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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작업할 수 있는 삶이 예술가로서는 최고”

서울문화재단 지원 청년 예술가 강보름·김나희·오천석·황휘씨

등록 : 2017-10-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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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활동 청년들 돈 걱정 덜어주려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 시작

1050여명에게 200만~3500만원씩

“위축된 예술적 상상력 펼 수 있게 돼”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가 지원작가로 선정된 강보름(맨 왼쪽부터)·황휘·오천석·김나희씨가 지난 17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만나 청년 예술가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빵 없어도 살 수 없다.”

우리나라 청년 예술가들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어려운 현실’을 함께 보여주는 말이다. 적잖은 청년들이 ‘빵’으로 대변되는 안락함을 버리고 ‘예술혼’이 이끄는 고단한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들은 아파하고, 때로는 그 무게를 감당 못 해 쓰러지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청년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그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빵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선사한다. 이런 점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청년 예술가들을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하는 이유다.


서울문화재단의 ‘청년 예술인 창작지원사업’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올해 총 75억원 규모로 1050여명의 청년 예술가들에게 200만원에서 3500만원까지 지원한다. 생활비가 아닌 예술창작 관련 비용으로만 쓰게 돼 있지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저축해 예술작업을 준비하는 청년 예술가들에게는 단비 같은 것이리라.

올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청년 예술가 중에서 공연예술 부문의 강보름(27)씨와 시각예술 분야의 김나희(27)·오천석(26)·황휘(26)씨를 지난 17일 동대문구 서울문화재단에서 만나봤다.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술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예술은 ‘거부할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강보름씨는 2010년 국어 교사의 꿈을 안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2014년 교생실습까지 모두 마쳤지만, 강씨는 결국 교직이 아닌 연극무대로 삶의 방향을 잡았다. “신입생 때 학내 연극동아리에 취미로 가입”한 것이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그에게 ‘연극을 계속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됐다.

2011년 함께 대학에 들어간 오천석( 언론정보과 졸)씨와 황휘(조소과 졸)씨와 2010년 입학한 김나희(언론정보과 졸)씨도 대학에서 ‘예술’에 눈뜬 경우다. 오씨는 “2013년부터 학교 앞 조그마한 카바레를 빌려서 파티를 여는 등 스스로 행사를 꾸리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공연기획의 매력에 빠졌다. 김씨도 전공과 관련이 적은 사진 등 시각매체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두 사람은 2016년 조소과인데도 음악작업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황씨와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콜렉티브(예술가 집단)인 ‘업체’(eobchae)를 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작품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은 변함없이 팍팍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은 할 수 있지만 작업할 때 창의적 생각이 제한되고 소극적으로 된다.”(김나희) 불안정한 생활이 청년들의 예술적 상상력마저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희 세대 작가들은 이를 ‘예산 특정적 예술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거기에 예산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생활비를 제외하고 투자해 만들어진 예산이 먼저 있고 거기에 맞춰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오천석)

청년 예술가들은 ‘청년 예술인 창작지원사업’이 이렇게 쪼그라든 예술적 상상력을 다시 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강보름씨는 지원금 1300만원으로 지난 9월 초 ‘홍대 포스트극장’에서 연극 ‘레디메이드 인생’을 무대에 올렸다. 1934년에 발표된 채만식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강씨는 “지난 3월 학내에서 같은 연극을 300만~400만원으로 만들었지만, 더 큰 돈으로 실제 전문 연극인들이 참여하는 공연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강씨는 “이전에는 지원심사 인터뷰 등에서 비전공자라는 점을 질문받았으나, 이젠 당당히 연출 경력을 얘기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오는 12월1~15일 영등포구 문래동 ‘공간 사일삼’에서 ‘(故)이괴롬 풀 에디션’전을 여는 오천석씨도 기대감이 크다. 오씨는 이 전시에서 “고통 많은 현대인 이괴롬씨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오씨가 글을 쓰고, 김씨가 프로그래밍을 하고, 황씨가 미술을 맡은 전시는 브이알(VR, 가상현실) 등 새로운 영상기술을 예술적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김씨는 “지원금으로 브이알 등에 들어가는 예산을 제대로 쓸 수 있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말한다.

좀더 큰 공연을 연출하고 얻은 자신감은 이 젊은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소박한 꿈’을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 소박한 꿈은 바로 ‘내일도 작품을 계속하는 것’이다.

“작품을 한 번 하고 마는 이는 예술가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지원을 계기로 저 자신이 다음 작품에 대한 동력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동료들도 많이 만나겠죠.”(강보름)

“꼭 성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일도 작업을 계속하는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작업을 끊이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삶이 예술가로서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김나희)

그들이 ‘내일의 꿈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빵만으로 살지는 않는’ 사회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청년 예술가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높고, 그것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려고”(김나희) 하는 존재들인 탓이다. 그들이 던지는 신선한, 때로는 불편한 문제의식들은 우리에게 ‘빵보다 더한 가치’를 늘 환기해줄 것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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