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콜, 감정노동자 보호 표준 세웠다

19년동안 쌓은 민원 응대 노하우 공유 등 위한 세미나 개최

등록 : 2026-04-2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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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콜센터 감정노동 보호 실천 전략 세미나 모습. 120다산콜재단 제공

2017년 전북 전주의 한 통신사 하청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고객의 해지 의사를 막아야 하는 ‘해지방어팀’에서 겪은 실적 압박과 감정노동이 원인이었다. 이 사건은 정주리 감독의 영화 ‘다음 소희’의 모티프가 되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이듬해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인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가 시행되는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지난 17일 서울시청 지하 서울갤러리에서 ‘2026 콜센터 감정노동 보호 실천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광역자치단체 콜센터협의체가 주최하고 서울시 120다산콜재단과 노동·일터연구소 ‘감동’이 공동 주관한 이번 행사는 지난 19년간 다산콜재단이 쌓아온 민원 응대 노하우를 공유하고 감정노동 보호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세미나에는 이정훈 노동·일터연구소 감동 대표를 좌장으로 서강숙 120다산콜재단 민원관리부장, 이은미 인사부장, 문은영 법률사무소 문율 변호사, 임석환 민주 노총 다산콜센터지부장, 곽철홍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장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서울, 부산, 광주, 제주 등 전국 12개 광역지자체 콜센터 책임자들과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빽빽하게 자리를 채웠다.

현장에서는 다산콜재단의 실무 지침이 집약된 ‘120 감정노동 보호 매뉴얼’이 배포돼 관심을 끌었다. 이정훈 대표는 이를 “현존하는 최신·최고급 버전의 상담사 보호지침”이라며 “노동조합이나 공공기관, 기업 등 민원 응대 근로자를 위한 수칙을 세울 때 표준으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매뉴얼의 핵심은 민원 분류의 세분화와 적극적인 방어권 행사다. 지난 2024년 재단조사 결과, 상담사들은 성희롱이나 욕설보다 ‘짜증·트집 잡기·장시간 통화’(70%)에서 더 큰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 조례’에는 반말과 고성과 함께 개인정보 부당 수집 행위 등이 금지행위로 추가됐다. 재단은 매뉴얼에서 특이민원을 성희롱·폭언 등이 포함된 ‘악성’과 억지 주장·하소연이 담긴 ‘강성’으로 분류한 데 이어 올해 1월부터는 무례한 태도와 과도한 요구를 담은 ‘주의 민원’ 카테고리를 신설해 관리 체계를 한층 강화했다.

실질적인 상담 제한 조치도 강화됐다. 기존에는 모든 악성 행위에 대해 단 하루만 차단했으나, 이제는 성희롱 30일, 악성 행위 7일, 강성 행위 1일로 차등화해 상담사의 보호 기간을 확보했다. 서강숙 부장은 “응대절차를 강화한 결과 악성 민원이 전년 동월대비 50% 가까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은미 부장은 노무사 1:1 비공개 상담, 산재 가능성 판단 지원, 신청 절차 안내, 지속 동행 등을 골자로 하는 ‘120 산재보험 길잡이 상담센터’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구조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임석환 지부장은 실적 압박과 간접고용, 감정노동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핵심성과지표(KPI) 중심 평가 축소와 원청 책임 법제화를 촉구했다. 문은영 변호사 역시 산재 입증 데이터의 노사 공유와 직장 복귀 시 임금 보전 등 법률적 보완책을 제안했다.

이날 행사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남두 정부합동민원센터장은 “공직자가 해야 할 본연의 업무를 상담사들에게 떠넘긴 측면이 있다”며 반성의 뜻을 전했고, 이이재 다산콜재단 이사장은 “산업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피해 입는 근로자에 대한 책임은 국가와 사업주”라고 강조했다.

채소라 객원기자 mylovelypizza@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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