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집기들도 청년·소상공인 창업에 한몫해요”

소셜벤처 ‘스타일공유’ 이랑주 대표, 상품진열 전문가 경력 살려 집기공유 사업

등록 : 2016-04-21 16:46 수정 : 2016-04-22 13:39

크게 작게

1 이랑주 스타일공유 대표가 남한산성 시장의 소상공인 진열대 스타일링 작업을 하고 있다. 2 이랑주 대표가 신발업체에서 매장을 정리하면서 기증한 집기를 재활용해 청년 창업가들의 시제품 전시 진열대로 만들었다. 스타일공유 제공

옛 용산구청 1층 한편에는 서울시청년창업플러스센터의 자그마한 전시 공간이 있다. 백화점에서나 봄직한 고급스런 진열대에는 청년 창업가의 시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2년 전 한 유명 신발업체가 매장을 새 단장하면서 남은 집기를 기증하겠다고 상품진열 전문가 이랑주(44) 한국브이엠디(VMD, 비주얼머천다이징디자인)대표에게 연락을 해 왔다. 이대표는 한걸음에 달려가 집기들을 받아 왔다. 마침 현재의 전시 공간 바로 옆 사무실에 입주한 이 대표는 공유사업 창업을 준비하면서 센터의 청년 창업가들에게 창업교육을 무료로 해 오던 터였다. 기증 받은 물건들을 새로 활용해서 전시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이 대표는 재능기부로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버려질 뻔했던 집기들이 청년 창업을 위해 멋지게 다시 태어났다.

이랑주 대표는 20여년간 상품진열 일을 해 왔다. ‘죽어가는 곳 살리는 손’이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백화점, 마트, 전통시장 등지에서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2년 전 <기독교방송>(CBS)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한 그의 강의 동영상은 조회수가 수만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상품 진열의 ‘미다스 손’으로 자부하던 그가 공유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이 대표는 해마다 백화점 같은 곳의 입점 업체들이 새 단장 등으로 버리는 진열 집기들이 3만톤이 넘는데, 방염, 방열 처리가 된 이들 고급 집기가 10년 이상 충분히 쓸 수 있는데도 2~3년도 채 쓰지 않고 버려지는 게 안타까웠다. “좋은 재질로 만든 진열장, 매대 같은 전시 집기들을 기증 받아 새 활용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죠. 이게 국내외 상품 전시를 해야 하는 청년 창업가나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는 중소기업공단 등에서 주최한 여러 강의에서 소상공인들을 만나며 창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다. 600만명에 이르는 소상공인들이 약 300만개 업체를 꾸리고 있고 10% 남짓은 1년 안에 문을 닫는다. 나머지 90%도 대부분은 3년 안에 문을 닫을 정도로 실패율이 매우 높다. 실패 뒤 폐업 과정도 부담이다. 폐업할 때도 10평에 100만~2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재기를 위해 재창업할 땐 다시 집기 사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소상공인을 위한 집기 공유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유사업의 본격적인 창업 기회는 우연하게 다가왔다. 지방에 있는 한 사회적기업에서 이 대표에게 상품진열 자문을 구해 왔다. 산업공단에서 나오는 폐섬유를 활용해 친환경 에코백을 만드는 이 회사는 연간 매출이 몇 백만원에 머물 정도로 실적이 낮았다. 이 대표가 판매장을 살펴보니 상품을 책장에 쌓아 놓는 등 제대로 전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백화점에서 기증 받은 조형나무에 에코백을 걸어 전시해 보았다. 전시 방법을 바꿔 제품의 장점을 보여 주기 시작하니 매출은 쑥 올랐다. 이를 계기로 그는 집기 공유사업을 사회적기업으로 창업해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지난해 스타일공유라는 소셜벤처회사를 만든 이대표는 주변의 소개로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은 고용노동부가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창업 아이디어를 갖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예비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해 창업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스타일공유는 서울지역 중간 지원조직 사단법인 ‘씨즈’의 육성팀으로 선정되어 사업비, 멘토링, 교육 프로그램 등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그는 육성 기간 동안 누군가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데 도움을 준다는 보람도 느꼈지만, 좋은 일 하면서 돈 벌기 쉽지 않다는 현실도 더불어 알게 됐단다. “사회적기업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는 모범 사례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교육을 받았어요.”

육성 사업비로 이 대표는 스타일공유 모바일 앱 개발을 진행했다. 앱의 주요 메뉴는 공유 신청하기(기증자와 사용자 무상 연결), 판매 물품(중고 집기 유료 거래) 등록하기, 구매하기(새 활용 집기) 등으로 구성해 봤다. 수익 모델은 구매하기와 스타일 전문가들의 컨설팅 등으로 만들어 갈 계획이다.


요즘 이 대표는 고민이 많다. 당장은 기증 받은 집기들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 컨테이너를 놓아둘 공간 찾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서울혁신파크 공간지원 사업에 선정됐는데 비용 부담으로 입주를 보류했다. 기증 물품을 받아오고 공급하는 트럭도 필요하다. 자활기관 등 기존에 업무용 트럭을 갖고 있는 곳에서 공유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2012년 1년간 세계 시장을 둘러본 뒤 ‘가진 재능으로 사회문제 푸는 일을 돕자’고 남편과 뜻을 맞췄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 대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지면 더 많은 사회적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회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지만, 도움을 줄 수는 있어요. 도움이 많이 모이면 언젠가는 사회문제들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