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프스 프스!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7-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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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valik Blink, Mixed Media on Korean Paper, 54.5×78.8㎝

요즘은 번역 애플리케이션이 국경 넘은 소통을 한결 수월하게 해주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에 관한 한 나는 운이 억세게 좋았던 성싶다. 다시 못할 대화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니 대놓고 자랑을 하나 하면, 엄마 말씀에 세상에나, 내가 글을 혼자 익혔단다. 약국에 앉아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 한 분이, “어머, 이렇게 어린 애가 글을 읽네요?”라기에 “에이, 얘가 무슨 글을 읽어요” 했다나. 영어는 또 어떤가. 온 가족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살 때 국제학교에 4년 반을 다니며 순식간에 익혔단다. 영국식으로 처음 배운 뒤 한국에 돌아와서는 미국식 영어를 하며 정체불명의 발음이 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직장 생활 내내 ‘영어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 살 위 언니에게 한글 가르치는 걸 어깨너머로 말똥말똥 듣고 있더라는 거며,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4년을 바치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프랑스어에 대한 기억은 제멋대로 지워버리곤 내 언어 재능이 문득문득 어찌나 아깝던지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워야지 했다. 일본어는 1년 반, 중국어는 심지어 베이징에서 5개월을 지내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재능은 무슨…, 지금껏 두 언어 다 입에 남은 문장이라곤 달랑 “영수증 주세요!”인걸….

사정이 이러니 요 몇 주, 언어에 대한 내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는 중이다. 여러 핑계를 모아 튀르키예의 한적한 해변 도시 아이발리크에서 한 달가량을 지내는데, 가만 보니 튀르키예어가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조금씩 있는 게 아닌가. 영어는 부모님 덕분이라 얘기했지만, 실은 아무 값도 치르지 않은 건 아니다. 대학 시절 2년 동안 새벽잠 아껴 가며 어학당에 다녔으니 말이다. 튀르키예어도 그렇게 노력하면 될지도 몰라, 생각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짧은 시간 나름의 노력 끝에 제스처만 늘었다. 그래도 뿌듯한데, 특히 마음에 드는 건 눈을 마주치면 말없이 미소 지으며 눈을 끔뻑하는 것.

아이발리크 음악 영재 학원 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페의 매니저와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치며 처음에는 왜 저러나 했다. 찾아보니 친근함의 표현이라고. 내가 눈을 감는 찰나의 순간만큼이라도 나는 당신만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짐작하며 나도 그이에게 끔뻑 화답했다.

눈화장 때문인지 어딘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그이는 알고 보니 고양이를 아끼기로 유명한 튀르키예 사람 사이에서도 고양이 사랑이 유별나게 지대한 이였다. 아기 고양이 때부터 정성을 들인 고양이들이 카페에 여럿인데, 집고양이나 마찬가지라나. 고양이를 피하려 노력하던 첫 며칠이 지나니 고양이들은 점점 대범해졌다. 다리며 등에 비비는 건 소심한 축에 들고, 무릎에 숫제 올라앉아 얼굴을 들이미는 녀석까지 생겼다. 서울에서는 효창공원이든 한강공원이든 벤치에 드러누워 있는 고양이가 있긴 해도 대부분은 사람과 눈 마주치면 긴장부터 하는데 말이다. 한국에도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랑꾼이 있지만 그런 행동에 눈살 찌푸리는 사람도 많다는 이야기를 번역 앱을 사용해 알려주니 튀르키예 사람들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발리크에서 보는 바다는 망망대해에 수평선을 펼치는 대신 섬을 산처럼 올린 드넓은 대지 같았다. 그런 바다와 수시로 다가와 코를 들이밀던 고양이들을 뒤로하고 지금은 이스탄불에 와 있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니 눈 깜빡할 새 지나간 시간, 만났던 사람들만큼이나 고양이들도 자꾸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뜻밖에 발견한 언어 재능이 하나 있구나 싶다. 바로 고양이 언어. 돌아가면 온 해변과 동네를 제집처럼 누리던 아이발리크 고양이와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배운 대로 서울 고양이에게도 꼭 말을 걸어볼 테다. 끔뻑, 프스 프스!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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