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전망 좋은 서울

늦가을에 물든 구중궁궐이 내려다보인다

역사박물관 옥상정원·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옥상·와룡공원 전망대 등 조선 5궁의 조망 포인트

등록 : 2017-11-2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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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전망대에서 본 덕수궁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 조선의 다섯 궁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올랐다. 궁궐은 숲속의 둥지였다. 단풍 숲과 전각이 어울린 풍경이 보기 좋았다. 궁궐을 보고 내려와 궁궐로 들어갔다. 돌 하나, 나무 하나까지 구중궁궐에는 옛이야기가 서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본 경복궁

광화문 앞 세종대로 동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은 경복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서면 인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잦아들던 산줄기가 북악산으로 이어져 북악의 정상을 우뚝 세운 형국을 볼 수 있다. 그 뒤에는 북한산이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북악산의 품에 안긴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뒤 1395년에 처음 세운 궁궐이다. 새 나라의 새 궁궐답게 전각의 위세가 등등하고 들어앉은 자리가 점잖고 엄숙하다. 궁궐의 숲을 물들인 단풍과 전각이 어울려 고풍스럽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본 경복궁

경복궁 가을 풍경의 으뜸인 향원정은 지금 공사 중이다. 벽을 만들어서 안을 볼 수 없다. 아쉬움을 남기고 경회루로 향한다. 1412년 태종 임금은 근정전 서쪽에 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면서 섬을 만들고 그 위에 경회루를 지었다. 연못에 경회루가 비친다. 멀리 있는 인왕산도 연못에 떠 있다.


경회루 남쪽에 있는 건물은 수정전이다. 조선 초기에는 그 자리에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던 집현전이 있었다. 또 이곳은 세종 임금 때 과학자 장영실이 발명한 자격루(자동시보 장치가 붙은 궁중표준 물시계)를 설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경희궁 서암

경희궁 전각이 한눈에 보이는 태령전 담장 빈터

경희궁 흥화문으로 들어서면 길 양쪽 옆으로 단풍 물든 풍경이 펼쳐진다. 단풍 사이 정면에 숭정문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인왕산이 버티고 있다. 숭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경희궁 서쪽 단풍숲을 지나 태령전 담장 옆으로 걷는다. 그 길에서 영렬천을 만났다. 영렬천은 경희궁에 있는 샘이다. 물이 차가워 ‘초정’이라고도 했다. 샘 위 바위에 선조의 글씨를 집자해서 새긴 한자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영렬천을 지나 태령전 담장 옆 빈터로 오른다. 이곳이 경희궁의 전각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곳이다. 전각의 지붕이 겹쳐지면서 생긴 선이 도심의 빌딩 숲과 대조적으로 어울린 풍경을 볼 수 있다. 단풍 물든 숲이 궁궐을 감싸고 있다. 태령전 뒤에 서암이라 이르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원래 이름은 왕암이었다. 왕의 기운이 서렸다고 해서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바위 안에 샘이 있는데, ‘암천’이라고 했다.

정동전망대에서 본 덕수궁

덕수궁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3층 정동전망대로 가야 한다. 통유리창 밖으로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인다. 산의 품에 서울 도심 빌딩 숲이 안겼다. 그 빌딩 숲에 안긴 건 덕수궁이다. 그리고 덕수궁의 숲은 그 안에 전각을 품었다. 자연과 인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렇게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덕수궁은 규모가 작고 단풍 없는 곳이 없어서 어디를 바라보든 단풍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덕수궁 단풍에 취한 발걸음이 멈춘 곳은 마른 가지에 푸른 잎이 난 주목과 나뭇잎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드러난 살구나무가 마주 보고 서 있는 석어당 앞이었다. 1904년 덕수궁에 큰불이 나서 전각이 다 탔을 때, 살아남은 나무가 석어당 앞 살구나무다. 지금의 석어당은 불이 난 뒤 새로 지은 것이다.

창경궁 춘당지

숲 사이로 머리를 내민 창경궁의 전각

와룡공원 화장실 옆 전망대에서 성균관대학교 후문 부근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간혹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창경궁, 창덕궁의 숲과 전각 일부를 볼 수 있다. 그중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와룡공원 전망대다. 와룡공원 전망대에 서면 흥인지문 일대와 종로의 빌딩이 보이고, 그 뒤로 강남구와 송파구 일대까지 볼 수 있다. 그 풍경의 오른쪽 아래에 자리잡은 녹색 지대가 창경궁의 숲이다.

넓게 펼쳐진 숲 위로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의 지붕과 명정전으로 들어가는 명정문의 지붕, 외행각의 지붕 일부가 드러났다. 숲에 깃든 둥지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창경궁 숲의 단풍이 장중하다. 창경궁 가을 풍경 중 으뜸은 춘당지 단풍이다.

춘당지를 한 바퀴 돌고, 함인정 앞 잔디밭에 있는 주목과 담장 옆에 있는 큰 향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창경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나무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선인문 부근에 있는, 괴이하게 생긴 회화나무가 바로 그 나무다. 조선 정조 임금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곳이 이 나무 부근이다. 회화나무는 보통 번듯하게 자라는데, 이 나무는 고통에 몸부림치듯 가지가 이리저리 비틀리며 자랐다.

창덕궁을 볼 수 있는 원서동 빌라촌

종로구 원서동 원서빌딩 부근에서 창덕궁 담장과 전각의 지붕이 어울린 풍경을 볼 수 있으나, 시원한 전망이 없어서 아쉽다. 원서동 창덕궁3가길 언덕 빌라촌 길에서 보는 창덕궁 풍경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다.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은 창덕궁 서쪽 측면이다. 의풍각, 구선원전, 인정전 등 창덕궁의 전각과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까지 볼 수 있다. 궁궐을 감싸고 있는 중후한 단풍 숲 가운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있어 풍경에 생기가 돈다.

천연기념물 제472호 회화나무

창덕궁의 단풍은 후원을 비롯해서 부용지와 애련지 주변이 유명하다. 창덕궁의 단풍을 즐긴 뒤에 돌아가는 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찾아간다. 창덕궁 서쪽 담장과 규장각 건물 사이에 난 길로 가다 보면 기이한 향나무를 만날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194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750년 정도 됐다. 1800년대 초반에 그려진 동궐도(창덕궁을 그린 그림)에도 이 나무가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여덟 그루의 회화나무가 모두 천연기념물 제472호다. 임진왜란 때 불탄 창덕궁을 다시 지으면서 심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 없는 공공기관 건물, 병원, 학교, 일반 건물의 옥상과 고층 건물에 있는 식당과 카페 등 유료로 이용해야 하는 곳은 전망 좋은 곳에서 제외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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