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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을 운영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유통혁신팀 최덕훈 차장이 전국 각지에서 화물차 출발 전 접수한 전자 송품장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종이 대신 ‘전자 송품장’ 도입 운영
‘입차·하역 스케줄링’도 가능해져
1.1m 단위 디지털 지도 구축으로
자동주행로봇 등 활용 기반도 준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은 하루 6천~8천t의 농수산물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가 경매를 거쳐 전국으로 유통되는 대한민국 먹거리의 심장이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오랜 고질병이 있었다. 바로 농수산물을 싣고 온 트럭들의 ‘기약 없는 대기’와 ‘깜깜이 물류’였다. 가락시장을 운영 중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한 유통혁신팀이 들려준 가락시장의 과거 풍경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채소 경매가 일요일에는 저녁 6시 시작되는데 이르면 토요일 밤 11시부터 화물차가 와서 대기했습니다. 일요일 낮 12시만 돼도 하역장 앞엔 트럭 50~60대가 꽉 차서 오도 가도 못했죠.” 유통혁신팀 이성재 팀장은 트럭들이 장시간 시동을 켜둔 채 대기하며 발생하는 기름값과 매연, 농산물 신선도 저하 등 사회적 손실만 연간 수백억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가락시장은 조용하지만 크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물류’가 도입되면서 이 거대한 아날로그 시장이 최첨단 디지털 물류 기지로 극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어제 물량을 오늘에야 파악한다고?” 종이 송장 걷어내고 데이터로 수급 잡다 스마트 물류 도입 전 가락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오늘 당장 배추가 몇t이나 들어올 예정인지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산지에서 화물차에 실어 보낸 ‘종이 송품장'이 가락시장에 도착한 뒤에라야 물량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팀 최덕훈 차장은 “종이 송품장이 오더라도 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후 5시쯤 도매법인 직원이 출근해서 전산 입력을 시작해야 비로소 데이터가 집계됐다”며 “늦은 밤 경매가 끝난 다음날에야 ‘어제 물량이 이만큼 들어왔구나’ 하고 뒤늦게 아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이 ‘깜깜이’ 구조를 깬 것이 바로 ‘전자 송품장’이다. 산지에서 출발 전 생산자든 화물차 기사든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품목과 수량을 입력하면 가락시장에 들어오게 될 실시간 예약 물량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물량 정보는 포털을 통해 누구라도 볼 수 있게끔 공개돼 있다. 최 차장은 “산지의 수십 년 된 ‘감(암묵지)’에 의존하던 수급 예측을 데이터화해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물량 쏠림에 따른 가격 폭등락을 막고 국민의 밥상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기에 서툰 고령 농업인들을 위해서는 “배추 천 망 보낼게”라고 말만 하면 알아서 전자 송품장을 작성해주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기반 대화형 AI 접수 시스템도 향후 추진할 예정이다. “휴게소에서 쉬고 천천히 오세요”…AI가 순서대로 배정 전자 송품장으로 물량을 미리 파악하게 되자 화물차를 줄 세울 필요도 없어졌다. 공사는 15년간 이어져온 무작정 대기 관행을 없애고, 은행 대기표처럼 스마트폰으로 하역 순번을 알려주는 ‘입차·하역 스케줄링’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의 완성은 최신 ‘컴퓨터 비전(CV) AI’가 맡게 될 예정이다. 쇼핑몰 물류센터가 정형화된 체계를 갖춘 것과 달리 도매시장은 지게차, 전동차, 화물차가 뒤섞여 작업하는 ‘비정형적인' 상황이 너무 많아 일반 센서로는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에 40여 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20여 대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해 사람의 눈처럼 똑똑한 AI(YOLOv10)가 화물차와 지게차의 움직임을 분석하도록 한 뒤 빈자리가 생기면 AI가 부여된 순서에 따라 대기 트럭 기사의 앱으로 자동 호출한다. 이성재 팀장은 “과거엔 놀이기구에서 줄 서듯 앞차가 빠지면 한 칸씩 앞으로 가느라 화물차 기사들이 밥도 못 먹고 차 안에만 있어야 했다”며 “이제는 죽전 휴게소나 하남 만남의 광장 등 외곽에서 쉬다가, 앱 알림이 오면 시간에 맞춰 들어오면 된다. 예상 하역시간을 알 수 있게 돼 하루에 두 번 운송도 가능해져 기사들의 호응도 무척 높다”고 설명했다. 1.1m 단위로 쪼갠 미로 시장…내비게이션 켜고 횟집 찾는다 가락시장의 진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의도 절반 면적에 이르는 거대하고 복잡한 시장을 일반 시민과 상인들이 헤매지 않도록 시장 구석구석을 디지털 지도로 만드는 ‘공간정보시스템’(GIS)을 구축하고 있다. 이성재 팀장은 “넓은 시장에서 특정 층에 있는 점포나 팰릿 위치를 설명하는 건 매우 힘들다. 그래서 시장 전체 실내와 실외의 모든 시설물, 통로, 경계의 위경도 좌표를 측정해 디지털 지도를 만들고, 팰릿 하나 크기인 1.1×1.1m 격자로 쪼개 각각 고유 좌표(ID)를 부여하는 ‘로케이션 마스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정밀한 공간 데이터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등 외부 민간 지도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와 실시간으로 연동된다. 덕분에 이제 시민들은 내비게이션이나 지도 앱을 켜고 가락몰 안 수많은 점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환경은 건물 내부 특정 점포로의 실내 길 안내뿐만 아니라 무인운반차(AGV)나 자율주행로봇(AMR)이 돌아다니며 물건을 나르는 미래 자동화 물류의 핵심 기반이 될 예정이다. 가락시장의 ‘스마트 물류’ 혁신은 단순히 시스템 하나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전국 각지의 산지에서 소비자들의 식탁까지, 아날로그에 멈춰 있던 유통의 흐름을 첨단 AI와 데이터로 다시 쓰는 거대한 실험이다. 오늘도 가락시장의 새벽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기술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입차·하역 스케줄링’도 가능해져
1.1m 단위 디지털 지도 구축으로
자동주행로봇 등 활용 기반도 준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은 하루 6천~8천t의 농수산물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가 경매를 거쳐 전국으로 유통되는 대한민국 먹거리의 심장이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오랜 고질병이 있었다. 바로 농수산물을 싣고 온 트럭들의 ‘기약 없는 대기’와 ‘깜깜이 물류’였다. 가락시장을 운영 중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한 유통혁신팀이 들려준 가락시장의 과거 풍경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채소 경매가 일요일에는 저녁 6시 시작되는데 이르면 토요일 밤 11시부터 화물차가 와서 대기했습니다. 일요일 낮 12시만 돼도 하역장 앞엔 트럭 50~60대가 꽉 차서 오도 가도 못했죠.” 유통혁신팀 이성재 팀장은 트럭들이 장시간 시동을 켜둔 채 대기하며 발생하는 기름값과 매연, 농산물 신선도 저하 등 사회적 손실만 연간 수백억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가락시장은 조용하지만 크게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물류’가 도입되면서 이 거대한 아날로그 시장이 최첨단 디지털 물류 기지로 극적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어제 물량을 오늘에야 파악한다고?” 종이 송장 걷어내고 데이터로 수급 잡다 스마트 물류 도입 전 가락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오늘 당장 배추가 몇t이나 들어올 예정인지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산지에서 화물차에 실어 보낸 ‘종이 송품장'이 가락시장에 도착한 뒤에라야 물량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팀 최덕훈 차장은 “종이 송품장이 오더라도 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후 5시쯤 도매법인 직원이 출근해서 전산 입력을 시작해야 비로소 데이터가 집계됐다”며 “늦은 밤 경매가 끝난 다음날에야 ‘어제 물량이 이만큼 들어왔구나’ 하고 뒤늦게 아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이 ‘깜깜이’ 구조를 깬 것이 바로 ‘전자 송품장’이다. 산지에서 출발 전 생산자든 화물차 기사든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품목과 수량을 입력하면 가락시장에 들어오게 될 실시간 예약 물량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물량 정보는 포털을 통해 누구라도 볼 수 있게끔 공개돼 있다. 최 차장은 “산지의 수십 년 된 ‘감(암묵지)’에 의존하던 수급 예측을 데이터화해 투명하게 공유함으로써 물량 쏠림에 따른 가격 폭등락을 막고 국민의 밥상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기에 서툰 고령 농업인들을 위해서는 “배추 천 망 보낼게”라고 말만 하면 알아서 전자 송품장을 작성해주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기반 대화형 AI 접수 시스템도 향후 추진할 예정이다. “휴게소에서 쉬고 천천히 오세요”…AI가 순서대로 배정 전자 송품장으로 물량을 미리 파악하게 되자 화물차를 줄 세울 필요도 없어졌다. 공사는 15년간 이어져온 무작정 대기 관행을 없애고, 은행 대기표처럼 스마트폰으로 하역 순번을 알려주는 ‘입차·하역 스케줄링’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의 완성은 최신 ‘컴퓨터 비전(CV) AI’가 맡게 될 예정이다. 쇼핑몰 물류센터가 정형화된 체계를 갖춘 것과 달리 도매시장은 지게차, 전동차, 화물차가 뒤섞여 작업하는 ‘비정형적인' 상황이 너무 많아 일반 센서로는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에 40여 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20여 대의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설치해 사람의 눈처럼 똑똑한 AI(YOLOv10)가 화물차와 지게차의 움직임을 분석하도록 한 뒤 빈자리가 생기면 AI가 부여된 순서에 따라 대기 트럭 기사의 앱으로 자동 호출한다. 이성재 팀장은 “과거엔 놀이기구에서 줄 서듯 앞차가 빠지면 한 칸씩 앞으로 가느라 화물차 기사들이 밥도 못 먹고 차 안에만 있어야 했다”며 “이제는 죽전 휴게소나 하남 만남의 광장 등 외곽에서 쉬다가, 앱 알림이 오면 시간에 맞춰 들어오면 된다. 예상 하역시간을 알 수 있게 돼 하루에 두 번 운송도 가능해져 기사들의 호응도 무척 높다”고 설명했다. 1.1m 단위로 쪼갠 미로 시장…내비게이션 켜고 횟집 찾는다 가락시장의 진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의도 절반 면적에 이르는 거대하고 복잡한 시장을 일반 시민과 상인들이 헤매지 않도록 시장 구석구석을 디지털 지도로 만드는 ‘공간정보시스템’(GIS)을 구축하고 있다. 이성재 팀장은 “넓은 시장에서 특정 층에 있는 점포나 팰릿 위치를 설명하는 건 매우 힘들다. 그래서 시장 전체 실내와 실외의 모든 시설물, 통로, 경계의 위경도 좌표를 측정해 디지털 지도를 만들고, 팰릿 하나 크기인 1.1×1.1m 격자로 쪼개 각각 고유 좌표(ID)를 부여하는 ‘로케이션 마스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정밀한 공간 데이터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등 외부 민간 지도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와 실시간으로 연동된다. 덕분에 이제 시민들은 내비게이션이나 지도 앱을 켜고 가락몰 안 수많은 점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환경은 건물 내부 특정 점포로의 실내 길 안내뿐만 아니라 무인운반차(AGV)나 자율주행로봇(AMR)이 돌아다니며 물건을 나르는 미래 자동화 물류의 핵심 기반이 될 예정이다. 가락시장의 ‘스마트 물류’ 혁신은 단순히 시스템 하나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전국 각지의 산지에서 소비자들의 식탁까지, 아날로그에 멈춰 있던 유통의 흐름을 첨단 AI와 데이터로 다시 쓰는 거대한 실험이다. 오늘도 가락시장의 새벽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기술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