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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로 깨진 신뢰, 회복 첫단추는 ‘속죄’

이성 친구 만나 아내와 갈등 겪는 중년 남성 “정상 생활…”

등록 : 2017-10-26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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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의심엔 부부관계 조정 욕구

한국 남편들 이런 하소연 외면

잘못 진지하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부부 상담으로 효과적 대화도 필요

Q55살 남성입니다. 아내와의 갈등 문제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모임을 하는 과정에서 이성 친구와 식사하고 차 마시고 노래방 가게 된 것을 아내가 알게 되면서, 아내가 저를 심각하게 의심을 하는 상태로,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내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안을 주며 저 자신도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늘푸른


A이성 동창과 늘푸른님의 관계를 아내가 의심하고 있군요. 늘푸른님이 보내주신 사연이 짧아 제가 상황을 정확히 아는 데 한계가 있긴 합니다. 늘푸른님이 이성 친구와 단둘이서 식사하고 노래방까지 갔다는 건지, 그 친구에게 진짜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낀 건지, 다시 말해 이성 동창과의 일을 당신 스스로 외도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늘푸른님의 경우는 아닐 수 있지만 어쨌든 이 기회를 빌려 외도와 관련한 부부 문제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혹시 아내의 의심이 습관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일이 있기 전의 일상적인 부부 관계는 어땠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내의 의심이 예전에도 이유 없이 반복되었다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많은 경우 결혼 생활에 대한 평소의 불만족이 남편의 외도를 계기로 표면화됩니다. 남편의 애정에 만성화된 갈증을 느꼈던 여성이라면 한번 불 지펴진 의심이 좀처럼 꺼지지 않을 겁니다. 배우자에게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분노로 바뀌어 ‘나에겐 한 번도 주지 않았던 친절을 누군가에게 베풀었단 말이지?’ 하는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의 의심은 배신감과 분노가 그 뿌리일 수 있습니다.

‘아내가 심각하게 의심한다’고 하셨는데 아마 당신에 대한 아내의 불신과 채근, 적의에 찬 태도를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아내가 당신과 비슷한 나이라면 갱년기 증후군을 의심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 시기의 감정은 불안정하고, 특히 이제까지 묻어놓았던 부정적 감정과 생각이 드러나는 때니까요.

이유야 어찌 됐든 아내의 의심과 분노에는 부부 관계를 전면적으로 조정하고 싶다는 암묵적인 요구와 바람이 담겨 있을 겁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부부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말이지요. 어쩌면 이제까지 받지 못한 사랑을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상대가 뭔가를 원할 때 상대 배우자는 대부분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상대의 요구가 결국 자신을 질식시키고 자유를 빼앗아갈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대화도 시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남편들은 아내의 감정적 하소연을 철저히 외면합니다. 그런 태도가 아내를 더욱 감정적으로 만드는데도 말이지요.

늘푸른님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아내와 그에 대해 대화하는 편이었습니까? 특히 이성 친구와 있었던 일에 대해 아내에게 진실하게 설명하고, 아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습니까? 나는 결백하다며, 무조건 당신의 의심이 잘못됐다는 말만 반복한 건 아닙니까? 반대로 내가 무조건 잘못했으니 이제 그만하자며 아내의 말문을 막은 건 아닌가요?

존 가트맨 박사는 부부 관계와 부모·자녀 관계를 연구하고 상담하는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외도 문제로 갈등하는 부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특히 기혼 남녀가 이성 친구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것이 아무리 순수한 감정일지라도 부부간 배신의 싹이 될 수 있음에 주목합니다.

즉, 이성 친구가 생기면 부부간에 중요한 비밀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배우자의 부정적인 측면을 이성 친구와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또 중요한 부부 문제를 이성 친구에게 털어놓음으로써 부부가 주체가 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외도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부부 문제를 모두 배우자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요. 만약 외도 사실을 배우자가 알게 돼 불화하게 된다면, 상대에 대한 미움은 더욱 확고해지고 결별은 자명해질 겁니다.

가트맨 박사는 자신의 책 <부부 감정치유>에서 외도로 신뢰가 깨진 부부가 그것을 회복하는 과정의 첫번째 단계를 ‘속죄’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지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이는 태도가 새로운 신뢰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꾸준한 행동의 변화도 상대 배우자의 의심을 줄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요구하지 않아도 하루 일정표와 통화 기록, 신용카드 영수증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늘푸른님이 우선 아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성들의 경우엔 대화에서 빠르게 해결책을 내놓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저 이해하려는 태도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불안하게 하는지, 왜 화가 풀리지 않는지 말입니다. 물론 그녀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를 수 있으며 횡설수설할 수 있습니다만, 논리의 부족을 지적하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그렇게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그 과정이 아주 힘드실 겁니다. 억울하기도 하고, 나도 불만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 얘기도 참지 말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경우 일시적으로는 언성이 높아질 수 있을 텐데, 아내가 당신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부부 상담을 받아 좀더 효과적으로 대화해볼 수도 있습니다. 미숙한 대화로 인한 상처를 줄이면서 상대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말이지요.

고통을 단번에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이참에 당신의 결혼 생활을 점검하고, 노년기에 들어서기 전에 부부 관계를 재조정하는 기회로 삼기를 권합니다.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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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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