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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1. Not Done, mixed media on paper, 54×79 ㎝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만큼 시시한 얘기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다. 옛날 옛적에, 온 국민에게 못났다고 도리어 사랑받았던 삼 형제가 살았…, 아니, 있었다.
윗옷만 걸친 채 성내고 울고 웃는 얼굴을 한 더벅머리 삼 형제, ‘못난이’ 인형 말이다. 내가 삼 남매라서 그랬을까? 그 인형을 볼 때면 누가 무얼 했기에 저 사달이 났는지 궁금했다.
한 녀석이 먼저 성을 낸 통에 다른 녀석이 울고, 그 꼴을 본 남은 녀석이 웃은 건지, 아니면 누군가 약을 올려 울음이 터졌고, 그걸 중재하다 뿔이 난 건지…. 한 집 건너 한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지사방에 조르르 앉아 엉엉 까르르, 아 쫌! 하던 삼 형제가 문득 떠오른 건, 얼마 전 지하철에서였다.
역촌역에 갈 일이 있어 용산에서 출발했는데, 출근 시간인 탓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예전에는 오히려 운동하는 셈 치며 일부러 서서 간 적도 있었건만 요즘은 두리번두리번 빈 좌석을 찾곤 한다. 그러다보니 교통약자석은 항시 붐비고, 임산부석은 대개 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도 임산부석만 비어 있었지만, 덥석 가서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자꾸 눈길만 줬는데, 내내 빈 걸 보게 되자 ‘내가 그간 낸 세금이 얼만데, 오면 비켜주면 되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가까스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참는 사이에 성난 마음이 뛰어왔다. 그러더니 한의원에서 딱 한 번 들은 ‘환자분은 타고난 배터리가 작아요’라는 말을 심술보에서 꺼내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착실하게 비워둔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하곤 이리저리 길을 뚫어 먼저 일어날 것 같은 얼굴을 골라 앞에 섰다.
내 눈썰미가 좋았는지 합정역에서 그이가 내리기에 ‘내 자리’ 빼앗길세라 냉큼 앉았다. 승객은 점점 늘어 지하철은 더 복잡해졌다. 무심한 얼굴로 치고 치이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했다. 점잔을 빼도 모자란 나이인지라 나는 아니고 내 배꼽만 웃었는데, 그걸 보며 문득,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게 늘어가는 지병만이 아니구나, 깨달았다.
셋은커녕 끝도 안 보이게 줄지어 앉아 있는 이 못난이들이 나랑 지낸 세월만도 몇 년인지, 이쯤 되면 용케 있는 티를 안 내고 얌전히 있어 준 게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못난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장 큰 놈은 벽을 향해 앉아 있다. 제 딴에는 다른 녀석들과 나는 다르다는 무언의 시위이리라. 돌려 앉혀 말을 걸었다. 저는 이제 샘 부리지 않는단다. 자기는 다 컸다나. 그렇다면 얼마 전에 ‘청년’에게만 기회를 주는 공모전들을 보고 ‘흥칫뿡’ 거린 건 네가 아니었더란 말이냐 물으니, 나 들으라는 듯 “백세 인생이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구시렁거리며 다시 벽을 향한다. 옆의 부스스한 못난이들이 내가 얘를 어떻게 하나, 말똥말똥 지켜보니 도리가 없다. 오늘 그래, 나랑 끝장을 보자, 다시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오랜만에 관심받은 게 기쁜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아이가 웃는다.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는 뭘 사달라는 게 아니란다. 그냥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싶고, 싶고, 싶고…. 그 말에 얼마 전 동네 고등학생이 청한 농구 대결에 진심으로 나섰다가 한 달째 절뚝거리며 걷는 친구가 스쳤다. 마음은 저 앞을 달리는데 몸은 몇 걸음 뒤에서 뒤뚱거리더라고. 그러고 보니 이 덩치만 큰 녀석을 뭉뚱그려 ‘호기심’이라 이름을 붙여준 내 탓이 크다. 누구냐, 넌…. 장발장은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끝에 죄수번호 24601을 대고 자유를 찾았는데, 너는 나중에 뭐라고 하며 뛰쳐나가려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오랜만에 관심받은 게 기쁜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아이가 웃는다.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는 뭘 사달라는 게 아니란다. 그냥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싶고, 싶고, 싶고…. 그 말에 얼마 전 동네 고등학생이 청한 농구 대결에 진심으로 나섰다가 한 달째 절뚝거리며 걷는 친구가 스쳤다. 마음은 저 앞을 달리는데 몸은 몇 걸음 뒤에서 뒤뚱거리더라고. 그러고 보니 이 덩치만 큰 녀석을 뭉뚱그려 ‘호기심’이라 이름을 붙여준 내 탓이 크다. 누구냐, 넌…. 장발장은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끝에 죄수번호 24601을 대고 자유를 찾았는데, 너는 나중에 뭐라고 하며 뛰쳐나가려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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