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두 팔 벌려 하늘을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7-16 11:34

크게 작게

Life18. See my band, mixed media on paper, 48×70㎝

재작년 늦봄, 육교를 건너던 중에 보게 된 아담한 규모의 운동회 광경에 깜짝 놀랐다. ‘서울형 작은학교’가 있다는 기사 등을 보며 인구 감소가 심각하구나, 생각만 했지, 그런 변화를 피부로 느낀 적은 없었다.

우린 아이가 없어 운동회에 갈 일이 없으니 그런 거 같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며 화제는 자연스레 부모들의 시합으로 옮겨갔다. 그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이자 남편이 예상 밖의 말을 했다. 운동회가 아이가 겪는 최초의 경쟁이라서 그런 거 아니겠냐고. ‘최초’라는 단어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 한국인 최초처럼 특정 집단 속에서 무언가를 해낸 성과와 결합해 축하를 겸한 훈장처럼 사용되기 마련인데, 아이의 난생처음 경험에 사용한 게 재밌어서 “아하, 비겁하게 대리전?” 농담을 하곤 깔깔 웃었다.

하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니 어쩌면 최선의 노력을 하고도 패배해 쓰린 가슴을 움켜쥐는 경험을 백신 주사 맞듯이 처음엔 간접적으로 겪는 게 나을 수도 있을 듯했다. 실패에 대해 남 탓을 할 수 있을 때의 정체 모를 안도감은 덤이고 말이다.

그런 백신을 맞은 아이들은 각자 몫의 사회적 역할을 증명하며 자라서 어른이 되고, 세상에 자리 잡는다.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경쟁이 있기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완장’을 찬다. 직급이나 직위의 경우, 손에 잡히는 명함의 형태로 남기도 하고….

운동회 광경을 봤던 그날을 기억한다. 직장을 완전히 접고 이십 년 넘게 동경했던 글과 그림을 향해 나선 시기였다. 세상과 나의 접점을 알려주던 자랑스러운 내 완장, 명함이 사라지고 나니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책 한 권 출간하지 않았으면서 작가라 자칭하기도 그렇고, 그렇다면 무얼 하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용기 내어 ‘글 쓰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명함을 만들었지만 오랜만에 나간 모임에 품고 가놓고는 명함을 내미는 순간까지도 망설였다. 그때 깨달았다. “이런 걸 하려는 사람입니다”와 “이런 걸 했던 사람입니다” 사이에는 폭이 아주 넓은 강이 흐른다는 걸. 그리고 내가 배를 대고 싶은 강변에 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지난 2년여 동안 나는 글과 그림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강변에 가까스로 배를 댔다. 그러고 나니 예전의 나처럼 흔들리는 배에 오른 사람들이 완장 뗀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며 연락해 왔다. 어떻게 강변에 배를 댔는지 궁금해하는 이, 멀찍이서 내 강변을 지켜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나를 보곤 강변이 너무 넓다며 걱정해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던 중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페리를 탔을 때였다.

수십㎞의 보스포루스 해협 한쪽에는 아시아, 다른 한편에는 유럽지구가 있다. 다양한 문화유산 건축물이 자연과 함께 종횡으로 늘어서 짙푸른 바다와 한눈에 들어오는 게 장관이다. 해협의 폭은 내가 본 어떤 강과도 비교할 바가 아닌데, 한참을 앉아 사방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삶이란 강이 아니라 해협인지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떠나왔고 이제는 멀어 보이는, 그러다 아예 시야에서 사라질 삶의 풍경과 저 멀리서 다가오는 풍경들…. 배가 어디에 잠시 정박할지 알 수 없지만, 꼭 내릴 필요는 없으리라. 내린다면 또 그곳에서 어울려 복작대다가 다시 페리에 오르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해협을 따라 이리저리 누비다보면 언젠가는 흑해로 나가는 출구를 만날 테다. 보이지 않고 가본 적도 없는 새로운 세상의 설레는 입구 말이다.

기억나진 않지만, 나 또한 최초의 경쟁은 부모님의 대리전으로 치렀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최후의 경쟁은 나로서 하고프다. 드넓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한껏 벌리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