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살이 29년째 은발의 센터장 “다문화 축제가 보람”

사람& 성북글로벌빌리지센터 명예 센터장 8년째 맞는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 한국외대 독일어과 교수

등록 : 2017-09-28 11:38 수정 : 2017-09-2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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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맥주축제 사회 유창한 한국말로

그가 기획한 크리스마스 마켓 축제

이제 2만명 참가하는 축제로 발전

구한말 활동 독일인 전기 출간 예정

지난 23일 성북동 성북글로벌빌리지센터 ‘추석맞이 송편 만들기’ 행사에서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 명예 센터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송편을 빚으며 얘기하고 있다. 성북구 제공

“한국말 완전 잘해!”

지난 9일 성북천 분수마루에서 열린 축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2017 성북 세계맥주축제’의 사회를 본 은발 외국인의 우리말 실력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유창한 우리말로 개막식을 진행한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61·Hans-Alexander Kneider)는 성북동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명예 동장직을 맡았고, 한국외국어대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수다. 내년이면 그의 한국살이는 30년을 맞는다.


성북구는 대표적인 외국인 거주지다. 대사관저가 42곳 있고, 7곳의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이 산다. 성북구에 사는 외국인은 대략 10만명 정도다. 서울시는 자치구와 함께 외국인들의 서울살이를 돕기 위해 현재 글로벌빌리지센터 7곳을 운영하고 있다. 성북 센터는 2009년 문을 열었다.

크나이더는 성북글로벌빌리지센터에서 명예 센터장으로 8년째 활동하고 있다. “한국 문화를 잘 알고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며 명예 센터장으로 추천했어요. 학교 일이 바쁘긴 했지만 성북동 주민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맡았죠.”

그는 명예 센터장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일군 가장 큰 성과로 다문화를 즐기는 축제를 꼽았다. 2010년 12월 독일 전통 크리스마스 마켓 축제를 시작했다. 6개의 텐트로 조촐하게 시작한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져 이제는 참가국도 20여 곳이나 되고 2만여명이 참가하는 ‘유러피안 크리스마스 마켓 축제’로 풍성해졌다. “크리스마스 마켓 축제에 애정을 많이 쏟았어요. 이제는 제 자식처럼 자랑스러워요.”

크리스마스 마켓 축제가 유명해지면서 서울시나 다른 구에서도 함께 열자고 제안해왔지만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동네 주민을 위한 지역 행사로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다른 구에서 문의해오면 그곳 동네 특성을 살린 축제를 만들라고 조언한단다.

크나이더는 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문화를 알리고 소통하는 기회를 만드는 데도 애써왔다. 2012년에 새로운 축제를 기획해서 6월에는 라틴아메리카 축제, 10월에는 이슬람문화 축제를, 이듬해 9월에는 아프리카 축제를 열었다. 라틴아메리카 축제는 지금까지 해마다 열리고 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마당을 계속 만들어왔어요.”

축제를 기획할 때 여러 대사관의 협조를 끌어내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지역에서 다문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는 대로 구청 공무원들과 만나 다문화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맞춰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정치나 종교 문제가 결부되면 가장 힘들다. 생각지도 못한 강한 반발과 갈등이 생기곤 한다. “문화 교류 행사라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도 못했어요. 몇 차례 경험하면서 미리미리 잘 살피려 합니다.”

크나이더는 우연한 계기로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독일 보훔대에서 한국학, 동아시아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에 한국 정부 장학생으로 뽑혀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해 3년 뒤 박사과정을 마쳤다. 원래 그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한국외대에서 강의를 한 학기만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선뜻 나섰다.

한 학기를 끝낸 뒤 학교에선 강의를 계속해달라고 했다. 취업비자를 3개월 넘게 걸려 어렵게 받기도 했기에, 한 학기만 더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이어졌다. 이젠 한국외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외국인 교수란다. “후회는 물론 전혀 없지요. 제게는 큰 행운이었어요.”

한국학 학자로서 연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처음 한국학을 공부할 때부터 그는 구한말 한국에서 활동한 독일인들에 관심을 가졌다. 2009년 연구 결과물을 독일어로 출간했다. 1년 만에 2쇄를 찍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한국어판은 한·독 수교 130주년을 맞아, 2013년 <독일인의 발자취를 따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오는 10월께는 새 책을 선보일 예정이다. “대한제국 애국가를 만든 프란츠 에케르트의 전기입니다. 한국에 살았던 그의 후손들의 삶도 생생하게 담았어요.”

4년 뒤 그는 정년퇴직한다. 그러면 글로벌빌리지센터의 활동을 좀 더 많이 해보려 한다. “아시아, 호주 등 아직 못 해본 나라의 축제도 열어보고 다양한 문화행사도 더 만들어가고 싶어요.”

크나이더는 다가오는 긴 추석 연휴에는 한가한 서울을 즐길 거라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맡은 프로젝트가 많아서 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휴일에도 일할 거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30년 한국살이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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