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못난이 삼형제 외전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9-24 02:03 수정 : 2026-09-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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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21. Not Done, mixed media on paper, 54×79 ㎝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만큼 시시한 얘기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지만, 오늘은 어쩔 수가 없다. 옛날 옛적에, 온 국민에게 못났다고 도리어 사랑받았던 삼 형제가 살았…, 아니, 있었다.

윗옷만 걸친 채 성내고 울고 웃는 얼굴을 한 더벅머리 삼 형제, ‘못난이’ 인형 말이다. 내가 삼 남매라서 그랬을까? 그 인형을 볼 때면 누가 무얼 했기에 저 사달이 났는지 궁금했다.

한 녀석이 먼저 성을 낸 통에 다른 녀석이 울고, 그 꼴을 본 남은 녀석이 웃은 건지, 아니면 누군가 약을 올려 울음이 터졌고, 그걸 중재하다 뿔이 난 건지…. 한 집 건너 한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산지사방에 조르르 앉아 엉엉 까르르, 아 쫌! 하던 삼 형제가 문득 떠오른 건, 얼마 전 지하철에서였다.

역촌역에 갈 일이 있어 용산에서 출발했는데, 출근 시간인 탓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예전에는 오히려 운동하는 셈 치며 일부러 서서 간 적도 있었건만 요즘은 두리번두리번 빈 좌석을 찾곤 한다. 그러다보니 교통약자석은 항시 붐비고, 임산부석은 대개 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도 임산부석만 비어 있었지만, 덥석 가서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자꾸 눈길만 줬는데, 내내 빈 걸 보게 되자 ‘내가 그간 낸 세금이 얼만데, 오면 비켜주면 되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가까스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참는 사이에 성난 마음이 뛰어왔다. 그러더니 한의원에서 딱 한 번 들은 ‘환자분은 타고난 배터리가 작아요’라는 말을 심술보에서 꺼내어 보여주는 게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착실하게 비워둔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하곤 이리저리 길을 뚫어 먼저 일어날 것 같은 얼굴을 골라 앞에 섰다.

내 눈썰미가 좋았는지 합정역에서 그이가 내리기에 ‘내 자리’ 빼앗길세라 냉큼 앉았다. 승객은 점점 늘어 지하철은 더 복잡해졌다. 무심한 얼굴로 치고 치이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좋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했다. 점잔을 빼도 모자란 나이인지라 나는 아니고 내 배꼽만 웃었는데, 그걸 보며 문득,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게 늘어가는 지병만이 아니구나, 깨달았다.

셋은커녕 끝도 안 보이게 줄지어 앉아 있는 이 못난이들이 나랑 지낸 세월만도 몇 년인지, 이쯤 되면 용케 있는 티를 안 내고 얌전히 있어 준 게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못난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장 큰 놈은 벽을 향해 앉아 있다. 제 딴에는 다른 녀석들과 나는 다르다는 무언의 시위이리라. 돌려 앉혀 말을 걸었다. 저는 이제 샘 부리지 않는단다. 자기는 다 컸다나. 그렇다면 얼마 전에 ‘청년’에게만 기회를 주는 공모전들을 보고 ‘흥칫뿡’ 거린 건 네가 아니었더란 말이냐 물으니, 나 들으라는 듯 “백세 인생이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구시렁거리며 다시 벽을 향한다. 옆의 부스스한 못난이들이 내가 얘를 어떻게 하나, 말똥말똥 지켜보니 도리가 없다. 오늘 그래, 나랑 끝장을 보자, 다시 물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오랜만에 관심받은 게 기쁜지 발그레해진 얼굴로 아이가 웃는다.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는 뭘 사달라는 게 아니란다. 그냥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싶고, 싶고, 싶고…. 그 말에 얼마 전 동네 고등학생이 청한 농구 대결에 진심으로 나섰다가 한 달째 절뚝거리며 걷는 친구가 스쳤다. 마음은 저 앞을 달리는데 몸은 몇 걸음 뒤에서 뒤뚱거리더라고. 그러고 보니 이 덩치만 큰 녀석을 뭉뚱그려 ‘호기심’이라 이름을 붙여준 내 탓이 크다. 누구냐, 넌…. 장발장은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던 끝에 죄수번호 24601을 대고 자유를 찾았는데, 너는 나중에 뭐라고 하며 뛰쳐나가려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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