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시-자치구, ‘정비사업’ 놓고 힘겨루기

초점& “지역 실정 잘 알아 대응 속도 빨라” vs “서울은 하나의 생활권, 인프라 전반 고려해야”

등록 : 2026-08-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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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연립·다세대주택 등 시내 주택가 모습. 연합뉴스

소규모 정비사업
통합관리냐 자율정비냐
권한 범위 두고 대립
책임과 기준 먼저 세워야

서울시 25명 구청장 사이에서 오랜 기간 누적된 ‘정비구역 지정 권한 이양' 요구가 마침내 수면 위로 분출됐다. 동작구(구청장 류삼영)가 지난 12일 500가구 미만 소규모 정비사업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서울시에서 자치구로 이양해줄 것을 공식 제안하면서 서울의 주택공급 행정체계를 둘러싼 논의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제안의 핵심은 500가구 미만 소규모 정비사업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고 현재 자치구가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비구역의 경미한 변경 범위도 기존 10% 이내에서 20% 미만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에서 정비구역 지정은 사업의 출발점이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돼야 조합 설립과 사업시행인가 등 후속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현재 서울에서는 이 절차를 서울시가 맡고 있다. 자치구가 문제로 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역 주민들이 정비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자치구가 지역 여건과 주민 의견을 검토한 뒤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지역까지 서울시의 심의와 결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행정절차가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자치구들의 주장이다.

특히 소규모 정비사업은 지역 특성에 따라 사업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노후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가 있는가 하면 역세권을 중심으로 개발이 필요한 지역도 있다.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 여건도 지역마다 다르다. 자치구들은 이런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기관이 구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권한이 이양되면 행정절차를 줄이고 사업기간을 단축하는 동시에 지역 현장에 대한 행정 대응력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동작구의 제안에 서울시구청장협의회도 이 문제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이에 지난 23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성숙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10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의 주택공급 확대 방안 및 부동산 세제 개편안 논의가 있었다. 이날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협의회 후 국회 브리핑에서 서울시 구청장들의 요구를 종합해 500가구 이하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권한을 기초단체장에게 부여하는 제도 개선 법안을 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는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정비계획은 개별 건물 인허가와 다르며 서울 자체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개발할 때 주변에 미치는 상하수도와 교통·이주 등 전반적인 인프라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주거정비과 관계자는 “이런 통합적인 관리가 필요한 사항을 자치구에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 규모에 관계없이 정비사업 10곳 중 9곳은 이미 서울시의 결정을 거쳐 자치구 인허가 단계로 넘어가 있다. 서울시 단계에 막혀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6·3 지방선거 뒤 종로 창신동, 서대문 유진상가 등 (구청장이 바뀐 뒤)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검토’를 이유로 지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취재가 진행되던 중 서울시는 지난 24일 이런 내용을 담은 공식 입장문을 내놨다. 입장문에서는 ‘서울시 정비사업 중 500세대 미만 도시정비사업장은 193곳이고, 이 중 구역지정 단계에 있는 곳은 31곳(16%)뿐으로 대부분 이미 자치구 인허가 과정에 올라 순항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주택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2021년 신속통합기획을 도입했다.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에 서울시가 초기 단계부터 계획 수립과 행정절차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정비계획 수립과 정비구역 지정에 장기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5년에서 2년6개월 수준으로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소규모 정비사업을 위한 별도 정책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모아주택과 모아타운이다. 모아주택은 대규모 재개발이 어려운 노후 저층주거지에서 여러 필지를 모아 공동 개발하는 방식이다. 모아타운은 모아주택을 블록 단위로 묶어 주거환경과 기반시설을 함께 개선하는 개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모아타운은 현재 24개 자치구 총 137곳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모아통합기획'을 도입해 후보지 선정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기존 6년에서 4년6개월 수준으로 대폭 단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도 자치구들이 권한 이양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행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현장과 서울시 사이에 남아 있는 거리 때문이다. 소규모 정비사업은 수백 가구 안팎의 주민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대상으로 한다. 사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서울 전체 도시공간의 구조를 바꾸는 대규모 개발과 같은 수준의 심의 체계가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반대로 서울시 입장에서는 소규모 사업이라고 해서 도시계획적 영향이 작다고만 볼 수도 없다. 여러 지역에서 작은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면 교통과 학교 그리고 공원과 기반시설에 미치는 영향이 누적될 수 있다. 자치구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서울 전체의 도시계획 체계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500가구 미만 사업의 권한을 자치구로 넘기자는 논의는 단순한 권한 이양보다 책임과 기준을 함께 정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500가구 미만 정비사업의 권한 이양 요구는 바로 이런 서울의 도시개발 행정체계를 다시 설계하자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서울시가 그동안 추진해온 신속통합기획과 규제 완화가 ‘서울시 내부의 행정 속도전’이었다면 이제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사이의 권한 배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500가구 미만’이라는 기준이 서울 주택정책의 새로운 분권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속도와 도시계획의 일관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향후 서울의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 추진 방식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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