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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13. Pink is Me Mixed Media on Paper, 53.5×76.5㎝
꽃 ‘잡아’본 사람은 안다. 은은한 향기 살랑, 햇살 가득 여유롭기만 할 성싶은 플로리스트의 일상에 ‘육체노동’의 지분이 실은 만만치 않다는 걸. 그림도 마찬가지다. 잡동사니 같은 화구며 캔버스를 돌돌이에 잔뜩 실어 운반하고 세팅하는 수고가 상당하다.
얼마 전 연세 지긋한 분이 오전·오후반 크로키 수업을 연이어 다니시기에 물었다. 오후반만 다니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온종일 계시는지, 안 힘드시냐고.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너털웃음이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시켰어.” 무슨 그런 시어머니가 다 있나 얼핏 이해가 안 돼 “네?” 되물으니 다시 강조했다. “시어머니가 시켰다니까” 하며 큭큭 웃으신다. 그제야 농담이구나 따라 웃었는데, 생각할수록 그 표현이 재밌는 게 아닌가.
세상의 ‘억울한’ 시어머니들께는 죄송하지만, 정말 죽도록 하기 싫어도 거절하기 어려운 게 시어머니가 시킨 일 아닌가 말이다. 그분의 말은 역설적으로 시어머니가 시켜도 못할 일을 자진해서 하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 않나 한다. 직장인의 회사 일도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가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듯, 누구나 ‘나의 삶’을 내보이는 데 사용하는 포장이 있다. 우아할 수도 있고, 초라하고 비참해 보일 수도 있고, 상대에 따라,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하나 어떤 포장이든 공통점은, 그 안에 ‘시어머니’가 시킨 일을 수행하는 ‘진심’이 있다는 것.
이삼 년 전 강남역의 한 플로리스트 학원 선생님은 첫 수업에서 꽃이 바스러지기라도 할 듯 발발대는 교육생들을 보며 “처음에만 그래요”라며 웃었다. 나선형으로 줄기를 ‘잡아’ 꽃다발을 만들고 조형미를 갖춘 꽃바구니를 만드는 기술도 배웠지만, 실상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줄기며 가시를 다듬는 전처리, 무거운 물 양동이 나르기, 그리고 뒷정리를 위해 꽃과 나뭇가지를 가위로 잘게 싹둑, 싹둑, 싹둑! 가느다란 체구의 선생님에게 이토록 고된 ‘꽃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느냐 물으니,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사도 몇 년 다녔지만, 적성이 꽃이더라나.
그런가 하면, 오래전 스쿠버다이빙 여행에서 만났던 오스트레일리아 강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역만리 타이에 다이브숍을 차렸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부자가 될 일은 절대로 없겠구나’ 생각하며 스쿠버다이빙 강사의 삶을 택했다고.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뉴욕의 번듯한 광고회사를 뒤로하고 강사 면접을 온 아름다운 곱슬머리 강사 후보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을 보며 참 멋있게 사는구나, 감탄했다. 물론, 그다음 날 바닷속 하강 직전에 코 막힌 강사가 압력 평형을 위해 고통을 참고 바닷물을 들이켜는 걸 보고 환상은 바로 사라졌다. 코를 뚫는 데 그만한 방법이 없단다. 직장인은 또 어떤가. 얼마 전, 사장까지 있는 발표 자리에서 묵혀둔 말을 차분하게 쏟은 후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보내느니만 못한 이메일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전송해버린 경험이 나도 있기에, 진심을 어찌하겠느냐 한참을 웃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곱씹다보니 실은 심장 박동이나 맥박을 의식하지 못하듯 아예 잊고 사는 진심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가족에 대한 책임이든, 삶의 안락함을 갖추거나 지키려는 의지든, 선택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도 이십 년 넘게 꾸역꾸역 출근하면서 부렸던 지독하게 성실한 진심 말이다. 텃밭 준비한다고 종아리 근육이라도 잘못 쓴 걸까? 절뚝거리며 내 키만 한 화판에 묵직한 화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주변에서 묻는다. 왜 그러고 사느냐고. 왜긴, 시어머니가 시켰지… 시켰겠지.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그런가 하면, 오래전 스쿠버다이빙 여행에서 만났던 오스트레일리아 강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역만리 타이에 다이브숍을 차렸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부자가 될 일은 절대로 없겠구나’ 생각하며 스쿠버다이빙 강사의 삶을 택했다고.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뉴욕의 번듯한 광고회사를 뒤로하고 강사 면접을 온 아름다운 곱슬머리 강사 후보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을 보며 참 멋있게 사는구나, 감탄했다. 물론, 그다음 날 바닷속 하강 직전에 코 막힌 강사가 압력 평형을 위해 고통을 참고 바닷물을 들이켜는 걸 보고 환상은 바로 사라졌다. 코를 뚫는 데 그만한 방법이 없단다. 직장인은 또 어떤가. 얼마 전, 사장까지 있는 발표 자리에서 묵혀둔 말을 차분하게 쏟은 후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보내느니만 못한 이메일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전송해버린 경험이 나도 있기에, 진심을 어찌하겠느냐 한참을 웃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곱씹다보니 실은 심장 박동이나 맥박을 의식하지 못하듯 아예 잊고 사는 진심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가족에 대한 책임이든, 삶의 안락함을 갖추거나 지키려는 의지든, 선택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나도 이십 년 넘게 꾸역꾸역 출근하면서 부렸던 지독하게 성실한 진심 말이다. 텃밭 준비한다고 종아리 근육이라도 잘못 쓴 걸까? 절뚝거리며 내 키만 한 화판에 묵직한 화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릴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주변에서 묻는다. 왜 그러고 사느냐고. 왜긴, 시어머니가 시켰지… 시켰겠지.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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