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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물다섯인 딸에게 어릴 때 보았던 그림책 중에서 기억나는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딸은 한 3초쯤 고민했을까? ‘이상한 화요일’이라는 제목을 들려주었다. 참고로 이 책은 칼데콧 메달을 받은 미국의 그림책 작가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책으로, 등장인물의 대사나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문장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저 그림만 있는 그림책이다.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왜 이 책이 떠올랐는지 물었더니, 개구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림이 시간이 오래 흘렀어도 기억에 남아 있더라고 한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읽었던 책을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글보다 그림이 직관적이다. 여러 문장 설명보다 한 컷의 이미지가 더 오래 남는 것. 어쩌면 그림의 힘이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가을야구가 시작됐지만 경기가 없어 한산한 고척돔. 지하 1층에 ‘서울아트책보고’가 마련돼 있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고척스카이돔. 하지만 야구경기장을 가려는 게 아니다. 오늘 내가 고척돔을 방문한 목적은 책을 보기 위함 이다. 그냥 책이 아니라 아트북이다. 아트북이란 말이 실은 조금 생소했다. 예술을 다룬 책이라는 걸까 아니면 책 자체가 예술이라 는 걸까. 누구의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니고 문자로 설명된 정의를 찾아본 것도 아니지만, 열람실을 돌아보며 그저 내 나름대로 아트북이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모든 걸 이미지로 말하는 책. 그것을 보는 독자는 말없이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이미지로 저장할 수 있는 책. 이 모든 게 아트북이 아닐까.
열람실 내 부는 자유롭게 책을 꺼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서울아트책보고’는 국내 최초로 조성된 아트북 기반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열람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도서관과 다른 점은 소장한 도서가 대부분 예술과 관련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사진, 건축,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서적을 비치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당연히 그림책도 포함된다.
‘서울아트책보고’ 내부 모습.
물론 대형서점에서도 예술과 관련된 책을 구할 수 있지만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무엇보다 대부분 비닐로 싸놓아 내부를 보기 어렵다는 점이 항상 아쉬웠다. 표지만 보고는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기도 어렵 거니와, 그렇다고 가격이 만만치 않은 아트북을 내용도 안 보고 척척 살 수는 없으니 포기하고 돌아섰던 적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서울아트책보고’는 아트북 에 관한 한 그 문턱을 없앴다는 점에서 한 없이 반갑다. 이곳에 비치된 1만9천여 권의 아트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보물 같은 곳인가.
그런 점에서 ‘서울아트책보고’는 아트북 에 관한 한 그 문턱을 없앴다는 점에서 한 없이 반갑다. 이곳에 비치된 1만9천여 권의 아트북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보물 같은 곳인가.
사서에게 부탁하면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담긴 단테의 ‘신곡’을 직접 펼쳐볼 수 있다.
열람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단테 의 ‘신곡’이었다. ‘서울아트책보고’가 소장한 ‘신곡’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삽화 를 전문 판화가들이 목판에 옮긴 목판화 (Wood Engraving) 본이다. 참고로, 도레는 문학작품의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이며, 단테의 ‘신곡’ 뿐 아니라 ‘돈키호테’ 등에도 삽화를 그린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신곡’을 후대 독자에게 시각적으로 심어준 원형이 됐다.
이 책이 열람실 안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이유는 큼지막한 책의 크기와 함부로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보관 방법 때문일 것이다. 대개는 이런 책 앞에 ‘만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기 마련인데, ‘서울아트책보고’에서는 사서에게 부탁해 열어볼 수 있다는 안내문 이 쓰여 있다. 안내대로 부탁했더니 마치 보물 상자를 열어주듯 투명 보관함을 열어주고 실리콘 장갑까지 나눠준다. 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책장을 넘겨 가며 보는데 이미 그 자체로 너무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 됐다.
조선 후기 특히 정조 때 유행했던 책가도 (冊架圖)라는 정물화 양식이 있다. 주로 책장을 중심으로 책과 문방사우, 꽃병이나 도자기, 과일 등 다양한 사물을 배열해 그린 그림의 종류인데, 지금도 책가도를 그리는 정물 화가가 많이 있어 가끔 전시회가 열리면 다니곤 한다.
책이 귀했던 시절 학문을 사랑하는 이라면 책이 그득한 모습을 그린 이 그림 하나만 집에 걸려 있어도 안 먹어도 배부른 마음이 절로 들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돈이 생기면 책가도 한 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소망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다. 과연 그런 날이 올 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서울아트책보고’ 열람실을 그득 메운 예술의 향연만으로도 거대한 책가도 한 편을 감상한 듯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에게 온전히 쉴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진 다면, 이곳을 꼭 다시 방문해 하루를 충분히 예술과 책 사이에서 뒹굴고 싶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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