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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기억 키움의 최전선을 뛰는 자치구들

서초·강서구 등 자치구의 눈에 띄는 치매예방 활동

등록 : 2017-09-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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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모델하우스, 치매안심하우스

화장실 변기 앞 지지대 눈길

치매예방사 홀몸어르신들 예방교육

10%대 낮은 검진율 높이기는 과제

서초구 기억키움센터의 박시현 작업치료사(왼쪽)가 지난 8월 센터 안의 ‘치매안심하우스’에 들러 기억력 저하 판정을 받은 박미자(69) 할머니에게 변기 앞 지지대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어르신들은 배에 힘이 없기 때문에 일 보고 일어서다 쓰러질 수 있어요. 그때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지지대입니다.”

서초구 염곡동의 복합문화시설인 ‘내곡 느티나무 쉼터’ 4층에 마련된 기억키움센터(서초치매지원센터). 지난달 14일 이곳 작업치료사인 박시현씨가 치매환자 맞춤형 모델하우스로 설계된 ‘치매안심하우스’ 화장실 변기 앞의 가로 지지대 기능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박씨의 설명은 블라인드를 쳐놓은 화장실 거울로 이어졌다. “치매가 진행된 어르신들은 자기 얼굴이 비친 거울을 보고 무서워할 수 있기 때문에 거울에 블라인드를 쳐놓았어요.”

치매안심하우스는 고령화 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가정에서 치매환자나 치매 고위험 어르신을 돌보느라 겪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서초구가 설계 의뢰해 지난 7월17일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전등 스위치와 전기 콘센트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벽지와 구별되는 색으로 붙였으며, 수납장에는 어떤 물건이 있는지 알기 쉽게 그림과 글자로 표시된 표지(스티커)가 붙어 있다. 2016년 서울시 주민제안사업으로 선정돼, 시비 총 1억원의 예산을 들여 81.55㎡(약 24.6평) 규모로 만들었다.


서초구의 치매예방 활동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도 두드러진다. 서초구의 치매예방기관인 기억키움센터에서는 월~금요일 오후 1시30분부터 60살 이상 지역 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작업치료와 운동치료, 공예교실, 레크리에이션 교실을 비롯해 기억 키움 일기장 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초 기억력 저하가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은 박미자(69)씨는 “1년 넘게 기억키움센터에 다니면서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다”고 또박또박 말한다. 센터에서 셔틀버스까지 운행해 자신이 살고 있는 잠원동에서도 다니기가 편하다는 박씨는 “센터에 오전 2시간, 오후 3시간씩 머물면서 각종 (기억력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요즘은 태권도까지 배운다”고 말했다.

“치매에 걸리면 자기 자신도 몰라보고 무엇보다 자식들한테 부담되잖아요. 그래서 치매 올까봐 제일 걱정됩니다. 할아버지도 같이 센터에 다니는 게 소원이에요.(웃음)”

혈당측정기·혈압계 등 각종 측정기구를 모아놓은 바구니, 큼직한 번호판이 달린 전화기, 날마다 약 먹는 것을 잊지 않도록 요일·끼니별로 나눠진 약통…. 치매안심하우스에 설치돼 있는 것들이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홀몸어르신을 방 밖으로” 치매예방사 활동

강서구의 경우 치매예방사 활동도 눈에 띈다. 강서구는 지난 7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의 하나로 구내 20개 동주민센터에 배치된 방문간호사 23명을 ‘찾아가는 치매예방사’로 임명해 암보다 더 무섭다는 치매예방 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치매에 취약한 혼자 사는 65살 이상의 홀몸 어르신을 대상으로 적극 치매검진을 실시하고, 이 가운데 치매환자나 고위험군으로 판정된 어르신들에게는 6주에 걸쳐 치매예방 운동법과 계산문제 풀이 등을 했다. 치매환자나 고위험 홀몸 어르신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주거지와 가까운 동주민센터에서 교육하는 게 특징이다.

지난 8월16일 오전 9시께 화곡3동주민센터 3층. 주민센터 도서관 한쪽 빈방에서 동네 60~80대 할머니 3명이 배수연 강서구보건소 간호사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치매예방 체조를 하고 있었다. 보조기구가 없으면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박영옥(62)씨는 한발 서고 멈춰 서는 동작을 힘들어하면서도 잘 버티는 모습이었다.

“우울증 증상이 있어서 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서 아침에 잘 못 일어나지만 6주일 동안 열심히 참석했어요. 다른 어머니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사람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어요.”

강서구 치매지원센터에서도 이달부터 11월까지 경로당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음식테라피, 치매선도학교도 눈길

은평구 치매지원센터는 음식으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푸드아트테라피’를 시행해 눈길을 끈다. 푸드아트테라피란 어르신들에게 친숙한 음식을 활용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연주의 치료법이다. 지난 6월8일 첫회를 시작으로 주 1회, 평소 폐쇄적이고 우울감이 높은 어르신 10명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이들은 단순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직접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펼쳐 소외감이나 심리적·사회적 위축 증상을 사라지도록 했다.

학교와 도서관을 이용해 치매예방 활동을 펼치는 자치구도 늘고 있다. 관악구는 영락유헬스고등학교와 조원도서관을 치매극복 선도단체로 지난 7월 지정했다. 영락유헬스고교에서는 교직원과 전교생이 치매교육에 참석한 뒤 ‘치매파트너-천만시민 기억친구’에 가입해 지역사회에서 치매환자와 그 가족을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는 동반자로 활동할 것을 선서했다. 구로구에서도 지난 8월 덕일전자공고를 치매극복 선도학교로 지정했다.

10%대에 머문 검진율…치매 용어 변경 필요

서울 자치구가 치매예방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그 손길이 취약계층에 골고루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게 일선 치매관리센터 관계자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치매예방은 무엇보다 검진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이에 맞는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중요한데, 65살 이상 어르신의 검진율이 10%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박진향 동작보건소 건강관리과 주무관은 “치매 검진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은둔형 칩거를 하는 어르신들이 여전히 많다. 문제는 이런 분들이 치매환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치매 치료도 중요하지만 치매예방을 위한 검진 활동에도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게 박 주무관의 의견이다.

한편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치매’라는 표현을 다른 단어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치매라는 단어는 ‘어리석다’ ‘미치광이’라는 뜻의 ‘치’와, 역시 ‘어리석다’는 뜻이 있는 ‘매’로 구성돼 있어 사람들에게 부정적 인식이 강함에도, 여전히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 홍콩, 타이완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치매를 ‘인지증’(일본) ‘실지증’(홍콩) ‘뇌퇴화증’(타이완)으로 바꿔 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지난 7월17일, 치매라는 용어를 ‘인지장애증’으로 변경하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결과가 주목된다. 서초구는 이미 치매지원센터 대신 기억키움센터라는 순화된 용어를 쓰고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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