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한산성에 오르며

인문학자 김경집의 서울인문학 40년 논쟁 끝내고 6개월 만에 쌓은 성곽…선제적 준비가 나라를 지킨다

등록 : 2026-09-24 09:33 수정 : 2026-09-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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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성곽길과 멀리 보이는 백운대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전쟁터로 변해가는 세계 변화
담대하고 치밀하게 읽어내라

날씨가 제법 선선한 게 적어도 아침저녁으로는 가을 정취를 느끼게 된다. 올여름은 너무 더워서 거의 걸렀지만 이제는 아침이나 점심 식사 후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오른다. 평창동으로 이사해 누리는 호사이자 홍복이다. 평창동에서 대성문까지 올랐다가 형제봉 능선으로 돌아 내려오면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평창(平倉)이라는 지명은 북한산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북한산성을 지키기 위한 식량창고를 마련했던 곳에서 유래한 지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한산성은 숙종 37년(1711) 불과 6개월 만에 쌓았다.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도성에 가까운 배후 산성이 절실함을 깨달은 숙종의 결단 덕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주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치욕을 갚아야 한다고 입으로 떠들었지 실제로 크게 바뀐 건 없었다. 축성 논의 자체도 40여 년 걸렸다. 그러니까 숙종 재위 기간 내내 이 문제로 씨름했던 셈이다. 막대한 비용과 노역에 대한 부담뿐 아니라 남한산성이 있는데 굳이 더 큰 규모의 산성을 둘 까닭이 있느냐 는 신료들의 반대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청과 약조를 맺으면서 그들과 상의하고 허가받지 않은 어떠한 축성도 불가하다는 조항도 걸림돌이었다. 결국 숙종은 결단을 내렸고 불과 6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 청에는 왜구의 준동에 대비하라는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길게 끌면 문제가 될 수 있을지 몰라 최대한 빠르게 축성했다.

성곽 길이 12.7㎞에 내부 면적도 여의도 1.5배 정도 되는 규모의 산성이다. 그 안에 행궁도 지었다. 그것은 유사시 왕이 기거하며 국사를 다루고 가장 적극적인 방어 전략을 시행할 수 있는 상징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건축물이다. 숙종은 어린 영조를 데리고 직접 이 산성을 시찰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 조선의 처지는 처참했다. 도성의 모든 궁과 궐은 불타 사라져 피란에서 돌아온 임금이 기거할 마땅한 곳도 없었다. 뒷갈망에도 버거웠다. 그런 위기를 딛고 재중흥의 틀을 마련한 게 바로 숙종이었다.

우리는 숙종을 ‘장희빈’과 같은 드라마를 통해 마치 여색에 탐닉한 군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숙종 재위 기간은 바로 조선 부흥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는 행동해야 할 때는 단호하고 명료하게 결정하고 움직였다. 북한산성을 쌓을 때도 많은 반대와 오랜 기간의 논쟁을 끝내 마감하고 전광석화로 모든 과정을 수행토록 한 것은 조선 역사 전체를 훑어봐도 찾기 어렵다.

나는 북한산성에 오를 때마다 숙종을 떠올린다. 결코 쉬운 역사(役事)였을 리 없다.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고 노역할 인력을 차출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준비 없이 방관하다 일이 터 졌을 때 속수무책이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과 단호함이 있었기에 그런 난관을 물리치고 끝내 성을 쌓을 수 있었고 이는 숙종의 뛰어난 정치력과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재정의 틀을 마련하고 내실을 쌓아온 그의 인내심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였다.

다행히 그 이후 중국으로부터 도성을 빼앗기는 침략은 없었기에 북한산성이 방어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결국 무용지물이었다는 비판은 허락 될 일이 아니다. 준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사람과 국가는 꼴사나운 현실을 맞닥뜨리지 않는다.

세상이 시끄럽다. 곳곳에 이상 징후가 드러난다. 거기에 기후위기도 현실이 돼 극한 더위도 임계점을 오르내렸다.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경계선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그런 위기에 대응하기는커녕 여러 곳에서 전쟁으로 애꿎은 귀한 생명이 죽고 다친다. 예전에는 그런 전쟁이 국지적이라 나와 는 상관없는 것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모두가 얽혀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당장 유가는 천정부지이고 세계 경제는 어찌 될지 가늠조차 어렵다.

인공지능(AI)의 공포도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여러 가지로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 하지 않다가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내 마당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을 뿐 이미 세상은 여기저기 다양한 형태의 전쟁터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 해야 할까.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세계적인 변화에 더 큰 충격파를 피할 수 없다. 당장 북한의 핵 위협이 그렇고 미국과의 관계도 불안정하다. 단지 도널드 트럼프라는 변종 정치인의 변덕과 지나친 자기애 때문이라고만 하기에 현실은 냉정하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내란으로 무너질 뻔한 민주주의를 더 견고하게 세운 회복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대한민국이다. 내란 잔당과 잔재도 다 뽑아내면서 여러 현실적 위기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구축해야 한다. 거기에는 여도 야도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여전히 오불관언이거나 방관자이거나 무관심하거나 상대를 궤멸시킬 기회만 엿보는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평창에 군량미를 비축하고 여차하면 산성으로 옮겨 오랫동안 적에 맞서 싸워 나라 를 지키려 했던 그 시절의 긴박함을 상기해 본다. 북한산에 오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군량미 한 말이라도 내가 지고 올라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게 단지 조선시대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 현명하게 더 담대하게 더 치밀하게 세상을 읽어내야 할 일이다. 북한산 성 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그래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김경집(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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