건물들은 가치공학적 접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빚었을까?

그렇지 않다. 남의 돈으로 차린다니 설날 차례상에 좋다는 건 다 올려볼 셈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마음 담은 한 사발 정화수로도 조상님 뵐 정성은 마련된 것인데도, 푸아그라니 제비집이니 구하기도 힘들고 격에도 맞지 않는 음식을 귀한 미주와 함께 올린다. 하지만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드실 리 만무한 호화 차례상은 젯밥에 정신을 판 몰염치한 산 사람들 배만 채우게 되어 있다. 그러니 가치공학입네 뭐네 하며 접시 몇 개 치워봐야 워낙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 다 먹지도 못하고, 청구서로 기둥뿌리 흔들리긴 매한가지다. 그런데 비싼 가격표 붙이고는 깎아주는 체하는 엉터리 가치공학 적용도 없지 않으니, 그저 남의 빚 안 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즐거움을 누릴 만한 분수를 아는 게 중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용산구청사

공공청사 건물은 업무시설이고, 업무시설은 무엇보다 기능이 우선이다. 건물의 기능이라는 것은 요구되는 인간의 행동이 순조롭게 일어날 수 있는 적정한 공간 크기와 구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본이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형편에 따라 다소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장을 보건 살 집을 구하건, 살림은 식구 수와 호주머니 사정을 봐가며 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호화로운 장식과 대단한 공간감이 주는 건축적인 감동이 싫을 리는 없지만, 이런 것이 공공청사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는 없다.

용산구청사는 단순한 업무시설 이상의 무언가를 꿈꿨다. 그러니 종합행정타운이라는 아리송한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전체 연면적에서 구청사 면적은 반이 안 되고 로비니 식당이니 빼면 업무 면적은 훨씬 더 적다. 그 나머지는 보건소와 구의회·주차장·용산문화예술회관 등이 차지한다.

용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8500㎡(약 2600평) 규모의 용산문화예술회관은 대공연장·소공연장·연습실·전시장에 강의실마저 갖춘 다목적 공간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훌륭한 체력단련실과 고급스러운 구내식당, 도서관에 어린이 시설까지 없는 것이 없으니 좋기는 하다. 하지만 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공공청사 건물은 물론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민관의 거리를 좁히고 행정적 효율과 편의를 제공해야 하고, 여유만 있다면 시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여타 기능들도 얼마든지 들일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 데려다 놓으면 정부청사로 착각할지도 모를 이런 건물이 정말 구민 23만명에 재정자립도 50%가 버거운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벌일 일이었을까?

시민들은 지자체가 건설 사업을 벌이면 눈에 불을 켜고 꼼꼼히 살펴야 한다. 밥 사준다며 불러놓고는 내 카드로 계산하고, 그러고도 지가 낸 듯 거드름 피우는 자들 천지니, 혹시라도 세금으로 무슨 애먼 짓을 벌이려는지 우리라도 묻고 따져야 한다.

글·사진 안준석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ㅣ건축가(AIA)·공학박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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