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무소음, 뚝!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8-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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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1002. Offering, Mixed media, layered tactile pieces on canvas, 60×73㎝(캔버스 내 텍스트는 Eunoia Review 게재(2026) 영시 Breath02)

언제부터인지 한강이며 여의도 등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추는 무소음 파티가 열린단다. 요가, 러닝, 야외 영화 등 행사도 무소음으로 한다는데, 주변에 소음 피해를 주지 않고 즐긴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장면도 떠올랐다. 소음으로 사방을 채우는 거리 시위. 요즘 매주 화상으로 만나 조언을 구하는 유럽의 큐레이터는 서울에서 봤던 시위 광경이 좀 무서웠다나. 그 이야기에 최루탄이 내 스무 살 일상으로 들어왔던 시절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5천만이 아닌 4천만이고, ‘백만 학우’가 있던 시절, 1996년 일이다.

방학 중인 8월이라 나는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 당시 미디어에서는 ‘사태’라고 불렀고, 후에 ‘항쟁’이라 칭한 이들도 있었으며, 누구는 앞에 단체명을, 누구는 대학명을 붙였다. 애초의 구호는 어디 가고 학교 건물에 수일간 갇혔던 학생 수천 명은 ‘안전 귀가 보장’을 놓고 협상하다 끌려 나와 연행됐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도 거기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교문은 공권력에, 학교 건물은 학생들에게 뜯겨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학교를 청소하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했는데, 그때 주워 치운 돌들이 자기 말만 옳다고 언성 높이는 사람 말에는 일단 귀를 닫고 보는 ‘경계인’의 씨앗으로 내 안에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한다. 그 탓에 역설적으로 내 말만 하는 사람이 된 성싶기도 하고….

어느새 30년이 지나 1996년 8월 연세대 사건 아카이브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어난, 일어나지 않은’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경험의 폭과 깊이, 감정의 층위가 너무 달라서였는지, 서로 지레짐작하면 했지, 친구들과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당시 기억을 담은 글을 첫 책에 싣는 데도 고민했고, 책을 내는 것과는 다른 별도의 용기가 필요했다. 전시회 소식에 조용했던 단체대화방이 활기를 띠자 대학교수인 선배 하나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자기 전공이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의 세상이 각자 방식으로 크고 작게 엎어지거나 뒤틀린 ‘사건’이었는데, 왜 그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을까? 못한 걸까, 하기 싫었던 걸까, 두려웠던 걸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자’, ‘해리 포터’ 속 볼드모트라도 되는 양 말이다.

긴가민가한 내 기억을 확인하고 싶어 한달음에 간 전시회에서 대자보와 날적이, 모자와 집기, 집에 가고 싶다는 짠한 메모 사진들에 마음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학교 깊숙한 안쪽 건물에서 열린 학술대회장에 갔다가 돌아나가면서는 기억은 감정이나 감각에 딸려 있다고들 하고, 감정에는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 주는 게 좋다고도 하지만 이런 감정에는 답이 없지, 생각이 스쳤다.


여느 때보다 유난히 많아 뵈는 펼침막을 무심히 읽으며 긴 백양로를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도주한 범인을 수배한다는 둥, 우리 동구가 해냈다는 둥, 졸업을 축하하는 청춘들의 엉뚱 발랄한 펼침막이 줄줄이 있는 게 아닌가. ‘으이그, 그게 그렇게 좋아?’ 마음속 말을 슬쩍 흘려보내니 더 기뻐하고 있을 내 또래 부모 모습이 눈에 선했다. 중앙도서관 길목을 지나며 동기들에게 보여주려고 학술 심포지엄 펼침막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그 위에 걸린 동아리 펼침막에 눈길이 갔다.

두세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가 없는 것이 ‘록 스피릿’에 취해서 쓴 게 분명하렷다. ‘말하고 싶은, 말할 수 없는’이라는 제목의 학술대회 펼침막이 아래 걸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들이 ‘불량서클괴뢰단체비인가종교집단릴스핫게(후략)’라나. 설마하니 동아리랑 행사 주최 쪽이 서로 짰을 리는 없을 텐데…. 으응?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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