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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계절이 바뀌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을 여유롭게 앞둔 10월은 집 안 구석구석 쌓인 물품과 마음의 공간을 스스로 ‘새로고침’ 하기 가장 적절한 때다.
주거 공간의 정리수납 효과는 물리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직결된다. 어질러진 방 한 칸에서 일상의 통제권을 되찾고 마음의 여백을 회복한 세 사람의 사례를 통해 무기력을 깨뜨리는 정리의 가치를 들여다본다.
콩알봉사단 단원들이 정리수납 봉사에 열중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콩알봉사단 정리수납 봉사가 끝나 깔끔해진 방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옷장 속 쓰레기 대신 안락함을…강남구 3인 가구의 ‘새로고침’
강남구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모녀와 외할머니 등 3인 기초생활수급가구의 집은 거동이 불편함에도 바닥에 물건이 잔뜩 쌓여 이동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가족들은 나름대로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며 위생을 개선하려 노력했지만 변화는 뚜렷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옷장 안에 자꾸 물건을 넣어두는 습관이 있었고, 어머니는 가방에 대한 강박적 집착이 있어 가방이 입지 않는 옷과 뒤섞여 방치돼 있었다. 도움을 요청받고 방문한 한국정리수납협회 소속 정리 전문가로 구성된 콩알봉사단의 접근법은 섬세했다. 세 가족의 영역을 나눠 옷장을 재배치하는 한편, 할머니가 자꾸 쓰레기를 버리던 옷장 공간에는 푹신한 이불을 수납해 할머니만의 안락한 장소로 유도했다. 행동을 억지로 교정하는 대신 환경을 바꿔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건강을 위해 유통기한이 지난 주방 식품을 비우고, 거동이 불편한 세 사람을 위해 바닥의 짐을 수납장 안으로 집어넣자 마비됐던 동선이 트였다. 쾌적해진 집을 보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할머니와 가족들의 모습은 정리수납이 단순한 청소가 아닌 삶의 ‘새로고침’임을 증명했다.
닫힌 문을 열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다…ㄴ씨 사례 성동구 50대 남성 1인 가구 ㄴ씨의 집은 사회적 고립 속에 세상과 단절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방과 주방, 발코니까지 버리지 않은 비닐봉지와 배달용기, 플라스틱 밀폐용기, 장기간 쌓여 있던 옷과 이불, 작업 공구, 낚시도구, 악기, 엘피(LP) 레코드판 등이 겹겹이 방치돼 발 디딜 틈도 없고 이동 동선마저 꽉 막혀 있었다. 지역 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주거환경 개선에 나선 콩알봉사단은 무작정 버리기보다는 ‘분류와 재배치’ 방식으로 접근했다. 모든 물건을 꺼내 낚시도구·공구·악기·옷·이불 등 용도별로 분류한 뒤, 베란다에 스피드랙(앵글)을 설치하고 행거를 재배치해 안전한 걸음길을 확보했다. 막혔던 길목이 뚫리고 주거 공간이 쾌적해지자, ㄴ씨 역시 서서히 마음의 경계를 풀고 고립된 동굴에서 밖으로 발을 내딛는 삶의 여백을 얻게 됐다. 20년 제사 음식의 짐을 덜어내다…70대 주부 ㄷ씨의 ‘비움과 해방’ 영등포구 70대 주부 ㄷ씨의 올해 추석 풍경은 지난 20년과는 완전히 달랐다. ㄷ씨는 경상도 시댁의 제사를 물려받아 명절마다 큰 쟁반에 수북하게 전을 부치고 거대한 제상을 차려왔다. 변화의 시작은 추석을 앞두고 영등포구가 지난 9월 주관한 ‘주방 정리수납 특강’이었다. “살 때 딱 필요한 것만 사라”는 강사의 조언에 크게 느낀 바 있어 ㄷ씨는 우선 오래된 식재료를 냉장고에서 과감히 비웠다. 나아가 장보기 전 남편과 사전에 상의해 한 마리에 2만~3만원에 이르는 통대구와 통닭 등 관성적으로 올리던 제수용품을 과감히 제외했다. 북어포와 수육 등 꼭 필요한 음식 위주로 준비한 결과, 과거 30만원을 훌쩍 넘던 제사 비용이 절반 수준인 16만원대로 크게 줄었다. 또한 전의 양을 절반 이하로 줄이자, 명절마다 전 부치기를 맡아 고생하던 자녀들과 온 가족이 “일이 줄어 무척 좋다”며 대환영했다. 가장 행복했던 건 ㄷ씨였다. 그는 “평생 짊어져온 살림과 가사노동의 무게를 덜어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행복했다”며 “다음 명절에도 이번 추석처럼 음식을 줄여서 준비할 예정”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외부의 손길을 빌린 ㄱ씨와 ㄴ씨, 단 한 번 특강으로 20년 묵은 살림 습관을 깨뜨린 ㄷ씨까지 계기와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마주한 변화의 본질은 하나다. 바로 물리적 공간을 비움으로써 잃어버렸던 삶의 주도권과 마음의 여백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귀가 행복’과 심리적 안정…연구 논문이 증명한 정리의 힘 정리수납 효과는 과연 단순한 기분에 그칠까. 한국정리수납협회 정경자 회장과 신호상 교수의 연구(2024년)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 지역 엘에이치(LH) 임대주택 245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리수납의 여러 요인 중 ‘공간 확보’만이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퇴근 후 느껴지는 ‘귀가 행복’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시켰다. 즉, 정리가 잘된 집일수록 빨리 돌아와 쉬고 싶어지는 반면, 어질러지고 방치된 경우 거주자는 집을 단지 ‘잠만 자는 동굴’로 회피하며 밖으로 겉도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40대 미만 청년층은 평소 물건의 제자리를 정하지 않고 정리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높았으며, 체계적인 공간 정돈이 이뤄졌을 때 공간 효율성과 귀가 행복감이 향상되는 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주거환경 개선 1개월 후 추적 조사에서도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유지됐다. 조사 대상의 46%가 10평 이하의 협소한 환경에 거주하고 있어, 방치된 물건이 거주자의 낙상 사고나 위생 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정리수납은 실질적인 ‘주거 복지 정책’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왜 정리가 어려울까?…심리적 장벽과 ‘시스템의 지혜’ 정리를 하고도 며칠 뒤 다시 어질러지는 까닭은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건의 제자리와 수납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30평대 아파트 전체를 제대로 정리하려면 전문가 8~10명이 온종일 투입돼 모든 물건을 꺼내고 수납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할 만큼 고된 작업이다. 물건을 단순 배출하는 것보다 남길 물건을 적재적소에 수납하는 시스템 구축에 훨씬 많은 공이 들어간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미니 인터뷰 | "하루 15분, 서랍 한 칸의 여백이 삶을 바꿉니다" 국내 1호 정리수납 전문가로 꼽히는 정경 자 한국정리수납협회 회장에게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공간의 주도권을 되찾는 ‘실전 정리법’을 물었다.
닫힌 문을 열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다…ㄴ씨 사례 성동구 50대 남성 1인 가구 ㄴ씨의 집은 사회적 고립 속에 세상과 단절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방과 주방, 발코니까지 버리지 않은 비닐봉지와 배달용기, 플라스틱 밀폐용기, 장기간 쌓여 있던 옷과 이불, 작업 공구, 낚시도구, 악기, 엘피(LP) 레코드판 등이 겹겹이 방치돼 발 디딜 틈도 없고 이동 동선마저 꽉 막혀 있었다. 지역 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주거환경 개선에 나선 콩알봉사단은 무작정 버리기보다는 ‘분류와 재배치’ 방식으로 접근했다. 모든 물건을 꺼내 낚시도구·공구·악기·옷·이불 등 용도별로 분류한 뒤, 베란다에 스피드랙(앵글)을 설치하고 행거를 재배치해 안전한 걸음길을 확보했다. 막혔던 길목이 뚫리고 주거 공간이 쾌적해지자, ㄴ씨 역시 서서히 마음의 경계를 풀고 고립된 동굴에서 밖으로 발을 내딛는 삶의 여백을 얻게 됐다. 20년 제사 음식의 짐을 덜어내다…70대 주부 ㄷ씨의 ‘비움과 해방’ 영등포구 70대 주부 ㄷ씨의 올해 추석 풍경은 지난 20년과는 완전히 달랐다. ㄷ씨는 경상도 시댁의 제사를 물려받아 명절마다 큰 쟁반에 수북하게 전을 부치고 거대한 제상을 차려왔다. 변화의 시작은 추석을 앞두고 영등포구가 지난 9월 주관한 ‘주방 정리수납 특강’이었다. “살 때 딱 필요한 것만 사라”는 강사의 조언에 크게 느낀 바 있어 ㄷ씨는 우선 오래된 식재료를 냉장고에서 과감히 비웠다. 나아가 장보기 전 남편과 사전에 상의해 한 마리에 2만~3만원에 이르는 통대구와 통닭 등 관성적으로 올리던 제수용품을 과감히 제외했다. 북어포와 수육 등 꼭 필요한 음식 위주로 준비한 결과, 과거 30만원을 훌쩍 넘던 제사 비용이 절반 수준인 16만원대로 크게 줄었다. 또한 전의 양을 절반 이하로 줄이자, 명절마다 전 부치기를 맡아 고생하던 자녀들과 온 가족이 “일이 줄어 무척 좋다”며 대환영했다. 가장 행복했던 건 ㄷ씨였다. 그는 “평생 짊어져온 살림과 가사노동의 무게를 덜어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행복했다”며 “다음 명절에도 이번 추석처럼 음식을 줄여서 준비할 예정”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외부의 손길을 빌린 ㄱ씨와 ㄴ씨, 단 한 번 특강으로 20년 묵은 살림 습관을 깨뜨린 ㄷ씨까지 계기와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마주한 변화의 본질은 하나다. 바로 물리적 공간을 비움으로써 잃어버렸던 삶의 주도권과 마음의 여백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귀가 행복’과 심리적 안정…연구 논문이 증명한 정리의 힘 정리수납 효과는 과연 단순한 기분에 그칠까. 한국정리수납협회 정경자 회장과 신호상 교수의 연구(2024년)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 지역 엘에이치(LH) 임대주택 245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리수납의 여러 요인 중 ‘공간 확보’만이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퇴근 후 느껴지는 ‘귀가 행복’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시켰다. 즉, 정리가 잘된 집일수록 빨리 돌아와 쉬고 싶어지는 반면, 어질러지고 방치된 경우 거주자는 집을 단지 ‘잠만 자는 동굴’로 회피하며 밖으로 겉도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40대 미만 청년층은 평소 물건의 제자리를 정하지 않고 정리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높았으며, 체계적인 공간 정돈이 이뤄졌을 때 공간 효율성과 귀가 행복감이 향상되는 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주거환경 개선 1개월 후 추적 조사에서도 이러한 긍정적 효과가 유지됐다. 조사 대상의 46%가 10평 이하의 협소한 환경에 거주하고 있어, 방치된 물건이 거주자의 낙상 사고나 위생 문제로 직결되는 만큼 정리수납은 실질적인 ‘주거 복지 정책’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왜 정리가 어려울까?…심리적 장벽과 ‘시스템의 지혜’ 정리를 하고도 며칠 뒤 다시 어질러지는 까닭은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건의 제자리와 수납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30평대 아파트 전체를 제대로 정리하려면 전문가 8~10명이 온종일 투입돼 모든 물건을 꺼내고 수납 시스템을 새로 짜야 할 만큼 고된 작업이다. 물건을 단순 배출하는 것보다 남길 물건을 적재적소에 수납하는 시스템 구축에 훨씬 많은 공이 들어간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미니 인터뷰 | "하루 15분, 서랍 한 칸의 여백이 삶을 바꿉니다" 국내 1호 정리수납 전문가로 꼽히는 정경 자 한국정리수납협회 회장에게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공간의 주도권을 되찾는 ‘실전 정리법’을 물었다.
정경자 한국정리수납협회 회장
정리해야 하는 건 알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가 많습니다.
“정리를 ‘티끌 하나 없이 각 잡힌 집’을 만 드는 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정리의 본질은 남에게 보여주는 과시가 아니라, 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집 전체를 한 번에 뒤엎으려는 조급함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거창한 대청소 대신 ‘하루 15 분, 서랍 한 칸’만 스스로 정리해내는 작은 성취가 다음 공간으로 나아갈 단단한 힘을 만듭니다.”
정리를 쉽게 할 수 있는 원칙을 꼽아주신다면요.
“첫째, 우선 ‘양말 서랍 한 칸’부터 시작해 안의 물건을 밖으로 전부 꺼내 눈으로 확인 합니다. 둘째, 같은 종류끼리 모으기입니다. 흩어져 있던 볼펜이나 약을 한데 모아야 중 복과 결핍이 보입니다. 셋째, ‘지금의 내 삶’을 기준으로 선별하기입니다. ‘최근 1년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버릴 물건을 분류하고, 망설여지는 물건은 ‘보류 상자’에 담아 날짜를 적어뒀다 3개월 뒤 다시 판단합니다. 추억의 물건은 대표 하나만 남기거나 사진으로 기록해 보관합니다. 넷째, 쓰기 편하게 수납하기입니다. 자주 쓰는 물건은 꺼내기 편리하도록 어깨와 무릎 사이의 ‘골든존’에 배치하고, 옷 등 섬유제품은 한눈에 보이도록 세워 수납합니다. 바구니는 물건을 다 솎아낸 뒤 치수를 재어 마지막에 장만해야 낭비가 없습니다. 다섯 째, 하루 5분 제자리 찾기입니다. 외출 후 가방 이나 열쇠를 둘 자리를 지정하는 5분 루틴만으로도 일상의 분주함이 사라집니다.”
가족들이 함께 정리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대원칙은 ‘함께 사는 이에 대한 존중’입니다. 내 눈에는 잡동사니로 보여도 다른 사람에게는 추억이 깃든 물건일 수 있습니다. 상의 없이 처분하거나 정리를 못한다고 다그치지 말고, 묻고 기다리며 본인이 선택하도록 도울 때 비로소 정리는 공간을 넘어 선 치유가 됩니다. 쓸모를 다한 물건을 놓아주는 일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나를 위한 따뜻한 여백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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