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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영어수업이 재밌다” 미국인 부부 교사의 헌신

벤과 모니카 부부, 최근 문 연 금호글로벌체험센터 기획부터 강의까지

등록 : 2017-11-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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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성동글로벌영어하우스 입주

즐겁게 역사·문화 배우는 게임 고안

수업 교재까지 미국에서 찾아 기획

“한국서 받은 친절, 학생 도우며 갚아”

성동구는 지난 6월부터 금호동 독서당인문아카데미 2층에서 금호글로벌체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보트 경주를 하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벤(맨 뒤)이 바라보고 있다.

“얘가 반칙 썼어요.” 한 학생이 항의하자 벤(벤저민 코스턴베이더·28)은 “잉글리시 플리즈”(영어로 말하세요)라고 말했다. 영어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문이 막힌 학생은 급한 마음에 몸짓으로 반칙 상황을 재연했고, 벤은 학생들에게 경기의 규칙을 다시 한번 알려줬다.

지난 2일 오전 성동구 금호동 독서당인문아카데미 2층 금호글로벌체험센터에서 보트 경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옥수초등학교 4학년 1반 학생들이 저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모형 보트를 거터(물받이)에 띄운 뒤 입으로만 불어 맞은편까지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시우(10)군은 “직접 배를 만들고 경주를 해서 진짜 신났다. 학원은 읽기, 쓰기 위주로만 공부하는데 여기서는 과학적인 지식도 배우고 실험하면서 영어를 쓰니까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나자 벤은 1620년 유럽의 청교도인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아시아의 쌀, 유럽의 밀과 같은 아메리카의 주식이 뭔지 묻자 멀뚱멀뚱 서로 바라보기만 하던 학생들은 ‘옥수수’라는 답을 듣고 신기해했다. 옥수숫가루를 만져본 뒤 남미 전통 빵인 ‘아레파’를 함께 만들기로 했다. 벤이 아레파의 재료를 하나씩 보여줄 때마다 학생들은 “솔트”(소금), “워터”(물)를 외쳤다. 마지막으로 식용유통을 보여주자 한 학생이 상표를 보고 큰 소리로 “카놀라유”라고 외쳤다. 교실이 웃음바다가 된 와중에도 벤은 진지하게 “‘유’는 한국어고, 영어로 ‘오일’”이라고 바로잡았다. 조하은(11)양은 “여러 재료를 수업시간에 활용하니까 다양한 분야의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뭔가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많아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날은 금호글로벌체험센터가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3일짜리 미국 문화 체험프로그램 첫날이었다. 옆 반에서는 벤의 아내인 모니카 서머먼(29)이 강의하고 있었다. 모니카는 “처음에는 선생님 앞에서 실수할까봐 말 한마디도 아끼는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다가와 짧은 문장이지만 말을 걸거나 의사 표현을 한다”고 말했다. 고윤서(10)양은 “‘나만의 도시 만들기’ 활동처럼 아이들이랑 의견을 모아서 결정 내리는 수업이 많아 즐거웠고, 선생님도 재미있게 잘 도와주셔서 좋았다”고 했다.

허현정 옥수초등학교 교사는 “영어만으로 이뤄지는 수업이라 아이들이 어려워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게임 등 재미있는 활동이 많아 다행”이라며 “4학년은 해마다 2박 3일 영어캠프를 가는데, 금호글로벌체험센터가 새로 생겨 올해 처음 등하교 방식으로 하고 있다. 숙박하는 영어캠프는 야간 생활지도가 부담스러운 데 견줘, 등하교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가까운 곳에 생겨 반갑다”고 말했다.

모니카(두번째 줄 왼쪽 둘째)·벤(맨 뒷줄 오른쪽 끝) 부부는 금호글로벌체험센터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다. 성동구 제공

아시아를 여행하며 국제 경험을 쌓고 싶었던 미국인 부부 모니카와 벤은 2014년 성동구 용답동에 있는 성동글로벌영어하우스에 둥지를 틀고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모니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세계언어 교육학을 전공했고, 벤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고대 언어학을 전공했다. 성동글로벌영어하우스는 2013년 2월 개관한 성동구청 직영 영어교육시설로 외국인 강사 부부가 거주하며 성동구의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3주짜리 미국식 홈스테이 프로그램 등 다양한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곳이다.

지난 6월 금호글로벌체험센터가 문을 열기 전, 벤과 모니카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다양한 영어 프로그램과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보트 경주도 두 사람이 기획하고 물받이 등 필요한 교재는 미국에서 구입처를 찾아내 시작한 것이다.

성동글로벌영어하우스가 영어에 집중했다면 금호글로벌체험센터는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 글로벌 미팅, 중등 영어토론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곳이다. 스페인어 과정은, 영어로 간단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스페인 요리와 가우디의 미술기법인 모자이크까지 체험하는 것인데, 스페인어에 능숙한 모니카가 맡고 있다. 글로벌 미팅은 고등부 동아리 활동으로 한국 문화와 서양 문화를 조사·발표하면서 문화를 교류하는 프로그램이고, 중등 영어토론은 다양한 토론 기법을 활용해 정치·경제·문화 등의 주제로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금호글로벌체험센터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무척 즐겁다는 모니카와 벤은 2년 전 성동글로벌영어하우스에서 태어난 아들 에이브럼이 이곳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고 한국 생활을 즐기며 잘 자라주길 바란다. “우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어를 몰라 버스를 타거나 음식을 주문하면서 어린아이 같은 실수를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정이 넘치는 한국인들이 도와줘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요. 이제 우리가 아이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고 격려하겠습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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